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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접하는 식물을 그리면서 자신을 더 자주 들여다보면서 내면의 평온을 얻었다고 한다.> 


윤은숙 작가는 식물을 그린다. 그 그림에는 언제나 식물의 잎들이 가득하고 사람 얼굴도 들어간다. 얼굴이 없으면 아주 작은 집이 들어간다. 작가에게 얼굴과 집은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눈이다. 식물을 바라보는 눈들이, 누구나 가진 사람들 마음 속 아름다움에 대한 순수마음을 일깨우고 그걸 나누기 시작하면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1. 그 동안 작품활동을 얼마간 해왔는가?    

                                        

대학을 미대를 나왔고 졸업하고 쭈욱 한 셈인데 3년 정도 쉬다가 대학원을 들어갔고,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했다. 그 때 부산에서 활동을 하다가 결혼하자마자 작업을 못하게 되었다. 울산으로 내려왔고 애를 키워야 했고 아는 사람도 없고 오로지 애만 키웠다. 내 나름대로 작업에 대한 애착이 강해서 아이를 키우면서도 손을 놓지 않으려 했는데, 6년 간 정도는 활동이나 전시회를 하지 못했다. 거의 부산하고 단절하다시피 했고 6년 정도 지나서 선배의 추천으로 울산민미협(민족미술협의회) 회원이 되었다. 부산 민미협에서 창단 멤버로 일해서 자연스레 회원이 된 셈이다. 애를 키우는 6년 동안 작업을 못하는 공백기가 나에게 있어서는 큰 전환점이 되었다. 작업을 계속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작업에 대한 애착이 많은 만큼 기대도 컸고 친구들은 전시회를 하고 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하니 심적으로 부담이 컸다. 작업을 안 하니 내 존재감이 없어지는 듯했다.


2. 전환점의 시기가 언제였나?


아이들을 모두 잠재우고 작은 책상 앞에 앉아 생각했다. 그 때도 틈틈이 작업은 하고 있었는데 스스로에게 물었다. ‘애를 키우면서 일상에 대한 행복도 있지 않냐, 미술학원을 하면서 삶의 즐거움을 누릴 수도 있겠지, 그런데 나는 왜 괴로워하는 것일까?’ 한 쪽으로는 지금까지 애착을 가지고 작업을 해왔는데 이제 이 일을 그만 두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마음도 있었다.


작은 스탠드 하나 켜고 일기를 썼다. 그리고 나에게 명령을 내렸다. ‘너는 작가가 아니다.’라고.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글을 쓰는 순간 눈물이 뚝 떨어지면서 내 존재가 다 없어지는 듯한, 훨훨 다 날아가 버린 존재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이 글을 쓸 때는 정말 비장한 마음으로 그냥 놔 버리려고 했다. 작업과 작업에 대한 욕심을 놔 버린 거다. ‘나는 작가가 아니다’라고 명령을 내린 순간만은.


3. 자신에게 작품은 어떤 것이었나?


청년시절 작품 활동은 내 존재의 자기증명 같은 것이었다. 작업은 구원이고 탈출구 같은 것이었다.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 나는 다시 잡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을 놓을 수 있는 일은 아니구나. 무언가를 놓을 때가 나에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나.
그 전에는 결혼과 육아에 대한 심적 어려움으로 작업을 놓으려고 했는데 이 현실적인 상황들을 받아들이고 나니 그 때부터 조금씩 작업을 해 나갔다. 교인은 아니지만 ‘그림을 계속 사랑하게 힘을 달라’고 기도했다.


꾸준히 조금씩 조금씩 삶에서 묻어나는 작업을 하게 되고 민미협 선배님들로부터 삶에 대한 깊이도 배우게 되었다. 지금은 없어진 ‘보우 갤러리’에서 용기도 얻게 되었다.


