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일어난 나는 체육복을 입고 조깅을 하려고 낯선 길을 따라 천천히 달리면서 길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차 한 대 다니지 않는 이른 아침의 한적한 도로에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빵 빵” 클랙슨(경음기) 소리가 들리더니 “형님, 일찍 일났네! 오른쪽으로 가다보면 올레길이 있심더. 멀리 가지 말고 빙 돌아가 숙소로 가소. 공 치고 오후에 봅시더.” 동생이었다.


큰 도로를 따라 해안 쪽으로 달리려던 계획을 바꾸어 동생이 일러준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려서 한참을 달려가자 찻길이 없어지면서 자그마한 포장도로가 연결되어 있다. 길옆으로 잔디밭이 보이고 호수가 보이더니 구불구불한 길이 호젓하게 이어졌다. 올레길인지 산책길인지 달리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길이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인적도 없이 고요하고 공기는 맑고 시원하다. 길 왼쪽의 숲속에서는 내 발자국 소리에 놀란 노루 두 마리가 달아나다 돌아서서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맑고 쾌적한 공기를 마시며 호젓하게 길을 달리자 몸이 더워지기 시작했고 이마에선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활발하게 움직이며 몸이 활동을 하자 마음에 평화가 찾아들면서 어제 일어났던 소동도 잊혀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이삼십 분을 달리다가 문득 달리고 있는 곳이 골프장이라는 생각이 전신을 감쌌다. 그랬다. 티브이에서 보던 풍경과는 다르게 느껴졌지만 분명히 골프장이었다. 내가 달리고 있는 길은 올레길이 아니고 골프장의 카트 도로였던 것이다.


재빨리 눈치를 챘어야 했다. 달리던 도로의 왼쪽은 숲으로 계곡이 있었고 울창한 숲이 이어지고 있었다. 오른쪽으로는 잔디가 길게 있었지만 푸른색도 갈색도 아니었다. 호수가 있는 주변의 억새는 누렇고 하얗게 모여 있어서 황량한 가을 벌판 같았다. 변화가 별로 없는 밋밋한 길을 40분 이상 달려 나지막한 언덕길을 오르는데, 무엇인가 달리는 앞쪽에서 “뚝”하고 떨어졌다. 골프공이었다. 공이 날아온 방향을 보니 두 세 사람이 서 있는데, 나를 쳐다보고 서있었다. 달리는 속도를 올려서 손을 들어 보이고 그들이 서 있는 곳을 지나치면서 살펴보니 네 사람이었고 카트도 모퉁이에 서 있다.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캐디는 갈대가 이어진 숲에서 무언가를 찾는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다행히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있는 장소를 지나고 나서 밖으로 난 길을 찾아 봤지만 길은 없었다. 돌아가야 하는 것일까 고민을 했지만, 눈앞에 보이는 골프 코스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이미 한참을 내친걸음이었다. 가물한 거리에 사람들이 보이기는 했어도 그들과 내가 영향을 주고받을만한 거리는 아니었다. 갑작스럽고 조금은 어색한 분위기에서 달리는데 커다랗고 둥근 자바라를 연결한 나지막한 차가 잔디 위에서 바람을 뿜어내며 일을 하고 있다. 운전석에 앉아서 일을 하던 남자는 나를 힐끗 보더니 아무런 반응 없이 하던 일을 했다.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골프장을 빨리 빠져 나가고 싶은 마음으로 열심히 달리고 있지만 길은 끝이 없이 이어져 있다. 달리기를 시작한지 한 시간이 가까워져 8시 30분을 지나고 있을 때, 전화기가 울렸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쳐내고 주머니에 들어 있는 전화기를 꺼냈다.


“형님인교?” 동생의 전화였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대답을 하자 “나는 형수가 전화기를 가지고 있는 줄 알았심더. 숙소 바로 뒤에 있어가 형수보고 구경 오라고 전화했는데! 알았심더.” 아, 우리부부는 한 대의 전화기를 공동으로 쓴다. 함께 횟집을 하면서 24시간 붙어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내는 절약을 핑계로 전화기를 사 줄 의사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 그런데 여기가 골프장 같은데?”
“골프장에서 달리면 안 되는데.”
“니가 가라카는 데로 왔는데 골프장이다.”
“어디쯤인교?”
“내가 알 수가 있나? 나갈라케도 나갈 길이 없다.”
“사람 보내주꾜? 하여튼! 형님은. 공치는 사람은 없는교?”
“멀리 떨어진 곳에서 군데군데 보이기는 한다.”
“그거는 다행이네! 하여간... 빠져 나가야 됨데이. 공치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면 안 되는 거는 알지요.”
“알았다. 걱정마라. 공이나 잘 쳐라.”


전화를 끊고 속도를 올려 달리다가 모퉁이를 돌아서자 골프를 치는 사람들이 자기들 쪽으로 달려오는 나를 보고 멈추어 서있다. 옆에 있던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여자가 손을 번쩍하고 들면서 나를 세우며 무어라고 말을 했지만, 나도 손을 들어 답례를 하면서 “나가는 길이요.”라고 말하며 까마득히 먼 곳에 가물하게 건물이 보이는 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들을 지나쳐 왼쪽으로 굽어진 길을 돌자 다시 길고 긴 카트 길이 다시 이어지고, 카트 한 대가 나를 향해 오고 있었다.


