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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보고] ‘순천만국가정원’에서 배우자... ‘콩나물시루’, 울산 비워야 사는 법 찾아야


김기현 울산광역시장은 얼마 전 공개석상에서 공원과 정원을 혼동했다. 생소하다. 정원이 뭘까. 게다가 국가정원이라는 건 또 뭔가. 공원, 녹지, 정원의 법적 구분을 볼 때 국토부와 환경부의 알력도 느껴진다. 본지는 국가정원 1호 순천만국가정원에서 지혜를 찾기로 했다.


21일 오후, 순천만정원 입구


욕이 나왔다. 순천만국가정원에 들어서자마자...

순천을 욕한 것은 아니었다. 정원은 훌륭했다.


‘대공원을 이렇게 하지, 왜 태화강을 갖다가...’


그렇다, 분노의 방향은 울산이었다.


울산이 순천에게 배울 점은 숱하다. 먼저, 정원의 입지와 경계를 생각해본다.


순천만정원 품에는 산과 논이라도 있다. 그래서 겨우 담을 칠 수 있다. 도심과의 분리다.


도시로부터 정원을 보호하는 도시 숲도 있다. 정원과 경지를 분리하는 대로변을 따라 천 그루의 아름드리나무가 심어져 있다. 평온하며 웅장하다.


순천에서는 구릉과 텃밭, 시골집과 무덤... 그대로 남겨놓은 것들과 지형 속에서 인위의 정원이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 주변에 큰 건물이 있어도 생경하지 않다.


대신에 자동차는 물론 사람도 밑으로 지나야 한다. 아니면 옆으로 그도 아니면 동쪽 정원과 서쪽 정원 사이의 길을 통해 정원을 방해하지 않고 통행해야 한다.


울산은 애초에 이것이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자. 울산에서 순천만습지(절대보전지역)나 순천만정원(전이 또는 완충지역)처럼 하려면 지금 태화강역 뒤로 돋질산부터는 전부 다 뜯어내야 한다. 순천은 국제적인 엄격한 약속이 작용하는 곳이다. 울산이 순천처럼 하려면 중공업도 자동차도 석유화학단지도 모두 사라져야 한다. 울산신항과 오일허브도 깨부숴야 한다.


울산은 그렇게 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어쩌면 누구도 이를 원치 않을 것이다. 울산의 옛 모습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무위자연, 순천은 무위자연이다.


문제는 울산이 순천의 그 성공포인트를 본받아 그렇게 할 수 있는 곳마저도 싹을 짓밟고 있다는 점이다. 말로는 생태와 친환경을 외치면서 포클레인과 타워크레인만 호출한다.


저 괴물 같은 등억온천을 보라. <시사저널>에서 국내 최대 모텔촌이라 평한 바 있다. 또 신불산케이블카에 행복이라는 고귀함을 덧붙이는 철없는 발상을 보라. 웰컴센터는 무엇이요 또 그 뒤에 만들려고 한다는 산악호텔은 뭔가. 투기자본의 탐욕 속에 어그러진 저 멀리 시장의 고향, 강동유원지 개발계획 또한 생게망게하다.


문화와 자연이 조화를 이룬다는 정원의 인위성은, 공원의 공공성과 녹지의 생태성을 전면 부정하고 훼손하는 개념이기 때문에 위험하다. 지금 태화강대공원은 도시근린공원이자 태화강 둔치다. 보호해야 할 하천의 일부이자 녹지도 있다. 만약 태화강 둔치를 정원으로 가져가겠다면 태화강 둔치의 정체성을 뿌리부터 뒤흔들 수 있는 이 중차대한 문제에 대해 전문가들은 물론, 시민사회, 주민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의논해야 한다. 태화강의 미래 운명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 태화강의 발원지와 수계를 생각해볼 때 가지산은 물론 영남알프스 전체, 또 반구대 암각화군 등 선사유적과 함께 마스터플랜을 짜야할 문제기도 하다.


무엇보다 서울의 마지막 하나 남은 땅을 아껴두기 위해 마곡지구의 개발 자체를 포기한 당시 조순 시장의 혜안(이 덕분에 최근 마곡지구에 LG그룹 전체 중앙연구단지가 조성)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울산에서 이곳이 과연 어떤 땅인가.


