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다니던 70년대 중반 시절 나는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노래를 무척 좋아했다. 이제는 고전이 된 노래 ‘아침 이슬’의 작곡가로 유명한 김민기 선생이 작사 작곡했고, 서울대 미대 71학번 이현경 박영애 두 여학생으로 구성된 듀엣 ‘현경과 영애’가 불렀던 청아한 그 노래, 전체 3절로 이루어진 그 노래의 가사는 이러했다.


<1절> 어두운 비 내려오면 / 처마 밑에 한 아이 울고 서있네 / 그 맑은 두 눈에 빗물 고이면 /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2절> 세찬 바람 불어오면 / 벌판에 한 아이 달려 가네 / 그 더운 가슴에 바람 안으면 /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3절> 새하얀 눈 내려오면 / 산 위에 한 아이 우뚝 서있네 / 그 고운 마음에 노래 울리면 /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단출하지만 깔끔한 가사에 신비감이 느껴졌고, 두 여학생의 청아한 목소리에 실린 가락도 아름다워서 나는 이 노래를 무척 좋아했고 또 즐겨 불렀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 생활을 하는 동안 나는 이 노래와 점점 멀어져 버렸다. 80년대의 성숙한 음악에 젖은 삼십대 청년에게 이 노래의 가락은 너무 단순했고, 가사는 다소 허황해 보였다. 70년대 통기타 노래가 대개 그렇듯이 이 노래도 가장된 순수성으로 세상을 왜곡한 것이라 치부해 버렸던 것이다. 80년대의 세련된 감각에 물든 삼십대 청년은 이제 더 이상 꽃반지 끼고 사랑을 맹세하는 일에 매력을 잃었으며, 창가에 앉아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을 헤아리는 일에도 시들해져 버렸다. 사람 없는 찻집에 마주 앉아 밤늦도록 낙서를 했다는 70년대 연인들의 이야기는 이제 진부하기만 했다. 이 노래 또한 70년대 노래의 도매금으로 내몰려 한갓 젊은 날의 추억거리로만 점점 멀어져 간 것이다.


내가 이 노래를 다시 만난 것은 쉰 나이가 넘어서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무슨 인연으로인지 나는 이 노래를 현경과 영애의 청아한 목소리 대신 김민기 선생의 나직한 음유시 톤으로 다시 듣게 되었다. 귀에 익은 가락이었지만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대학 시절 나는 이 노랫말 속 ‘아름다운 사람’을 특수한 개별자로 읽었다. 아름다운 눈망울의 한 아이였을까. 그러나 쉰 나이에 듣는 김민기 선생의 음유시 ‘아름다운 사람’은 구체적인 한 아이가 아니라 보편자로서의 인간 존재였다. 인간다움의 실현이 아름다운 것이며,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사람이라는 의미로 읽혔다. 나이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목소리와 창법이 주는 느낌의 차이였을까. 아무튼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나는 이 노래를 다시 해석하기 시작했다.


이 노래에서는 어두운 세상에 대한 공감 능력이 사람을 아름답게 한다. 눈물이 아름다운 것은 인간의 윤리성과 미의식이 마주치는 문제일 것이다. 거친 세상에 용감히 맞서면서도 그 시련을 뜨거운 가슴으로 끌어안는 포용력이 너무나 아름답다. 그리고 세상의 차별상을 덮어 순수한 마음으로 노래하는 미의식은 사람을 아름답게 한다. 시를 이야기하고 현실의 모순을 논하며 예술의 감동을 나누는 수업 활동들이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가치, 즉 사람의 아름다움에 대한 신념 위에서만 의미가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한다.


교사란 세상을 이어갈 젊은이들에게 구체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 사람들이다. 이 무거운 특권의 행사에는 무언가 분명한 주제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젊은 시절 한번 설정한 주제가 영원할 수는 없다. 수없이 고쳐지고 또 바뀌어 왔다. 그러나 돌아보면 나를 이끌어 온 그 주제의 방향이 이 노래의 의미와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어두운 세상에 대한 공감 능력, 거친 세상에 맞서는 용기와 포용력, 그리고 순수정신 위의 미의식... 오랜 세월 나는 이 노래를 잊고 살았다 생각했는데, 실은 이 노래의 울림을 긴 세월 가슴 속에서 삭히고 또 익혀 왔던 것인가? 인간 세상이 참 놀랍고 아름답다.


서상호 효정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