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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을 이기는 사람과 채소들 >



지난해 말, 농협에서는 ‘농업가치 헌법 반영 1천만 명 서명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헌법 개정에 농업의 공익적 기능과 그 중요성, 공익적 기능 강화를 위한 국가 책무를 규정,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창출하는 농업인에 대한 재정지원 근거를 마련해 줄 것 등을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역시 ‘농민권리는 농민주장을 넘어 사회적 주장이 되어야 하고, 농민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으면 농산물 생산과 농촌사회 자체가 유지될 수 없다’며 농민권익과 기본권을 강화하는 내용이 헌법에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농업의 공익적 기능과 그 가치는 무엇일까요? 전문가들에 따르면, 식량안보, 환경보호와 생태계 보존, 자연경관과 농지 보존, 생물다양성 유지, 홍수 조절과 수자원 보존, 지역사회와 국토의 균형적 발전, 친환경 바이오연료 생산, 휴식공간이자 자연생태 체험과 녹색관광의 장 등이 그 내용이라고 합니다. 실례로 스위스는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연방헌법 104조에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를 근거로 농정예산의 75%를 직접 지불 방식으로 농업인에게 지급하고 있다고 합니다. 유럽연합(EU)도 2003년부터 농정예산의 71%를 농업인에게 직불 방식으로 주고 있다는 군요.


많은 단체와 전문가들이 농업의 다원적, 공익적 가치를 헌법정신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자명합니다. 농업의 몰락은 개인과 사회, 국가의 파괴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농업 보호뿐만 아니라 농산물의 무역 의존도를 낮추려는 선진국들의 다양한 노력들은 농업의 가치 이전에 존재의의에 더 충실한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의 경우를 살펴보면 참담함마저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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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양의 건강식, 퇴비 >


우리나라의 경우 도시 대비 농가소득 비율은 63.5%(2016년)이고, 농업소득은 1천만 원도 채 안됩니다. 농가 인구는 진작 250만 명 이하로 떨어졌고, 65세 이상 고령농민의 비율은 40%를 훌쩍 넘어섰습니다. 여전히 농촌 이탈 인구가 유입 인구를 넘어서고 있는 실정이고, 노동이 불가능한 고령농민들의 증가와 사망 비율은 하루가 다르게 큰 폭으로 늘고 있습니다. 이처럼 농민의 노동의 질이 극도로 악화되면, 농산물의 생산량과 품질의 저하 역시 불가피하게 됩니다.


FTA 등 농산물의 수입자유화로 인해 우리는 식량 자급에 대한 경각심이 많이 무뎌져 있습니다. 유류수입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불안정성은 식량수입에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식량무기화는 둘째 치고 최근 나타나고 있는 이상기후의 일상화는 농작물 작황을 극도로 불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는 세계 농산물 가격의 급등을 부르고, 당사국보다는 수입국에 더 큰 타격을 주게 됩니다. 농산물과 가공식품 가격의 비정상적인 상승과 불안정성은 수입국 경제 전반의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죠.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 현황을 보면, 위기가 아니라 이미 닥친 현실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20% 정도이고, 쌀을 제외하면 3.7%로 뚝 떨어집니다. 가축사료용 콩, 옥수수는 전부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자급률 하강은 물론 국내 축산물의 가격 불안정을 부추기고 있는 실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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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에 거두는 풀은 봄날의 보약 >


현행 헌법 제119조 제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선언합니다. 균형성장, 적정분배, 시장지배와 경제력 남용 방지, 경제주체 간의 경제 민주화의 정신이 담겨있는 조항입니다. 새 헌법에 담겨야 할 농업의 가치는 현재 이렇게 헌법에 규정된 ‘사회적 시장 경제 질서’의 구체적 연장으로서 출발해야 합니다. 농업의 공공성을 사회 구성원의 총체적인 경제적 이해관계 안으로 끌어들여 1차 산업의 경제적 작동체계를 본질적으로 혁신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다.


사실 경제 민주화는 대기업, 중소기업, 노동자, 농어민, 소비자 등 다양한 경제주체들 사이에 노정되는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서로 협의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도록 국가가 독려하고 개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례로 대형마트에 대한 영업시간 제한 및 의무휴업일 지정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은, “규제로 달성하려는 공익은 중대할 뿐만 아니라 보호할 필요도 큰 반면 대형마트 영업의 자유나 소비자 선택권 등의 본질적 내용이 침해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사회적 파장이 그리 큰 사안은 아니었으나 헌법에 규정된 경제 민주화 정신을 법원이 구체적으로 따랐다는 데에 의미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현재 헌법에 규정된 경제의 공공성에 대한 규정은 선언적이어서 구체성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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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밭의 콩 수확 >


농업의 공공적 가치는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합니다. 우선 이해관계를 달리 하는 경제주체들 사이에서 농민의 위상이 정립되어야 합니다. 농산물과 그 가공품의 안정적 판로와 가격안정이 보장되는 지위를 농민이 가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농산물 가격형성의 핵심 통로인 경매체제가 공공성에 기초하여 재편되는 개혁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농산물 경매제도는 기득권자들의 독점이 보호되는 경제적 불평등의 완결판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농민의 안정적 소득을 보호하는 농산물 유통체제의 혁신은 앞 사례에서 대법원이 언급하는 “규제로 달성하려는 공익”의 중대성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둘째, 생산자인 농민과 소비자가 함께 하는 자조적인 협동조직이 육성되고, 상호연계 되어야 합니다. 이 점은 우리 농업의 존재의의와 국민의 건강권을 수호하는 핵심가치입니다. 현재의 농산물 생산과 소비방식은 ‘저품질 대량소비’의 틀에 갇혀있습니다. 크기와 색깔 맛 등 외형적 품질에 함몰된 품질 선별 방식은 전체 농산물의 품질저하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농업의 제반여건을 악화시켜왔습니다. 현재 대도시 마트에 진열된 농산물들은 생산지만 다를 뿐 그 재배방식이나 품질에서는 천편일률적입니다. 이는 생산자의 독자적 농법이 무력화된 결과물이자 소비자의 선택권이 사라져버린 반경제적 현상인 것입니다.


많은 농민들이 농업의 가치를 헌법에 반영하는 것에 회의적입니다. 필요하다는 것에는 공감하지만, 헌법에 명기되더라도 실익은 없을 것이라는 판단입니다. 새롭게 헌법에 보장하지 않더라도 의지만 있다면, 농업의 회생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게 대부분의 농민들의 판단입니다.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농업 문제는 직접 챙기고, 농정철학과 농업정책의 기본 틀부터 바꾸겠다고 공언했습니다. 박근혜나 이명박, 그 이전의 모든 대통령 역시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니 그러므로 저는 2018. 01. 01 이라는 숫자들의 모임을 ‘408+51’로 이해합니다.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이 지금 이 시간에도 75m 높이의 굴뚝에서 일, 이차 농성의 나날들을 올곧이 지키며 노사합의 이행을 요구하는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외려 희망은 헐벗고 추위에 등 굽은 저 분들의 등대에서 비롯된다고 저는 믿습니다.


...길은 길 위에 넘어져 눈을 감고
어둠이 어둠 위에 넘어져 더 큰 어둠 만들어도
지금 어두운 새벽에
절망보다는 희망이 있어 슬프고
미움보다는 사랑이 있어 마음 아픈
그리운 그대,
이름을 불러본다...

(염명순, 아침노래)


이근우 농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