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슬슬 떠날 채비를 해야한다. 그간 숙소에서 따숩고 잘 먹고 잘 지냈는데... 직장의 계약기간 만료가 몇 달 남지 않았으니 말이다. 봄이 되기 전에 빨리 집을 구해야한다는 지인들의 충고를 듣고, 슬슬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코딱지만한 원룸 한 칸이 500만원에 50만원, 조금 저렴한 건 월세가 30만원인데 그런 것은 반지하에, 바퀴벌레 나올 것 같은 뭔가가 문제있어 보이는 것들이다. 그나마도 관리금이란 게 5만원씩 붙어있다. 그래도 빨래는 말려야하는데... 베란다가 있는 집은 더더욱 없다. 그나마 이곳이 서울의 외곽이라 좀 싼 편이라고 하니, 어쩔까 싶다.


주택문제는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집세를 내며 임대를 해가면서 살았을까? 임대를 한다는 건 분명 본인이 살고 있지 않은 여분의 집이 있다는 건데, 왜 집은 집 짓는 비용을 훌쩍 넘어 책정되어 있는 것일까? 공간은 좁고, 사람은 많아서라는데... 그럼 인구가 적었던 옛날에는 주택문제가 없었을까? 가난한 사람들은 초가에는 살아도 집세에 허덕이며 옮겨 다니는 건 본적이 없는 것 같은데... 역사책을 한번 뒤져봐야겠다.


헉, 조선 초에도 주택문제가 있었고, 주택정책이 있었다 하네. 하긴 개경에서 한양으로 도읍을 옮겼으니 도시계획이 있었겠지. 사람들도 이주시켜 살아야하고. 그때 서울에 이주했어야했어. 신분마다 다르긴 했지만, 무상으로 땅을 줬다지 뭐야. 자기가 살 집터를 정해서 관청에 신고하면, 관청직원이 나와서 거기 집을 지어도 되는지 안 되는지를 판단하고 허가를 내줬다네. 웃긴 건 개경에서 이사 온 왕족들이 번듯하게 집지어 놓고 다시 개경으로 가는 바람에 빈집으로 남아서 인근 사람들이 슬쩍슬쩍 기둥도 빼가고 폐가가 되서 문제가 많았다는군. 그래도 조선 초기까지는 남의 집에 세 들어 사는 사람이 없었대. 아예 세를 놓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가난하면 그냥 산에 올라가서 초가 짓고 사는 거지 뭐.


근데 문제는 그때도 철거제도가 있었다는 거야. 궁궐과 연결되는 좋은 맥이 있는 산등성이에 무허가 집을 지으면 철거를 했다는군. 지맥을 훼손시킨다는 이유로... 허가 없이 지은 집을 신고하면 포상금도 줬대(진고제 陳告制). 요즘 같으면 여기 좋은 기운을 막았으니 당신 동네를 철거하겠소 하면 누가 나갈까 싶겠지만 근데 그땐 그게 통했나봐. 그런 이유로 철거를 시킨 게 한두 가구가 아니고 무려 15세기에 200여 가구가 넘어. 또 다른 철거 이유가 있었는데 궁궐을 넓히거나 왕족들을 가까운 좋은 곳에 살게 하려고, 사람들을 쫒아냈다는 거야. 물론 이런 때는 시세보다도 두세 배 높은 가격을 쳐서 줬지만. 그래도 너무하지 않아? 국가의 모든 땅은 왕 거라는 생각이 있었으니까 그게 가능했나봐. 이러면서 땅값이 올랐다는군.


요즘 매일 전국에 화재가 많이 나고 있어. 건조해서 그렇기도 하고, 나쁜 자재를 써서 그렇기도 하고, 근데 옛날 화재기록을 보니 요즘에 비할 바가 아니야. 초가집이 많고, 또 따닥따닥 붙어 있어서 한번 불이 붙으면 수천 가구가 화재를 입었어. 일단 불이 났다하면 수백 가구가 타버렸던 거야 1426년(세종8)의 기록을 보면 한성부에 화재가 발생해서 행랑이 114칸, 인가가 2400여채 소실됐다는군. 당시 한성부의 호수가 1만6921호였는데 한성부의 15%가 한 번의 화재로 없어진 거야. 옛날엔 사람이 곧 재산이었는데... 왕 입장에서는 결단의 조치가 필요했겠지?


새마을운동만 지붕 개량화 사업을 하는 게 아니야. 당시 화재 예방을 위해서 초가를 기와로 교체하는 지붕 개량화 정책을 폈어. 기와가 좀 많이 비싸지. 오죽하면 기와집이 부자의 대명사겠어. 그래서 정부는 기와를 싸게 공급하기 위해서 승려들을 동원했어. 별요와라는 기와제작소를 두고 대량 생산해서 어려운 사람들한테 먼저 공급을 했대. 근데 그래도 비싸잖아? 그래서 기와를 1000장씩 무료로 주기도하고, 또 싸게 팔기도하고, 재정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한테는 독려하기도 했대. 결과적으로 세종대에 와서는 한성부 주택 70%가 기와로 바뀌었다는군. 이래서 불도 안 나고 오순도순 살면 얼마나 좋겠어. 이젠 인구가 문제야. 사람은 늘고 땅은 없고, 땅이 왜 없어 하고 의심을 하겠지만, 당시엔 치안이 부실해서 도성 안에 살아야 안심을 하고 살았대. 도적들이 많아서 도성 밖에 갔다가 소 잃고 목숨부지 못 한 사람도 있었다는군. 주택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빈집을 국가가 사들여서 빌려주자는 의견도 나왔대. 근데 이 정책은 실제 반영되지는 않았나봐.
나는 큰집도 필요없는데... 따숩고 물 잘 나오고 빨래 널 수 있는 고론 집 국가에서 지원 안 해주나?
(참고자료: 유승희, 2009, ‘15~16세기 한성부의 주택문제와 정부의대응’ <사학연구> 94호)


윤지현 전문 기록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