주부로서 집에 매여 있는 상황 속에서 자유분방하게 다니지 못하는 한계 때문에 이때부터 주변에서 소재를 찾기 시작했다. 대학 때는 주제가 실존적이고 사회적 문제를 드러내는 무거운 소재를 그림으로 표현했지만 울산에서는 일상 속에서 소재를 찾기 시작했고 키우는 화분이나 식물을 그리게 되었다. 지금 작업은 이때부터 시작된 셈이다. 어린 두 아들과 울산대 식물원에 가서 식물사진을 담아오거나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스케치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불안한 교육환경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서늘한 아이들의 시선을 상상해 보면서 일상에서 느끼는 모습을 그리면서 점점 식물위주로 그리게 되었다. 2007년에 두 번 개인전을 시작으로 꾸준하게 거의 1년에 개인전을 한 번씩 하게 되었고 흔들리는 마음도 단단하게 다져지는 느낌이 들었다.


4 사회적 소재로부터 일상적 소재로 넘어갈 때 어려움은 없었나?


‘일상이 낮은 데로 임하라’라는 말이 있지 않나. 아무리 권력을 가져도 그 밑바탕에 일상이 없다면 욕심과 시기로 싸움이 지속되는 것 같다. 일상이 탄탄하게 만들어져 있어야 한다.


생활 속 일상도 있지만 예술로서의 일상 또한 나에게 중요하다. 지속적인 전시회를 통해서 작업을 드러낼 수밖에 없고 작품을 어떻게 표현하고 남에게 어떻게 비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민미협에 대한 외부 시선도 있고 힘들었지만 그런 부분도 결국 놓게 되더라. 이제 민미협도 작가들에 따라 다양하게 나갈 수 있다고 본다. 내 작품에 대해 이래저래 생각하는 것은 타인 스스로의 문제이고 몫이라 생각했다. 나는 내가 느끼는 내 일상의 내면을 계속 그려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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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을 통해 일상적인 순수함을,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마음을 보았다.>


5. 작품에 식물이 많이 나오는데 작가에게 식물은 어떤 존재인가? 


나도 나뭇잎, 그때는 위안으로 집의 화분이나 숲을 그렸는데 지금의 식물은 좀 더 광의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식물의 한 잎 한 잎에 모든 생명의 정교함이 다 들어가 있다는 생각. 그런 작은 것이 모여서 세상을 이루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깔고서 작업을 했다. 그림에 사람의 형상이 들어가 있으나 그 시선은 바깥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 내면을 보고 있는 느낌으로 그린 것이다. 나 스스로도 나 자신의 내면을 보고 또 보고. 하지만 일상에 젖다보면 어렵긴 한데 그림 속에서 나 자신을 바라보려 한다.


사회에 많은 혼란스러움이 있는데 자신의 내면을 보려는 마음가짐을 갖는다면 혼란스러움도 사라질 것이라 생각된다. 어떤 분들은 현실적 상황들을 더 담아내야 하지 않느냐 하는 분들이 있다. 예술은 인간의 근원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그림에서 생명을 잃게 된다고 생각한다. 인간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근원은 세상 속에 있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것을 그림 속에 표현하고자 하였다.


육체의 옷을 벗는 것처럼 다 벗어내는 그런 마음을 원초적으로 항상 가지려고 애쓰는 모습이라고 보면 된다.


6. 풍경이 밤이라는 게 더 마음에 든다. 가죽나무 꽃인가?


주로 나무를 많이 그리니까 산책을 많이 하게 된다. 이미지나 인상 속에서 그리게 된다.


