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선데이서울


80~90년대만 해도 시대를 고민해 왔던 지식인들의 표상은 책꽂이에 꽂힌 <창작과 비평>이나 <문학과 지성>이었다. 호수대로 가지런히 나열된 그 책들이 얼마나 주인 손에 다시 들춰지는지도 몰라도 그 책들은 그 시대 지식인들의 자존심이었고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폭력과 선동에 말살되는 정신을 유일하게 견디고 저항하는 매개물이었다. <창작과 비평>은 1966년에 창간이 되었고 <문학과 지성>은 1970년도에 창간되어 계간지 시대를 열어갔다.


창비는 작년 겨울호가 178호로 현재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난 정작 월간 <말>지 세대다. 1985년 창간된 <말>지는 그 당시 <말>지를 읽지 않으면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 수 있는 몇 안 되는 월간지라 읽지 않으면 선배나 동료들 논쟁에서 물러 설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었다.


최근 영화 <1987>에, 독재시대 서슬 퍼런 감시를 피해 진실을 전하기 위한 위장잡지로 나오는 ‘선데이서울’은 창간연대가 1968년이었다. 주간지의 붐은 <주간한국>의 성공에 힘입어 <주간중앙>, <선데이서울>, <주간조선>, <주간경향> 등이 연이어 창간되었다. <주간한국>은 한국일보가 신문의 별책부록격인 ‘일요판’을 내는 과정에서 분화되어 나왔다. 대중들이 이제 단조로운 일상과 일에서 벗어나, 재미난 읽을거리와 천연색 화보로 볼거리를 갈망하던 사회분위기를 일찍이 감지한 것이었다.


주간지의 성장은 도시생활이 주 단위로 순환되는 생활방식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소비문화 시대의 대표적 매체로 자리 잡게 된다. 칼라 화보 중심의 노출이 심한 모델, 번쩍이는 색깔의 광고 가득한 <선데이서울>은 버스터미널에서는 누구나 한 권 말아 들고 있던 잡지였다. <선데이서울> 화보를 거쳐간 모델만 지금까지 700명이 넘었다.


<선데이서울>은 라면이 10원 하던 시대에, 80쪽에 20원의 싼 가격으로 팔려 창간 때부터 돌풍을 일으켰다. 원래 계획보다 1만 부 많은 6만 부를 찍었는데 두 시간 만에 다 동이 나 버렸다. 서울 태평로 앞에 있었던 서울신문사 사옥 앞에 <선데이서울>을 사려는 가판소년들 때문에 현관문 유리가 깨지는 소동이 일어났다고 한다. 당시 서울신문사는 공보처 감독을 받던 관영언론격이었으니 국가가 성인잡지 내는 일을 공조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1950년대는 수많은 교육기관이 만들어지고 문맹률이 줄자 독자층이 만들어졌고 1960년대 접어들자 각종 잡지들이 쏟아져 나올 기반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1950년대에 1000여 종에 불과했던 잡지는 1960년대에 들어 4000여 종으로 불어난다.


변화는 양적 성장 뿐 아니라 교양종합지, 문학잡지, 백과사전을 비롯한 사전류, 한국문학 및 세계문학전집 간행, 일본소설의 왕성한 번역출판, 미스터리, 무협출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뤄졌다. 이러한 흐름은 정부의 정책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은 언론과 대립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경영 합리화를 내세웠다. 언론사에 정책적 특혜를 부여하고 상업차관의 혜택을 주는 등 ‘언론의 기업화’를 부추겼다. 다매체경영의 길을 열어주자 동아일보는 <동아방송>을 개국하고, 삼성은 <동양방송>과 <중앙일보>를 소유하게 된다. 또한 한국일보, 조선일보, 서울신문 등 주요 일간지는 자사 자매지로 주간지를 창간해 운영하는 일을 신문자본이 주도한다. 이는 군소출판사가 가지지 못하는 신문사에 대한 정부의 제도적인 혜택, 다매체경영과 자본축적, 기존에 구축해 놓은 전국 단위 매체 보급망이 자사 잡지를 유통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중식이 밴드가 부른 ‘Sunday Seoul’ 노래 가사에서 ‘나는 그때 미취학 아동이었다. 바른생활 책이나 월말고사 우등상보다 현란한 싸구려 화보가 나를 성장시켰음을 고백한다.’고 불렀다.


그 당시 <선데이서울>은 가난한 남자들, 사랑과 낭만이 사치인 시대에 성실한 근로자 상을 강요받던 시대에 일에 내몰린 수많은 사람들의 환타지였다. 누구나 쉽게 사서 은밀한 곳에 감춰 놓고 보는 그 <선데이서울>. 이발소에 머리를 깎으러 가는 날은 손님이 몰리면 잠시 기다리며 눈치 보며 이 잡지를 보았다. 온갖 음란 마귀가 득실거리는 이야기들이었다. 감춰졌던 이 <선데이서울>이 공개적으로 나오는 시간은 폐품수집일이었다. 수업시간에 돌려보다 그것마저 들켜 선생님에게 압수당한 그 많은 <선데이서울>은 또 어떻게 소비되었을까? 


참조: <한국현대 생활문화사 1960년대>(창비)


이동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