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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로서 겪는 소중한 경험인 육아를 어른들께 맡기고 싶진 않았다. 나름 힘들었지만 얻은 것도 많다.>

 


모두 평범한 것 같아도 특이한 삶을 산다. 결혼과 육아를 거치느라 자신의 일을 한동안 놨었다. 육아과정을 남에게 맡기기 싫어 11년을 육아에 집중했다. 이제 조금 자유로워지나 하면 또 다른 일이 생겼다. 하지만 그 바쁜 와중에도 전에 했던 영상 VJ 일을 다시 하게 되었다. 휴머니티 프로그램을 찍다보면 그 사람들이 모두 부모 같고 이웃 같아 마음이 짠하다.


1. 경력단절기간이 얼마나 되었나?


지금까지 거의 11년이 되었다. 나는 방송 일을 스물다섯 살에 시작해서 서른한 살에 그만 두었다. 어른들이 내가 근무시간이 너무 불규칙적인 방송 일 하는 걸 보고 그런 일 하면 결혼하기 힘들다고 너무 싫어 하셨다. 규칙적으로 왔다 갔다 해라 해서 학원 경영을 한 5년 정도 했다. 학원을 하다가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3년 만에 아이를 가졌다. 9개월까지 학원수업을 하다 애를 낳고 키웠다. 아무 일도 안 한 지가 한 6년이 되었다. 작년 9월에 중문과를 졸업해 교직원 자격증을 가지고 있어 ‘방과후수업’ 제안이 들어와서 그 일을 막 시작하고 있는데 전에 같이 일하던 PD님이 연락이 와서 다시 방송 일을 하게 되었다. 현재 1인 사업체를 가지고 일하고 있다.


2. 그 당시 VJ(Video Journalist 저녈리스트)로서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었나?


대표적인 것이 <세상발견 유레카>였다. 스튜디오 녹화 외에 VCR을 VJ가 촬영편집해서 만들었다. 99년도 대학을 졸업했다. 막 <VJ특공대>를 할 때였다. 6mm로 찍는 방송을 막 시작했을 때였는데, 의외로 사람들이 반응이 좋았다. 부산에서 처음으로 했는데 그 때 내가 그 일을 하게 되었다. VJ방송(1인이 기획, 촬영, 편집 등 모두 다 하는 방송)은 전국에서 처음 하는 방송이었고, 우리들이 VJ계의 거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방송국 안에서 제작하다가 완전 외주로 방송국을 나와 팀을 만들어 작업을 했다. 영업을 하고 프로그램을 따기도 하고 그런 일을 했다. 휴머니티 프로그램이 주로 내 담당이었는데 주로 어르신들, 장애인들, 아픈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내 일이었다. 내가 했던 아이템들은 편하게 만나는 <6시 내 고향>의 지방편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두루두루 다녀서 사람들은 많이 만났지만 아는 지식은 거의 습자지라고 보면 된다.


3. 그런 휴머니티 프로그램이 본인에게 맞았던 특별한 이유라도 있을까?


주변에 안타까운 일을 들으면 먼저 감정이입이 되어 남일 같지 않게 받아들이는 일이 많다. 부고를 들으면 그 분과 일면식이 없어도 너무 가슴이 아프고 짠해지고 한다.


딸 아들 딸 딸인 집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할머니는 내가 아들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신 분이었다. 그다지 예전도 아니고 농촌에 살고 있어서 그런지 그런 바람이 컸다.


다른 것보다 성격이 고분고분한 성격이 아니라 하고 싶은 대로 해야 하는 성격인지라 막 집에서 마당 쓸어라 일을 시키면 도망을 가고, 여자애인데도 머리도 길게 하지 않고 단발로 짧게 자르고 했다. 언니 오빠가 겪는 일을 세세하게 보면서 언니는 어떤 아픔이 있을 것이고 오빠는 어떤 외로움이 있을 것이고 그런 것을 느끼고 했다.


사람에 대해, 상황에 대해 강하게 느끼는 측면이 있다. 너무 눈칫밥을 먹어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스무 살 넘어서 친구들을 만나면 나는 눈치만 한 3만단 정도 될 것이다. 내 앞에서 나를 속이려 하지 마라 할 정도였다. 


4. 영상 일에 대해서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한다면? 
 
우리는 구성작가가 시나리오를 주는 것이 아니라 직접 현장에서 구성해나가면서 찍어 나간다. 그러지 않으면 그림이 안 나온다. 흔히 사람들이 알고 있는 <VJ특공대> VJ들은 작가들이 디테일한 것을 다 주고 찍는 단순 촬영자다.


나는 서울 일도 해보고 지방 일도 해 봤는데 이곳은 아무런 시나리오도 안 준다. 정말 다 만든다. 그런데 그것이 재미난 것 같다. 그런 류의 다른 프로그램이 다 획일화되는 이유가 있다. 나는 그런 프로그램에 익숙해 있어서 비슷하게 만드는 것도 있다.


