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 되어 새끼들을 어미의 품으로 데려다 주자, 뭉치는 젖을 먹이기 시작했다. 세상 밖으로 나오자마자 이별을 한 세 자식의 몫까지 챙기려는 듯 뭉치는 더 애틋하게 새끼들을 보살핀다. 뭉치와 강아지들을 지켜보며 불안했던 생각과 마음이 환하게 밝아지며 ‘이젠 됐다’ 안도감으로 아내와 나는 목욕탕으로 향했다.


몽구는 뭉치가 해산을 하는 동안 화장실에 숨어서 먼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잘 먹지도 않았고, 뭉치 곁에 가까이 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풀어 놓으면 멀리 가려고 하지도 않고 집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뭉치가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고 며칠이 지나면서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시크하지만 행동이 분명한 몽구로.


첫 번째  까만 옷을 입고 태어난 녀석은 암컷이다. 두 번째 하얀 옷을 입고 태어난 녀석은 수컷이다. 세 번째 갈색 옷을 입고 태어난 녀석도 수컷이다. 아내와 다혜는 강아지들의 이름을 짓는다고 며칠을 생각하고 생각했다. 다혜가 제안한 이름이 아내에 의해 명명이 되었다. 첫째는 앵두, 둘째는 나무, 셋째는 사랑이다. 이제 이름이 생겼으니 그 이름으로 그 녀석들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 그 이름이 없어도 그 녀석들은 그대로 그들이겠지만...


나는 어린 시절에도 개를 좋아했다. 개망나니처럼 돌아다니며 어른들의 속을 애지간히 썩이던 나를 변함없이 반겨주던 메리는 화가 난 나에게 발길질을 당하면서도 나를 제일 좋아해 주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어느 날, 동네의 언덕배기 담벼락에 매달려 죽어가는 메리를 보았다. 아버지와 동네 어른들이 우리 집 메리를 잡는 날이었다. 그렇게 나는 나를 좋아하던 메리와 이별을 하고, 메리의 시체를 밥상에서 마주해야만 했다. 어머니가 우리 가족을 위해 끓여준 보신탕엔 메리가 들어 있었다. 두 끼는 메리를 슬퍼하며 메리를 먹는 것을 거절하였지만, 배가 고파진 나는 밥상에 올라오는 메리를 먹어야만 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개를 먹는 것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그때는 그랬다는 이야기다. 지금의 나는 몽구와 뭉치를 먹어야만 하는 상황이 되면 먹을 것이다. 내가 육식을 하듯이 아무 거리낌 없이 먹을 것이다. 옛날 언덕배기 담벼락에 매달려 고통스럽게 죽이던 동네의 어른들과는 다르게 죽이고, 다르게 죽게 되면 감사하게 먹을 것이다. 그것이 산목숨에 대한 올바른 접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좁은 공간에 갇혀서 고기가 되기 위해 평생을 살다가 죽는 고기를 먹는 것 보다 자유롭고 기쁘게 살다가 죽은 고기를 먹는 것이 나쁘다는 가치를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말이다. 사람만이 어제와 내일을 생각하며 오늘을 힘들고 어렵게 살지 자연에서 사는 동식물들은 어제도 없고 내일도 없는 오늘을 살기 때문에 이미 물질로 돌아온 섬유질과 단백질에는 생명의 가치를 두지 않는 것이다. 인간들이 말하는 윤회 또는 천당과 지옥은 현존하는 생명들에게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다만 순환만이 있을 뿐이다.


이것으로 재미없고 지루한 몽구의 이야기를 마친다. 부족하고 맥락 없는 글을 읽어준 독자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내가 쓴 엉터리 많은 글을 가장 먼저 읽어주고 수정해 준 두 아들과 둘째 아들의 여친 예슬이 그리고 나의 수양딸 다혜에게 감사를 전한다. 무엇보다 남편이 글을 쓴다고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스트레스까지 감당한 아내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쓴 글을 실어줄 지면을 할애해 준 울산저널과 편집국에 감사를 드린다. 마지막으로 누군가의 반려견으로 살아갈 앵두, 나무, 사랑이에게 아래의 시를 바친다.


    앵두.나무.사랑


    너희들은 완벽하다.
    어머니가 있고
    아버지가 있다.
    따뜻한 집이 있고
    부모님이 먹을
    밥과 물이 있다.
    그리고
    내일을 모르는
    신의 손이
    너희들의 곁에
    머물고 있다.


다음에 쓸 글은 소설이다. 제목은 ‘소설 가족여행’이다. 가족여행을 통해서 가죽주의와 배려라는 이름의 간섭에 대해 써보고자 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가족과 우연히 만난 현지인들이지만 그들은 모두가 내 다른 모습이다. 그들을 통해서 나와 나의 가족관을 드러내보려는 생각이다.


나는 선반기능사 2급이라는 기술을 가지고 사회에 진출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필연처럼 칼을 쓰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옛날엔 백정이라고 하여 사람 취급도 하지 않던 망나니였던 것이다. 하지만 운 좋게도 백정인 내가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는 글을 쓰게 된 것이다. 벌써 일 년이 다되어 간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여 읽은 경험은 있었기에 내가 쓴 글을 읽고 또 읽어 이상한 곳이 덜할 때까지 고치고 고쳐서 연재를 했다. 한 편의 연재 글을 쓰기 위해 일주일이 부족했다. 두어 달이 지났을 때는 스트레스로 연필을 던져 버린 적도 있었다. 밤을 새우기도 했고, 글이 써지지 않으면 침울하게 지낸 적도 있었다. 내 글을 누군가가 본다는 생각이 미치면 조금 더 잘 쓰고 싶은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난한 과정에서 이제 조금은 글을 쓰는 것에 대한 것들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맞춤법도 띄어쓰기도 엉망인 내가 울산저널에 연재한답시고 부닥친 고난의 시간들이 나에게는 아주 유익한 시간이 된 것이다. 앞으로도 내 역량 닿는 대로 쓸 것이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관심과 질책을 함께할 것이다.


추신, 어머님께 누가 되는 글을 허락도 없이 엉터리로 기재하는 과정에 어머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 것을 정말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어머님 사랑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노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