아들과 며느릿감인 아들의 여자 친구는 볼거리를 검색하고 맛집을 검색하며 돌아다녔다. 애써 찾은 맛집은 비싸기만 했지 맛도 없고 니글거리기만 했다. 아침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후에는 자기가 안내를 하겠다는 것이다. 동생은 서귀포에 있는 자구리국수 집에서 만나자고 했다. 아들이 검색을 하더니 곧바로 자구리국수 집으로 출발했다. 해안이 보이는 언덕길 중간에 자그마한 식당이었다. 열두 시가 되지 않았는데, 예약이 다 되었다고 1시까지는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아들이 동생에게 전화를 해서 현장의 분위기를 이야기하자, 해안을 따라 조성된 음식거리를 돌아보고 1시 30분에 그 자리에서 만나자고 한다. 동생은 혁신도시에 있는 부동산에 볼 일이 있다고 아들이 전했다.


아침부터 꼬였던 심사가 또 뒤틀리기 시작했다. 제주도까지 와서 부동산에 볼 일이 있다는 말에 알 수 없는 질투가 일어났고, 아침에 골프장에서 쫓겨나던 일이 생각나자 짜증이 확 일어났다.


아들과 아들의 여친은 휴대폰으로 검색을 해 여러 식당을 보여 주었지만 식당을 선택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갈치찜을 먹자! 옥돔 구이를 먹자! 국밥을 먹자고 하며서 맛집 블로그에 올라온 집을 찾아 다녔지만, 휴대폰을 보고 점찍은 식당이 짠하고 나타나지도 않을 뿐더러 막상 식당을 찾아서 식당 문 앞에 서면 무엇인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배는 고파 오는데 길 잃은 사람들처럼 이리저리 방황하는 모습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손을 들어 식당을 가리키며 “저리 가자”고 결단을 내리듯이 말했다.


오랫동안 햇볕에 바랜 간판엔 복매운탕, 복지리가 세로로 적혀있었다. 유리에 선팅된 메뉴에는 갈치찌개, 옥돔구이, 김치찌개, 백반정식 등의 메뉴가 적혀있고, 햇볕이 드는 식당 입구에는 노인 두 사람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내와 ㅇㅇ이 머뭇거리자 아들이 “여기도 괜찮을 것 같아. 나는 갈치찌개가 먹고 싶었는데, 갈치찌개도 있고 옥돔구이도 있네요.” 내가 먼저 입구로 향하고, 주춤거리며 지나치려던 아내와 ㅇㅇ이가 결정이 난 식당으로 향하자 식당 앞 의자에 앉아 있던 노인 둘 중 하나는 식당의 뒤편으로 가고 조금 나이가 덜 먹은 듯한 노인이 “어서 오이소”하면서 식당으로 들어간다.


의자가 딸린 탁자가 세 개, 평상처럼 바닥에 올려서 개조한 방에 네 개의 식탁이 있다. 식당 안쪽 어두운 곳에서 뚱뚱한 할머니가 나와서 방으로 올라앉으라고 권하며 메뉴판을 준다. 갈치찌개와 옥돔구이를 주문하면서 아들이 비싸다고 했을 때, 나는 돈 걱정은 하지 말고 먹고 싶은 대로 시키라고 했지만, 생각보다는 비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식당은 1987년을 연상하게 했다. 숟가락통의 수저에는 고춧가루와 음식찌꺼기가 어두운 내 눈에도 보일 정도로 많이 붙어 있었고, 테이블과 테이블 위의 가스레인지는 그야말로 가관이 아니었다. 주문을 취소하고 일어서려는 셋을 눈짓으로 제지했다. 아들은 어쩌면 이런 집이 진짜 맛집일 가능성도 있다면서 엄마와 여친을 위로하고 있었다. 아들이 수저를 챙겨서 씻어 달라고 노인을 건네는데, 아내는 물컵에 수저를 담갔다.


음식이 나오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셋이 사진을 찍으며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노인의 과거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통영사람이었고 제주에 정착한지 23년이 되었다고 했다. 복국을 전문으로 했으나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메뉴도 함께 늘어난 것이었다. 우리의 식탁에 오른 밑반찬은 일반 가정식처럼 투박하고 볼품은 없었지만 먹어줄만 했다. 그러나 갈치찌개는 멀건 국물에 라면스프를 넣었는지 닝닝해서 먹기가 어려웠고, 옥돔은 소금에 절고 말라서 짜고 딱딱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체면이 또 구겨지는 순간이었지만, 머쓱해진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여행을 한다고 생각해라. 아버지가 젊을 때 다니던 식당 모습이다. 그리고 바퀴벌레가 몰려다니지 않는 것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아서 판단해라. 그리고 저 노인들이 우리 같은 호구가 없으면 밥이나 먹겠냐? 불쌍하다는 생각으로 좋은 일 했다고 생각하자.”고 얼버무렸다. (다음호에 계속)


노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