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고향인 우봉마을을 찾은 건 근 40여년 만이다. 태어나서 중학교 졸업 때까지 살았던 지금은 흔적이 없어져 버린 바닷가 갯마을. 마을 뒤편에 그리 높지도 만만하지도 않은 산, 눈에 익은 바위들, 이제는 그의 가슴팍보다 우람해진 적송 군락 아래서 어릴 적 추억이 알알이 맺힌 마을이 있던 곳을 멍히 내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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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공장 건물들과 대형 크레인, 웅장한 기계들의 굉음은 13,4년을 살아온 그도 조용한 바닷가 갯마을이 있었다는 것이 생소할 따름이다. 지금 서있는 적송나무 옆 곰바위와 해안 수면 위 일부 남아있는 여러 바위들이 없다면 어디쯤 그의 집이 있었는지 친구 영대네 집은 어디쯤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을 터이다.


당월마을 쪽으로 있던, 헤엄쳐 가기에는 너무 멀지만 논 여남은 마지기만한 거무섬은 마을 사람들에게 큰 보물창고였다. 마을 사람들은 거무섬에서 따온 미역과 톳나물, 우뭇가사리, 몰, 파래, 진등바리는 나룻배에 실고 울산장이나 당월장으로 나가 팔아서 옷가지와 아이들 운동화도 사고 공납금도 내곤 했었다.


마을제당에서 산언덕 쪽에 있는 비릉끝은 어른 키 열 길 너머 되는 자연굴이 있고 방학이나 공휴일에는 친구들이랑 놀래기, 괭이돔, 술뱅이 등을 낚시하며 놀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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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공장부지에 매립되어 보이지 않지만 마을에서 조금 가려진 제비섬은 마을 인근에서는 유일한 꽤 큰 모래섬이었다. 여름에 멱을 감다 숲 그늘에 앉아 쉬노라면 갈매기보다는 조금 작은 바다제비 수컷이 암컷을 유혹하는 모습은 사춘기 소년인 그에겐 왠지 모를 가슴을 울렁이게 했다. 수컷 바다제비는 힘겹게 잡아온 작은 물고기를 새까만 부리에 물고는 암컷 앞에서 자랑을 한다. 먹이가 맘에 들지 않아 받아먹지 않으면 또다시 다른 물고기를 잡아 온다. 암컷이 먹이를 받아먹으면 그제서야 부부가 되어 사랑을 나눈다. 바윗돌 사이나 한적한 따뜻한 모래에 작은 구덩이를 파고 두서너 개씩 알을 낳고 다른 뭇 새들과는 다르게 부부가 번갈아 가며 알을 품는다.


부리와 다리가 새까맣던 그 많은 바다제비들은 어디로 가서 사랑을 나누고 있을까.


마을에 공장이 들어선다는 소문이 난지 얼마 되지 않아 한 집 두 집 빈집이 생기기 시작하고 여름이면 멱질을 하고 놀던 강양리 쪽 마줏돌 바위가 매립되기 시작했다. 사람들 대부분은 마을을 떠나서 살 수 없다고 마을을 떠나지 않겠다는 얘기들이 나돌았지만 집 아래채보다 큰 포크레인과 불도저, 큰 돌들을 가득 실은 덤프트럭들은 침략군마냥 빈집들을 부수고 집 앞 바다를 메우기 시작했다. 며칠 후 그가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마을 보물창고인 거무섬도 보이지 않았다. 아직 어린 그는 무서웠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마을을 떠나기 시작했고 그의 집도 멀지 않은 덕신마을로 이사를 갔다. 마을의 아재들, 친구들 모두가 뿔뿔이 헤어져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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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후, 뒷집 경식이 아재를 우연히 만났다. 아재는 노모와 함께 보상비로 울산 시내 아파트로 이사 갔고 낮에는 스물다섯 평 아파트에 홀로 우두커니 지내야 했던 노모는 이듬핸가 치매가 와서 요양원에 입원하셨는데 돌아가실 때까지 요양원 비용 때문에 아파트까지 팔아야 했다고 한다.


그의 집은 우봉마을에서 부잣집이었다. 부친께서는 어촌계 큰일을 맡고 계셨고 땅도 많아 보상비를 많이 받았다. 덕분에 학비 걱정 없이 대학을 다녔고 졸업 후에는 넉넉한 사업자금으로 러시아까지 가서 통조림 공장도 운영했다. 몇 년은 사업이 잘 되어 가는 듯하더니 어느날 부도가 나고 큰 병까지 얻어 수년간 병 치료에 전념했다. 이제는 병세는 거의 없어졌고 그의 아내와 함께 도시 한 모퉁이에 조그만 식당을 하고 있지만 환갑 나이가 다된 그에겐 모든 일이 힘에 부친다.


그는 아직도 푸르고 우람한 적송나무 아래서 어린 시절 동무들이랑 놀던, 공장들이 지어지지 않은 옛 갯마을에서의 남은 생, 꿈을 그려본다. 환갑이 다된 그의 동무들과 오늘같이 화창하고 바람이 없는 날, 작은 나룻배를 타고 낚시를 한다. 봄이면 거무섬에 나가 미역을 따고 여름이면 돌섬에서 멱도 감고 뒷산에 올라 진달래꽃이랑 인동초꽃을 따다가 화전을 부쳐 먹는다. 겨울밤이면 꼰밥도 해먹고 한치 몇 마리 회를 떠서 용식이네가 담은 막걸리를 나눠 마시며 지나간 젊은 날의 무용담도 떠벌려본다.


하진수 울산환경과학연구소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