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의미를 1인칭, 2인칭, 3인칭으로 나눈 글을 본 적 있다. 1인칭의 죽음은 나의 죽음이다. 2인칭의 죽음은, 내가 사랑하는 너의 죽음이다. 3인칭의 죽음은, 나와 무관한 그나 그들의 죽음이다. 나와 무관한 그의 죽음이 나에게 의미 있는 너의 죽음이 되면 ‘너’의 죽음은 아프게 다가온다는 말이었다. 죽음을 경험하기에는 이른 나이인 나에게는 별로 와닿지 않는 글이었다.


공부를 하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을 찾아본다. 오늘도 사전을 보려고 도서관 구석에서 핸드폰으로 사전을 열었다. 단어를 검색하고 나서 자연스럽게 실시간 검색어를 둘러봤다. 샤이니 종현이 1위에 올라 있었다. ‘신곡이 나왔나?’하고 눌러봤다. 종현이 죽었다. 내일도 시험을 세 과목이나 봐야 하지만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그를 처음 본 건 중학교 3학년 초여름이었다. 알록달록한 스키니진을 입고 누난 너무 예뻐를 부르고 있었다. 나에게 남자가 알록달록한 바지를 입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고 누난 너무 예뻐라는 노래 가사는 충격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도 스키니진을 입는 게 자연스러워졌고, 누난 너무 예뻐라는 노래는 어딜 가도 흘러나왔다.


나는 노래를 좋아한다. 그래서 유튜브로 라이브 영상을 자주 찾아본다. 그때는 아이돌은 노래를 못한다는 편견이 있었다. 우연히 추천 영상 목록에 뜬 그의 노래를 봤고, 내 편견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 뒤로 나는 그의 노래를 자주 들었다. 아침 버스에서 그의 노래를 들으며 학교에 갔고, 야자가 끝나고 집에 가면 거의 그의 영상을 찾아봤다.


매일 그의 노래를 듣다 보니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연예인이었지만 그에게 정이 많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답답한 고등학교 생활에 많은 힘이 됐던 거 같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도 음원 사이트에 그의 새 노래가 나오면 찾아 들었다. 나는 그의 팬이 됐고, 어느새 그는 나에게 너가 됐다.


너는 나 말고도 참 많은 사람들에게 너였던 거 같다. 참 많은 사람들이 슬퍼한다. 꽃이 피면 지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루를 살면 하루만큼 죽어가며, 죽음은 삶의 일부분인 걸 알고있다. 그래도 너의 죽음은 슬프다. 죽음이 당연하다는 사실도 너의 죽음이 슬프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김민우 울산대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