마곡하고는 비교도 안 되게 도심 속 알짜 중에 알짜인 땅이고 환경적으로 절대 보호해야 할 도시생태의 보고를, 그리고 한 번 개발하면 다시 복원하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이곳을 시장의 권력욕 때문에 손을 댄다는 것 자체가 ‘정말 못된 일’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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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와의 약속, 순천만습지


순천만습지는 습지의 보호와 지속가능한 이용에 관한 람사르 국제조약에 따른 절대 보호습지라고 한다. 이곳 습지에서 직선거리 7킬로미터 이내의 땅에 개발을 불허하고 있다.


그 덕에 국가정원까지도 넘볼 수 있는 명분이 생겼다. 순천만습지에서 시내까지는 10여 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데 이 사이의 땅에도 개발이 일부 제한된다. 완충지대, 시내와 이어지는 전이지대로 분류해 마구잡이로 개발할 수 없게 했다. 그중 전이지대 일부에 국가정원이 조성된 것이다. 이미 개발훼손이 심한 울산과는 여러모로 차이가 있다. 순천 국가정원의 경우 금전적 이익을 포기하고 자연을 절대 보호한 것에 대한 보상 관점으로 볼 수도 있는 셈이다.


울산에 국가정원이 도입된다면 어떨까. 그 가능성과 별개로 뻔뻔하다는 생각이 든다. 환경오염에 대한 보상이 정원은 아니다. 설령 그렇더라도, 순천과 단순 비교하자면 울산은 낙동정맥의 중심인 영남알프스 일대에 산악호텔은 물론 케이블카도 모노레일도 깔아서는 안 된다. 반구대 암각화 일대에 생태제방은커녕 둑 같은 걸 쌓겠다고 삽 한 번 퍼 올려서도 안 될 일이다. 그래야 국가정원을 유치할 명분이 생긴다.


아무 힘도 아닌 힘


무려 120만 명끼리 좁은 데 살기도 갑갑한데 200만에 도전하는 울산의 행보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건 착각이었다. 기자는 순천을 다녀와서 도시가 가진 힘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김승옥을 낳고 정채봉을 키운 것은 기실 아무 것도 아니었다. 자연의 힘이었다.


순천에서 김승옥은 무진의 안개를 찾았고 정채봉은 동심의 따스함을 포착했다. 5킬로미터 넘게 떨어진 순천만습지와 순천만정원 사이에는 이 둘의 문학사상이 담긴 순천문학관이 있다. 이 구간에 차 한 대의 매연도 내뿜지 말라고 궤도를 깔아놓은 순천이다.


순천의 젖줄 동천의 무궁한 갈대밭을 본다. 바람의 무심함을 느낀다.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도시는 의외로 아무 것도 없는 원점에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무위가 가능한 도시여야 한다. 그래야만이 채울 수 있다.


순천만은 그렇게 너른 품으로 사람들을 안아냈다.


혹시 젊은 사람들이 이런 걸 안 좋아할 것 같은가? 틀린 말이다. 순천시 통계에 따르면 순천만을 찾는 이들 중에 20대가 최대 90퍼센트에 육박한다. 추위가 아물긴 했지만 여전히 겨울인 21일에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울산은 주인공?


배우가 영화든 드라마든 한 작품을 끝내면 그 배역에서 어떻게든 벗어나야 한다. 안 그러면 아프다.


울산이 한때 영화의 주인공이었다면 은막의 좋았던 추억은 추억 그대로 간직하되 조국 근대화의 주역이라는 캐릭터만큼은 이제 내려놓아야 한다. 이미 만시지탄인데 아직도 이를 버리지 못해 자연을 논하고도 때리고 부수고 새로 짓는 데에 익숙한 것에 반성하지 않으면 도시 자체로 생존할 수 없게 된다. 모아이처럼 말이다.


특히나 울산은 산업근대화시대의 2차 산업적 접근법으로 세계화시대의 3차 산업에 도전하려다 보니 곳곳에서 잡음과 생채기가 생기는 것을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이제 알 법도 한데... 시정 행보를 보아하니 참 답답하다.


재차 전한다. 그럼 아무도 안 온다. 황금알, 푸른 연못... 괜히 그러는 게 아니다.


정원보다는 공원이 낫지 않을까?


‘불도저’ 식 정원박람회 도전보다는 태화강 둔치의 정체성을 살려야 한다.


문외한이지만, 정원과 공원은 비슷한 듯 다르다. 과문하지만 정원이 더 사적이고 과거의 개념이다. 가난한 이는 정원을 가질 수 없었다. 대신 우리는 자연이 곧 정원이었다.


