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산타할아버지가 뭘 가져다주면 좋을지를 물었다. 이미 알 것 다 알아버린 첫째는 “아빠, 전 그냥 현금이 좋다고 산타할아버지한테 꼭 전해주세요.”라고 하고, 어린이집 졸업반인 둘째와 어린이집 신입생인 셋째는 자신이 가지고 싶은 장난감을 불러대느라 정신이 없다. 이제 곧 둘째와 셋째도 크리스마스 선물을 가져다 주는 것이 산타할아버지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고, 상상이 깨지는 순간 선물도 사라질 것을 알게 된 그들이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시기를 늦추는 방법은 최대한 내가 산타를 믿고 있다는 것을 부모인 우리에게 각인시키는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에게 선물로 줄 장난감을 고르며 난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것들이 옛날 우리가 가지고 놀던 것들과 성능과 기능면에선 다르지만 본질적으론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놀이는 다름 아닌 팽이다. 과거 우리가 가지고 놀던 그 팽이하고는 천지차이지만 그게 우리가 가지고 놀던 팽이와 본질적으로는 별 차이가 없음을 알게 된다. 원심력을 가지고 돌아가며, 상대방의 팽이와 부딪히며 경기를 하고, 도는 것이 멈추는 순간 경기에 지는 것. 물론 과거에 비해 더 다양해졌고, 팽이를 돌리는 것도 그냥 줄이 아니라 애니메이션 속 박사님이 심혈을 기울여 최첨단 기술을 접목해 제작한 다양한 제품들로 세분화됐지만 그럼에도 결국 팽이는 팽이다. 물론 다양한 종류의 딱지와 카드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과거의 놀이와 지금의 놀이가 수준의 차이만 있을 뿐 본질적으론 비슷한 측면이 있다고 해서, 공부 역시 마찬가지일까 의문이 들었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교육자인 미셀 세르가 지은 <엄지세대, 두 개의 뇌로 만들 미래>를 보며, 그 의문은 더욱 심각해지고 깊어졌다. 엄지손가락으로 스마트폰을 통해 모든 세계와 소통하는 세대, 모르는 게 있으면 인터넷을 통해 모든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세대. 지식은 쉽게 접할 수 있고, 세계는 더욱 좁아졌으며, 더 이상 외국에 사는 아이들과 소통하고 정보를 획득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아이들에게 과거와 비슷한 교육을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저자는 지금 다가 올 변화가 르네상스 무렵의 문화적 단절과 버금가며, 다가올 미래 세대에는 기성세대와는 판이하게 다른 신인류가 등장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아이 셋을 키우는 입장에서 내 아이들이 과연 신인류인가에 대해선 의문이 들지만, 기존 교육은 그 효용을 다했으며, 이제 미래세대를 위해 교육이 무엇을 고민하게 만들고,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해 준비할 시기임에는 분명하다.


그럼 앞으로 미래세대의 아이들은 무슨 과목을 배우게 될 것인가? 토익과 토플에 목숨을 걸고, 인수분해와 f(x)값을 구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예상하건대 앞으로 아이들은 문학시간엔 직접 시를 짓고, 소설을 쓰고, 수필을 지을 것이며, 미술시간엔 소재의 제한 없이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 것이며, 새로운 삶이 의미와 깊이를 배우는 철학 시간엔 무작정 몇 시간이고 멍 때리고 있는 수업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체육이 아니라 노동의 의미를 배울 것이고, 규율과 공식이 아니라 형식의 파괴와 창조에 대해 고민하는 수업을 받을 것이다. 뭐, 교육에 대해선 전문가들이 있으니 실제 이런 수업이 도움이 될 지 알 순 없지만, 만일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도 미래세대와 어떻게 공감하고 교육을 할 지 대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어떨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대책이 없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싶다. 어차피 우리가 미래세대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것도 없고, 딱히 미래세대가 배워야 할 만큼 우리가 대단하게 이룬 것도 없으니 말이다.


이인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