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도 했는데 애들 보내라. 일주일 정도 내가 데리고 있으마.” 장모님의 갑작스러운 제안이었다. 아직 엄마 아빠와 오래 떨어져 지내본 적이 없던 터라 조금 망설였다. 하지만 녀석들을 위해서도 좋은 경험이겠다 싶어 일주일간 장모님께 보내는 걸로 결정했다. 나도 어릴 적엔 방학만하면 시골 큰집에서 보름씩 지냈다. 그때의 추억들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생생하다. 조금 지루하겠지만, 조금 낯설겠지만 그게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소중한 경험이 될 거라 생각하고 녀석들을 보내기로 했다. 사실 진짜 이유는 일주일간 우리 부부의 자유였지만.


“우리 일주일 간 아주 사소한 말싸움도 하지 말자.” 애들을 데려다 주고 오는 차 안에서 내가 마누라에게 한 제안이었다. 최근 작은 다툼이 잦았다. 그나마 아이들이 있을 때는 녀석들이 완충효과를 해줬다. 아이들이 없는 상태에서의 다툼은 매트리스 없는 낙하처럼 충격이 더 크고, 확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기에 한 얘기였다. 마누라도 같은 우려가 있었는지 쉽게 동의해줬다. 그렇게 우리의 약간은 어색한 6박7일이 시작됐다.


우려와는 다르게 우리는 다투지 않았다. 다투기는커녕 너무도 화기애애했다. 소란스러운 아이들이 없으니 나는 침착하고 부드러운 어투를 사용할 수 있었다. 말투가 부드러워지니 행동도 따라 그리됐다. 아이들이 집을 어지럽히지 않으니 마누라도 한결 여유가 생겼다. 마음이 여유로워지니 행동도 따라 그리됐다. 부드럽고 여유로워지니 마주 앉아 얘기하는 시간도 덩달아 늘었다. 마누라는 아이들 뒤로 밀려있던 나란 존재에 관심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 관심은 고스란히 애정으로 자라났다.


생활에 치이다 보면 쓸 수 있는 애정의 총량에도 한계가 생긴다. 그 한정된 애정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쏟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가 뒷전으로 밀리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아이들이 없으니 그 남는 애정이 내게로 오는 일종의 풍선효과가 생겼다. 내가 마누라의 무관심에 서운함을 토로하면 “애들 크면 다 돌아오게 돼 있어”라고 훈수를 두던 동네 형님 말씀이 이제사 이해됐다. 그랬다. 마누라의 애정과 관심은 (아직 어린)애들에게만 쏟기에도 벅찼던 것이다. 마누라의 지난 무관심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행복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아이들이 돌아왔다. 평화롭던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아이들은 마치 며칠간 굶은 사람처럼 게걸스럽게 집을 어지럽혔다. 쫓아다니며 치우던 마누라도 급기야 불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육아 전쟁이 다시 시작됐다. 그 불똥이 내게로 튀고 나도 덩달아 소리를 질러댔다. 아비규환이었다. 한바탕 소란이 끝난 뒤 아이들과 마누라는 언제 그랬냐는듯 알콩달콩 이야기판을 벌었다. 물론 나는 다시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 그래도 이제는 서운하지 않다. 애정총량의 법칙을 이해하기에. 언젠가는 저 애정이 고스란히 내게로 다시 올 거라고 믿기에.


녀석들의 소란스러움과 녀석들을 향한 마누라의 애정행각을 보며 ‘아... 저게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이구나’하는 깨달음 비스므리한 것도 느꼈다. ‘그래 이렇게 부대끼며 사는 게 사는 거지’하는 해탈 비스므리한 기분도 들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달콤했던 자유와 평화의 시간을 갈망했다. ‘뚜루루루 뚜루루루’ “누나 혹시 내본이랑 새본이 일주일만 데리고 있을 수 있어?”


김동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