주로 병원 촬영이 많은데 각 종합병원 촬영을 갈 때는 사전에 협조를 구해서 간다. 각종 암, 계절병에 대한 그림을 만들려고 간다. <사랑의 리퀘스트> 같은 SBS 민영 공동방송을 하느라 환자 인터뷰 하느라 서울 대형병원들은 다 가보았다. 소아암환자 애기 엄마를 촬영하는데 내가 이런 걸 왜 찍나 죄스럽고 미안한 생각도 들었지만, 이 분들한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잘 찍어서 모금을 많이 모아야 하는 문제라 잘 찍어서 도움을 준다는 마음으로 찍었다. 연출이 불가능한 리얼이다. 어른들 말씀 잘 이끌어 내는 능력들은 있는 것 같다. 환자들을 보면 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 같아서 마음이 안 좋다. 가족들 닥친 고통도 이해가 되고. 
 
5. 사진은 어떻게 찍게 됐나?


방송을 할 때 대부분 다 신방과 출신이었지만 나는 중문과 출신이었다. 방송아카데미를 들어가서 사람들을 사귀다 보니까 대부분이 사진을 찍고 있어서 영향을 받게 되었다. 사진을 따로 배운 것은 아니다. 


아버지가 젊을 때부터 할머니 몰래 숨어서 영화를 보러 가시고, 건축을 했기에 미적 감각도 있고 내가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사람 얼굴을 찍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사진을 정말 잘 찍고 싶은데 사진으로 가는 길에서 자꾸 멀어지더라. 일상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에 오롯이 집중하는 시간이 돼야 내 시간이 되는데 일상 일에 많은 것들에 바쁘다 보니 그런 시간을 내기 어렵더라.
주변 아줌마들이 날 좋아한다. 일상 모습을 잘 찍어주고, 애들 사진도 찍어주니 반가워한다.


6. 육아에 대한 경험을 이야기해 준다면?


아줌마끼리 모이면 진짜 이야기가 많다. 순간이 늘 고비이고 사고가 일어나는 것이 육아의 현장이다. 서른네 살에 결혼을 하니 어른들이 일을 계속해라 애는 내가 키울 것이다 하시길래 너무 놀랐다. 나는 애는 당연히 내가 키우는 것이 아닌가? 신랑이 어른들께 ‘자기가 키운다고 했는데’ 불쑥 이야기를 했는데... 어른들이 “뭐라?” 놀라셨던 모양이다. 하는 일을 계속 할 수 있으면 내가 애는 봐주겠다. 어른들은 좋은 마음을 내신 것인데....  그런 제안에 괘씸죄 같은 죄를 지은 듯했다.
나는 사실 돈에 구애받는 스타일이 아니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이야기들이 있지만 나는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니 엄마로서 닥치는 경험을 오롯이 엄마로서 경험해보고 싶었다.


아무리 말을 해도 내가 일단 부딪혀봐야 아는데 이 훌륭한 경험을 왜 타인에게 맡겨야 하지? 하지만 태어난 지 6일 만에 의료 실수였는지 아이가 소아 중환자실 인큐베이터에 갑자기 들어가니 너무 충격을 받았다. 출산우울증에, 육아우울증에 스스로 너무 잘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이가 아프니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너지더라. 내가 스스로 원죄를 가진 듯한, 일단 나이가 있었고 마지막 주까지 학원수업을 한 것도 마음에 걸리고. 굳이 다른 일도 없었고 크게 힘들지 않게 일 해왔는데 내가 뭘 잘못해서 이런 일이 생기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더라. 뇌에 영향이 있을 수도 있을 거라 1년 이상 지켜봐야 한다 하더라. 의사들이 최악을 이야기하니까. 6개월 뒤 다른 아이보다 성장이 좋아 뇌 사진을 찍었는데 깨끗하더라. 그 뒤에도 자라면서 조금 늦거나 안 되면 혹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한 2년 이상 그런 눈으로 지켜보았다. 그 한마디에 가족과 아이들의 삶이 왔다 갔다 하는 순간이었다. 문제가 심각하더라도 나도 그런 일을 겪으면서 겸손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만 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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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일을 하고 있지만 사진을 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가족 일상을 담고 나중에 작은 사진관을 하나 가지는 것이 꿈이다.>  



내가 애만 키우면서 내가 부끄럽거나 자존심이 낮아지거나 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네가 공언한 바이니 알아서 잘 키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어른들 시각이 좀 힘들었다.


신랑은 6시 반에서 출근해서 9시 반에 들어오는 근로조건이 좋지 않은 중소기업인데다가 일당백을 해야 하는 일이라 육아를 분담하긴 너무 힘들더라. 능력을 인정받는 연구원이지만 그럴수록 더 많이 일해야 하는 분위기다. 해외출장도 잦고 혼자서 오롯이 혼자서 애를 키운다고 생각하면서 키웠다. 좀 지나니, 시간이 나면 애에게 집중을 하려고 애쓰더라.


7. 가족들이 주말은 주로 어떻게 보내나?