산책을 하면서 가까이 다가가 볼 수밖에 없고 다양한 풀들을 본다. 그 중 가죽나무의 꽃은 빛을 담고 나에게 다가왔다. 가죽나무 꽃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것 같았다. 저 그림은 바람을 부르는 별.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렸지만 뭔가 우주에서 씨앗이 툭 불거져 나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앞전의 그림은 머물러 있으면서 뭔가 변화가 있는 그림이라면 이 그림은 좀 움직이는 느낌을 살렸다. 가장 최근에 그리고 있는 그림이 ‘고요한 수다’라는 그림이다. 이 그림도 나름 움직임이 느껴지는 것이다. 나뭇잎이지만 나뭇잎들끼리 서로 속삭이는 듯한 느낌, 생명들이 서로 뭔가를 나누는 듯한 느낌을 살렸다. 사람들은 왜 나뭇잎을 머리카락으로 표현할까 하는 의문을 갖지만 나로서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한다. 머리카락이 아니라 ‘하나하나가 생명이다’라는 생각으로 그렸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방법적 모색으로 형상성이 없는 나뭇잎에 물감을 묻혀 뿌리기 작업도 해 보았고 화면 표면의 마티에르를 살린 그림도 그려 보았다.


하지만 다시 형상성이 드러나는 작업으로 지금의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7. 저 그림은 ‘할미꽃’을 주제로 그린 것 같은데 설명을 좀 부탁해도 될까.


저 그림 제목이 ‘내면의 빛’이다. 저 작품을 그릴 때 밤에 대한 주제와 그림을 많이 그린 것 같다. 저 그림이 우주 시리즈의 초기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올 상반기의 그림이다.


얼굴인상이 우주에 홀로 떠 있는데 홀로 내면을 바라보고 있는 형상에 어떤 식물을 넣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할미꽃의 솜털 같은 것을 페이스북이나 SNS에 올려주는데 그것이 눈에 많이 들어 왔다.


솜털이 빛을 받아 환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이 뽀송뽀송한 모습이 그리고 꼬부라진 모습이, 고개 숙인 모습이 자신의 내면을 보는 듯한 겸손한 모습이랄까? 그런 느낌이 들었다. 저기 작은 것이 집인데 최근에는 얼굴이 들어가면 집을 빼고 집을 넣으면 얼굴을 뺀다. 내게 있어 얼굴이나 집은 같은 것을 상징했는데 집은 자신을 들여다보는 ‘내면의 집’이다.
예전에는 밝은 톤으로 그렸는데 생명이 교감하는 ‘꿈꾸는 나무’였다.


개인전은 열두 번 열었다. 작업 특성상 꾸준하게 그리지 않으면 그림을 계속 이어 나가기 힘들다. 어떤 분은 작품을 몰라서라도 한다는데 한 시간을 하더라도 작업실을 가자, 꾸준히 그리자, 내게는 그런 부분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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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털이 뽀송뽀송한 할미꽃을 보면서 환한 빛을, 그리고 꽃필 때 겸손함을 보았다.>


8. 작가로서 생계는 어떤가.


벽화도 하고 소소하게 강습도 하고 좀 어렵게 산다. 그림 하는 친구들이 대부분 그렇다.
나는 결혼을 해서 조금 나은 편이지만 혼자서 했더라면 힘들었을 것이다, 최근까지 학원도 했다. 작년부터 학원을 하지 않으면서 2년 버티고 있는데 지금은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안정적 수익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예전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보였지만 요즘 문화활동들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소함의 즐거움을 찾는 움직임이 많더라. 나는 그렇게 많이 다니는 성격이 아니지만 예전보다는 뭔가 알차고 주변에서 끌어와서, 소소함에서 즐거움을 찾고 활용하고 하는 것이 많이 늘어난 것 같더라. 나도 뭔가 그런 일을 먼저 실험적으로 하고 싶다.


9. 울산지역을 문화예술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공공미술에 참여하다가 울산 토박이들을 만나면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 옛날 그 모습 그대로 간직했다면 지금은 보물이었을 것이다. 그 때부터 마을이 삭막해졌다는 것이다. 숲을 다 없애고 개발하고 난 다음에 마을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숲과 나무를 없애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더라. 봉계마을 한창 개발할 때 봉계숲이 엄청 컸었다고 한다. 그런데 개발로 다 밀어버리고 그 후로 남자들이 많이 죽었다더라. 그래서 그 동네는 혼자 사는 홀할머니들이 많다고 하더라. 너무나 큰 변화를 갑자기 이뤄 모든 것이 단절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10. 제일 행복한 순간은 어떤 때인가?