서구는 과거의 정원에서 현대의 공원으로 변화해온 역사가 있다. 퍼블릭 파크다. ‘공공정원’으로 볼 수도 있다. 어쨌든 ‘모두의 정원’이다.


이쯤에서 울산시에 물어볼 수 있다. 우리는 왜 하필 정원으로 돌아가려 하는가. 그렇다면 ‘어떤 정원’이어야 하는가.


울산의 삶, 그 자체의 정원이어야


프랑스 제일의 정원 도시 낭트. 순천과 교류하고 있다. 도시 내 정원이 150곳이며 주민 개개의 삶터 500미터 반경에 정원이 하나 씩 있다. 순천의 롤 모델인 것이다.


순천문학관 옆에는 낭트정원이 있다. 프랑스 낭트 시에서 조성했다. 강물은 낭트의 그것처럼 굽이쳐 흐르게 두었고 그네들의 먹을거리인 포도나무를 심어 길렀으며 텃밭의 허브도 옮겨놓았다. 허브도 화분 밖을 벗어나면 훌쩍 자라는구나. 낭트정원에는 낭트찻집도 있는데 프랑스에서 감기약보다 낫다는 ‘뱅쇼’를 끓여다준다.


즉, 최고의 정원도시가 말하는 정원은 그저 자기네들의 있는 삶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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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떠했나. 굳이 정원이 아니더라도 우리네 모습을 반추해볼 수 있는 건 많다.


4대강과 고향의 강이라는 명분으로 굽이굽이 강을 곧게 펴고 둑과 보를 세워 막은 탓에 강물이 썩고 가뭄과 수해에 취약한 화를 외려 자초하지 않았는가.


울산시정은 친환경무상급식과 로컬푸드에 관심이 소극적이지 않았나. 지산지수는 물론이요 공동체를 지탱하는 마을 텃밭에 대한 관심은 어떠했나. 정원박람회에 마을 정원이나 텃밭은 얼마나 반영이 될까.


그저 중앙당 핵심의 발언대로 공약이라는 것은 공수표여서 아예 주민들을 선거와 정치의 ‘텃밭’ 쯤으로 여기지는 않았는가. 그런 마음가짐이 태화강 정원에도 구현되려 하지는 않았나. 중앙 할당 식 서명운동과 박람회 졸속 추진에서 이미 예견된 문제는 아니었을까.


태화강이면 정원하기에 아깝다


태화강 정원으로 지으려는 곳은 태화강대공원이고 원래가 태화강 둔치다. 둔치가 무엇인가. 시민들의 친수공간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울려 살고 있는 삶의 터전이다. 특히나 태화강에서는 주민들의 힘으로 지켜낸 공간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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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치에는 경계가 없다. 어떤 사람만 들어오고 어떤 사람은 못 들어오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학 새내기들이 한강 둔치에서 치맥을 즐긴다고 해서 강물과 바람과 잔디가 귀천을 따지지는 않는다.


태화강 국가정원 지정은 그걸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입장료를 징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징수하지 않겠다면 관리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태화강 둔치에 국가정원을 만들어 입장료를 징수한다? 같은 시민을 두고서도 소통과 불통의 대상을 나눠 따지는 시장의 마인드가 아니고서야 나올 수 없고 결코 나와서도 안 되는 발상의 결과물인 것이다. 기자는 한강공원에 입장료를 받는다는 얘기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게 상식이고 공공선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말한다. 만약 정원을 조성하면 태화강 둔치에 그 많은 담장을 어떻게 칠 것이며 둔치에 담을 쳐서도 안 된다고. 그 생각 자체가 불온하다고 꾸짖는다. 태화강국가정원을 전면 무료화하지 않고서야... 하지만 지금, 정원 역시도 관광 목적에 우선하고 있지 않은가.


순천만정원 동편과 서편을 이어주는 ‘꿈의 다리’ 초입에는 경계의 글이 있다.


‘비우고 비워도 마음은 다시 채워진다.’


비우고 비우도 다시 채워지는 이 마음이란 것을 경계할 때, 어딘가 텅 비어있는 울산 역시도 사람의 따스한 온기로 채워지지 않겠는가?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태화강 국가정원과 정원박람회 추진 문제는 전면적으로 재고돼야 한다. 태화강 둔치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서부터다시 시민들과 함께 논의 테이블을 수립할 것을 제안한다.


순천=이채훈 기자


*최근 울산시는 태화강지방정원 운영 조례 제정 계획에서 무료화 방침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