신랑이 토요일도 근무를 하고 2~3시에 퇴근을 하니까 1박2일로 여행을 다니기도 힘들다. 그러니까 만만한 것이 경주다. 나는 실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장난감, 키즈카페 등도 애를 안 데리고 다닌다. 나는 바깥에 데리고 가는 것이 좋다.


경주에 너른 들판에 풀어만 놔도 된다. 아파트 고층에 사니까 너무 갑갑하더라. 계속 땅을 딛고 살다가 서른네 살에 처음 아파트를 살았다. 시댁은 아파트인데 시골 촌집이 하나 있어 간간히 활용한다. 친정어머니가 교통사고가 나서 투병중인데 주말에도 평일에도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병간호를 한다고 양산부산대학교병원에 8개월을 거의 매일 다녔다. 퇴원 후에도 계속되는 간호에 많이 지쳐있었다.


주말이면 그래도 남편이 같이 다녀주고 해서 다행이다. 평일은 아이 유치원을 보내면 드디어 나에게 자유가 올 줄 알았는데 백수면서 ‘자유의 인생’을 처음으로 맞을 줄 알았는데 그런 일이 생기더라. 친정과 가까운 통도사는 아이 놀이터였다. 던져만 놓으면 아이들이 그냥 잘 놀더라. 나도 마음이 편하고 아이도 자연을 좋아한다.


8. 그 외 특별한 모임이 있다면?


육아를 하는 중에 케이크를 사러갔다가 우연히 스터디모임을 알고는 나가게 되었다. 목요일마다 3시간을 원어민 선생님을 데리고 영어공부를 하는데 육아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되었다. 배우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 있더라. 다 나보다 연배가 높고 여유 있는 분이라 편안한 기운도 받고, 애들 키우는 이야기도 많이 듣고 지혜도 배운다. 내가 제일 어린 사람이라 그 분들도 반기고 좋아라 하신다.


9. 나중 꿈이 동네 ‘작은 사진관’이라는데 본인에게 사진은 뭔가?


사진은 ‘사랑’이라고 본다. 사진은 사랑이 있어야 잘 찍을 수 있다. 영상작업을 할 때도 애정을 듬뿍 담은 것하고 그냥 무심하게 담은 것하고는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내 사진 첫 대상들은 가족이었다. 서툰 솜씨지만 엄마가 아프지 않았을 때 사진을 찍었던 것이 다행스럽다. 기록사진, 폴더마다 넘쳐난다. 최근 영상 일을 새로이 하면서 명분도 좋으니 좋은 카메라도 질렀다. 월급 받으면 갚아 나간다는 핑계로. 대단히 흡족하다.  


영상분량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사진기로 가능하니 새로운 일을 한다는 명분으로 내질렀다. 기술이 좋아야 하는데 사진을 찍는 데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으니 애와 있을 때 일상을 기록하는 정도다.


사진을 찍으면서 겪는 일인데 사진에 대한 저작권 개념이 별로 없는 듯하다. 내가 찍은 사진을 마음대로 쓰는 경우도 여러 번 당했다. 언론사마저도 내 사진을 가져가서 자신들이 취재한 것처럼 막 쓰는 경우도 있다. 너무 당연하게 문제없는 것처럼 사용하더라. 


애기 돌 사진을 찍고 싶다. 어떤 기념일에 찍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사진, 혹은 엄마, 아빠가 없는 아이들 사진을 찍어 주고 싶다. 어른들에게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이 없다. 어른들 영정 사진도 찍어주고 싶다. 어른들도 사진을 자주 찍어 드리니 처음에는 거북하게 여기시더니 자기 모습도 객관화 되고 이제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모습을 보이시더라. 그런 모습에서 사진이 가진 힘을 느낀다.


이런 엑티브한 일을 오래하기 힘들다. 그래서 방송경력이 있으니 나중에는 영상관련 교육강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직은 경력도 더 쌓고 교육관련 강의 내용을 서서히 준비하고 싶다.
 
10.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방송아카데미 강의를 들었을 때 선생님이 언젠가는 자신을 대상으로 다큐를 만들어보라고 권했다. 나도 어느 땐가 그런 일을 하는 날이 올 것이라 보지만 그 대상은 내 가족이 될 것 같다. 내가 가족들을 관찰하면서 남겨지지 않을까 싶다. 영상이든 사진이든 방송 일을 하면서 아픈 사람들을 많이 봤다. 특히 폐암에 걸려 고통스러워하는 분들은 수술 없이 그냥 편하게 가게 해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치매부부를 촬영한 적이 있는데 환자복을 입은 한 분이 정신이 돌아오면 상대방 보고 안타까워 끊임없이 울고, 반대인 경우도 있다더라. 부부 운명이 참 기구하다 싶다가도 저래도 같이 있어서 다행인가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그런 사람들이 노후를 평온하게 보내고 고통 없이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릴 때 그런 것을 많이 봐 버리니까 좀 힘들더라.   


인터뷰어 이동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