물론 그림 그리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고, 집중도 잘 되고. 제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작품 발상은 산책이나 물론 식물을 그리는 키워드는 있지만 내면을 그리는 것인데 내면공부에 대한 작업을 하고 있다. 심리학을 공부하는 것은 아닌데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끄집어내는 작업을 한다. 형식은 집단상담 방식인데 책임자가 있어 치료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같이 드러내면서 같이 치유를 받기고 한다. 식물적 감성이 세상에 깔려 있는 근원이 아닌가 싶다. 이것을 알아내고 바라보는 것이 금세 확 바뀌는 부분은 아니고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문득 생각난 어느 성직자의 시가 생각난다. “세상을 바꾸려고 했다. 하지만 세상을 바꿀 수가 없었다. 자기 마을을 바꾸려고 했다. 하지만 바꿀 수가 없었다. 가족을 바꾸려고 했다. 하지만 바꿀 수가 없었다. 마지막에는 내 마음을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그림이 많이 알려지지도 않았고 고립된 느낌도 들지만 앞으로 소개 되는 기회가 많아질 것이고 나의 작업이 세상의 작은 밑거름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식물적 세상, 식물적 인간이 사회를 순수하게 변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나는 식물을 세상을 변하게 하는 매개물로 본다. 사람들이 내면의 순수함을 알고 바라본다면 사회 또한 그렇게 변화될 것이다.
나는 왜 이런 소재를 그릴까? 이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에서 힘든 것도 있었지만 타인과


함께 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특별하고 튀는 내가 아니라 평범한 인간으로서 상처도 많이 받고  내 속에 드러나지 않는 것이 꼭꼭 숨어 있는 것도 같고, 나를 찾아가는 길이 그림으로 드러나지만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근원이지 않겠나.


사람들은 누구나 아름다움을 찾는 것 같다. 그 아름답고 행복한 것을 찾으려고 하면서 그 아름다움을 파괴하는 것 같다. 함께 같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망을 서로 이야기 나누면서 자신의 욕심을 보게 되고 수용하는 과정 속에서 과한 욕심을 내려놓지 않을까. 아름다움을 가지려고 하는 순간 아름다움과 더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다. 내 역할은 그림으로 보여주는 것일 거다.


겉치레 기능적인 논리가 아니라, 사회에서 보면 자기 자리에서 내 역할을 알고 열심히 해나간다면 세상의 불합리한 모습이 좋아지지 않겠는가?


11.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기사를 읽는 독자들에게 할 말이 있다면 그림이라는 것이 특수한 사람들이 하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그리고 있는 것이라고 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그걸 떼어낸다면 작품이 아닌 것이다. 나는 식물을 통해 내 내면의 표현하는데, 작가별로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 다르다. 작품은 평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그림을 통해 관람자의 내면을 보는 것이다. 그림을 그릴 때는 작가의 마음을 표현하지만 전시된 작품은 관람자의 것이 된다.


그리고 11월 22일은 민미협에서 매년 준비하는 환경전이 문을 연다. 시민들의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린다. 사람은 내면이 병들면 아무리 가진 것이 많아도 자신을 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지 않느냐. 자연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자연은 인간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듯하다. 그냥 자연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파괴하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어쩜 자연이 너무 힘들어 자신의 숨을 멈추어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자연을 자꾸 파괴하고 힘들게 하면 자연이 우리 인간을 외면하게 될 것 같다. 자연은 우리한테 대가없이 거저 주며 우리가 같이 나누고 공유하기를 바랄 것이다. 함께 즐기고 어우러지는 것이 우리가 자연을 대하는 태도라고 본다. 


인터뷰어 이동고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