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스스로 미술관에 가둔 한 사람이 있다. 창문 하나 없이 폐쇄된 전시장 한구석에서 숙식을 하며, 전시장을 찾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만나고, 그들이 건네는 물품들로 배를 채우며, 고립시킨 감각을 온몸으로 맞이하고 있는 사람.
그런 그는 “위는 갑자기 돌처럼 멈춰버렸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심장은 요동치고 근육이 경직되거나 온몸이 떨리기도 하고…. 지나가는 무엇에도 덤벼들고 싶어지는…. 순간순간 정말 사소한 것에도 이를 악물어야만 참을 수 있는 고약한 심리 상태로 저를 몰고 갔습니다.” 하고 말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은 손쉽게 정보를 얻고, 음식을 먹고, 잠을 청하며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감각들의 익숙함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무엇이든 익숙함이 새로움이었던 시작이 있었을 것이고, 그 새로운 상황과 환경들은 낯설고, 불편한 상황들을 지나 익숙한 지점으로 접어들게 된다. 이것에 대한 실험일지, 의식일지 모를 극단적인 상황 속으로 뛰어든 김도희 작가는 본인 스스로 감각의 한계점 가까이에서 무언가를 확인하며, 그 상태를 이겨내거나 소화해내고 있다.


그는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텅 빈 전시장에 누워 자신에게 일어나는 감각의 변화와 오가는 사람들과 부딪치는 매 순간을 일지로 기록하며 보냈다. 자신의 몸과 감상자들의 패턴이 감지된 익숙한 시점이 찾아온 14일이 되던 날. 그는 원래의 집에서 지낼 때와 감각적 심리적 차이 없이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란 것을 몸의 판단으로 알아차리고 전시장을 걸어 나왔다고 한다.


이것이 무슨 고약한 행태인가 싶다가도, 한 인간으로 감각하는 모든 것들을 이토록 적극적으로 맞이하려는 태도를 어디서 일깨울 수 있을까 싶어 작가의 세계에 탄복하고 말았다. 그리고 내가 백숙을 손수 먹어 보겠다며, 생전 처음 생닭을 맨손으로 호기롭게 잡아들었다가 갓난아이의 살갗 같은 촉감에 툭 하고 떨어트린 기억이 떠오른다. 과연 나는 이 불편한 감각을 이겨내 닭을 만져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의 기로에서 두 눈을 질끈 감고, 다시금 닭을 매만지며, 소용돌이치던 감각들에서 자유롭고 싶던 순간을 돌아본다. 


11김도희_콘크리트시계 전시 전경_2011

김도희, 콘크리트시계 전시 전경, 2011


8일째 529


AM 6:42
황연주님이 준 타일레놀 한 알 복용
몸에서 냄새
전일 먹은 것 토함
허불님께 체온계와 혈압계 부탁
부모님이 친구 편에 연락
기계 속으로 알 수 없는 소리가 흘러나오는 끔찍함
어제 기록지 초등생들이 껌 뱉느라 찢어서 다시 기록


12:00
오한. 매니저가 감색 스웨터를 빌려줌
매니저는 땀을 닦으며 바깥이 폭염이라 함


PM12:45
전정훈님이 하얀 양말과 김을 줌


PM13:20
이주연님과 백효진님이 꽃을 두 송이 주었음
꽃이 피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라 함


PM12:00
설기효님이 삼각김밥, 쥬스, 샌드위치를 줌
대화중 계속된 헛구역질 때문에 물을 떠 줌


PM3:00~5:00
신제현님이 과자와 맥주 두 캔을 가지고 옴
바로 아이들이 몰려와 모두 다 가져감
신제현님은 나를 당겨 일으킨 후 요즘 한다는 운동법 따라하게 함
한 시간 동안 포르노의 역사, 산업, 종류에 관해 알려줌
개인용 포르노 제작 매뉴얼이라는 소책자를 줌


PM7:00
몽키시티라는 건축사분이 부채질을 하며 들어옴
가방 뒤져 빨간색 핫팩을 두 장 줌
건축일을 해서 아는데 먹는 것보다는 한기가 문제일거라고 함
전시공간의 창문 막은 자리를 보고 싶어 해 알려줌
이불이 얇다고 담요를 가져다주신다는 것을 사양


PM8:30
외벌로 입고 있던 청바지와 셔츠 벗어 세탁
이불 속에 들어감


PM9:00
바나나 한 개, 빵 반 개
핫팩 붙임
혈압 84/55


<김도희_ 콘크리트 시계 일지 _2011>



검은 반점이 생기기 시작해 아래가 욕창처럼 썩어 물이 흐르는 바나나 같이... 이 축축하고 검은 공간 덩어리는 시간이 갈수록 기체에서 고체화 되고 있었고, 내 온몸의 세포들은 모든 관계를 단절시켜 원래 그것이 왔던 어떤 고체 또는 기체로 되돌아가고 싶어 했다. 공간에 들어오자마자 반사적으로 운동을 멈춰버린 위, 요동치는 심장, 경직되어가는 근육, 사유할 틈이 없는 몰아침, 과잉 정보로 인한 멍청한 상태... 뇌를 비롯한 모든 것들이 냉정하게 공조했고, 자아나 사유 따위는 너덜거리는 허풍처럼 거추장스러웠다. 빛이 그립지 않고, 날씨도 궁금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관심 없이 앉아서 휘둘리고 숨 쉬는 것만도 전혀 심심하지 않았다. (김도희 작가노트 )


고사리 미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