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권유로 영남알프스학교 ‘옛길 걷기반’에 등록하고 반 이름에 걸맞는 상상을 하면서 낭만을 꿈꿨다. 2017년 영남알프스학교 개강 날,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배냇재를 가쁜 숨 헐떡이며 천근같은 다리를 이끌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자니 내 꿈은 첫 수업부터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학교라고 하더니 괜히 왔네.’ 투덜대며 맨 뒤에 쳐져 끙끙대는데 어느 시점에서 지도자 선생님은 학생들이 다 모이기를 기다렸다가 옛길에 얽힌 이야기보따리를 구수한 입담으로 풀어 놓았다. 그 바람에 일그러진 얼굴들이 모두 한바탕 웃음꽃으로 피어났다.


높고 위태로운 길은 밧줄로 오르고 칼바윗길은 손잡아 당기고 끌어주며 모두가 처음 만난 얼굴인데도 동지가 된다. 가슴 조마조마 좁은 험로, 아차하면 천길 낭떠러지에 엉덩이가 저릿하다, 켜켜이 쌓인 낙엽으로 길 아닌 길, 말 그대로의 옛길을 우리는 화려한 등산복 차려입고 웃고 떠들며 옛길을 아니 옛날을 공부한다. 그러나 이 길은 우리 옛 사람들의 땀과 피와 한이 서린 목숨 길이리라.


정상에 올라 내려다보니 세상 모두가 내 발 아래다. 코앞을 가도 차 몰고 다니던 내가 한 걸음, 두 걸음 이 높은 산을 오르다니.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아! 이 성취감!


개나리, 진달래 만산을 물들이는 사월에는 울산 출신의 위대한 외교관이었던 조선통신사 이예의 발자취를 따라 ‘한일우정걷기’에 동참해 태화루에서 양산까지 자그마치 29킬로미터를 완주해 나를 이기는 작은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어디 그 뿐인가. 티브이에서나 보던 야간 산행, 소호리에서 달빛기행도 체험했다. 그 옛날 소장수는 횃불 밝히고, 아낙들은 희미한 등불 들고서 절박한 심정으로 넘던 그 산길을 나는 문명의 첨단 헤드렌턴을 눌러 쓰고 어스름 달빛을 힘겹게 올랐다. 옛 사람들의 척박했던 삶을 생각한다. 자연에 맞서 싸우기도 하고 순응도 했으리라.


희부윰 달빛 아래 흐르는 밤안개, 또렷하지 않은 산들의 실루엣, 멀리 바라다 보이는 울산의 밤풍경은 한 더미의 꽃밭이었다. 모두가 맨땅에 둘러앉아 장기자랑으로 ‘시’ 낭송도 하고 노래도 부르며 즐거워했다. 이 야심한 밤에 혼자라면 상상도 못 할 일, 그래서 사람들은 더불어 함께 살아야 된다는 공동체의식도 체득했다. 소호리의 하룻밤은 도시의 밤하늘에서 잃어버린 별을 찾았고 어렸을 적?내 고향을 선물해 주었다.


그 외에도 어느 것 하나 뺄 수 없이 아름답고 멋졌지만 다 열거하지 못해 안타깝다. 그러나 꼭 한 가지 괄목할 것은 폐교 직전의 소호분교를 살려내고 이로 인하여 마을까지 청정마을로 거듭나게 만든 것이다. 이 이야기는 실로 경이로운 감동이었다. 우리 모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낼 일이다.


그 밖에도 멋모르고 나섰던 번개팅에서 고사리 꺾기, 차디찬 냇물 건너기, 마사투성이 민둥산 오르기에서 쩔쩔 매며 시간 지연시킨 죄로 ‘민폐’라는 별명을 얻어도 싫지 않았다. 그리고 또, 철쭉맞이 산행 땐 컨디션이 안 좋아 중도하차했던 일, 미끄러져 밧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아찔했던 순간이며 엉덩방아 찧기 등등, 이런 에피소드는 ‘영남알프스학교’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이다.


돈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 되는 세상에 사는 현대인들이다. 그런데도 ‘영남알프스학교’에는 올곧은 기치관과 신념으로 열정을 쏟으며 꿈을 키우시는 여러 분야의 선생님들이 계시다. 신불산, 가지산, 배냇재 등을 비롯해 영남알프스 전지역, 대자연 그대로가 우리학교의 배움터다. 들꽃반, 차연구반, 역사탐방반 등 특히 ‘걷기교실’ 배성동 소설가는 멸종된 우리의 호랑이를 찾기 위해 러시아 눈밭을 두 발로 헤집으며 ‘영남알프스학교’ 러시아 분교 계획을 추진 중이신 호랑이 사랑꾼이시다. 잊혀져가고 사라져가는 우리의 옛것들을 안타깝게 여겨 되살려 내고자 애쓰시는 모습은 가히 존경할 만하다. 그리고 ‘월급 받는 일이 아니라서 더 신나게 일한다’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 김혜진 팀장님께도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 전한다.


내년에는 다른 반에도 도전장을 내고 각 분야를 두루 체험해 볼 작정이다. 어쩌면 옛길 걷기의 산행은 우리의 삶이 오롯 함축된 모습이 아닐까. 산을 이고 산 사람들의 이야기보따리는 ‘영남알프스학교’에 다 있다.


손영순 영남알프스학교 걷기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