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는 나만의 세계에 살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지도 그리고 신경 쓰지도 않았다. 20대 시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내 곁에 있어주면 만족스러웠다. 다른 이들과 비교하지 않았기 때문에 외롭지 않았지만 다른 이들과의 관계도 만들지 않았다. 30대 시절 아이를 키우면서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임을 깨달았다. 양육을 도와줄 친정 엄마가 필요했다. 아이의 친구들과 아이 친구 엄마들이 필요했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어떻게 사는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비로소 관계가 시작되었다. 그 관계 속에서 만족감도 외로움도 느꼈다. 만족감은 서로가 공감하는 데에서, 외로움은 서로가 다른 데에서 오는 것이었다. 그 만족감은 풍요로움의 감정이었고, 그 외로움은 서글픔, 아픔, 아련한 감정이었다.


40대 시절 외로움에서 오는 만족감과 서글픔, 아픔, 아련함은 나를 혼자이게 만들었다. 혼자만의 시간에 나는 책을 읽었고, 공원을 걸었고, 일을 했고, 노동을 했고, 돈을 벌었다. 그러면서 ‘나는 왜 이리 외롭지?’라는 질문을 나에게 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질문해보았다.


누군가가 외로운 것은 혼자 있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혼자 있지 못해 외로운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외톨이’로 여겨지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외로움은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가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있을 때 엄습하며, ‘사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사는 것’보다 훨씬 덜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혼자 있는 걸 견디지 못해 시간만 나면 누군가와 어울려야 하고, 모임을 만들어 여기저기 다니는 사람은 실은 가장 외롭고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이며, 외로울 틈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정작 외로움 때문에 몸을 떠는 것보다 외로움을 느껴 볼 시간을 갖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 그게 문제다’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중심을 잡고 자신과의 자유로운 시간을 누릴 줄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또 누군가가 말했다. 외로움은 혼자 있기 때문에 외로운 것이 아니라 마음의 문을 닫고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마음의 문을 닫는다는 것은 주어진 상황에 대해 ‘자꾸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라는 생각을 함으로써 스스로 괴로움과 외로움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상대를 내 뜻대로 하려고 하고, 내 취향에 맞는지 너무 따지다 보면 스스로 괴로워하며 외로워진다고 했다.


그러니 같이 있을 때는 같이 있는 것이 좋고, 혼자 있을 때는 혼자 있는 것이 좋고 이렇게 주어진 조건을 받아들이고 그 조건들 속에서 내가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주인이 된다는 것은 상황이 주어지면 적극적으로 주인 노릇을 하는 것이다. 이것을 불교용어로는 수처작주(隨處作主: 처하는 곳마다 내가 주인이 된다)라고 한다. 이 주인 노릇은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종국에는 나에게 주어진 상황은 모두 좋은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주인의식을 가지고 마음을 열면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그러면서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내가 너그러워지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나를 더 만나고 싶어 하고 더 따르게 될 것이다. 그러면 비로소 혼자가 아니라 함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외로움은 혼자만의 시간, 자유로움, 주인의식 그리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게 해준다.
그러니 오늘부터라도 외로움을 피하지 말고 기꺼이 받아들여보는 것이 어떨까? 이렇게 기꺼이 받아들임은 더 이상 나를 외롭지 않게 하고, 상대를 이해함으로써 오는 기쁨까지 선물해, 내 자신을 더욱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을 더욱 사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송영주 심리상담사 / 미술치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