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찹싸알~떠억 메미일~무욱!”


눈썹달이 오슬오슬 떠는 긴 겨울밤, 가로등빛이 흔들리는 골목을 드나들며 노래하던 메밀묵장수를 이제 만날 수 없다. 구불구불 돌아나던 골목과 마당 깊은 집들은 대부분 고층아파트에 자리를 비켜주어, 우리의 기나긴 겨울밤 허기를 때워주던 메밀묵장수는 차가운 벽에 대답 없는 노래들만 부르다 전을 접은 것 같다. 퇴근길 마트에서 메밀 생면을 하나 집어 들었다. 집에 제법 맛이든 동치미가 생각나 오늘밤엔 동치미냉면으로 이냉치냉하며 매서운 한파를 견뎌보기로 했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메밀꽃은 여름끝 무렵에 피고, 10월에 수확을 한다. 그러니 메밀의 맛을 즐기려면 가을에 수확한 메밀을 겨울에 요리해 먹는 것이 가장 좋다. 메밀은 다른 곡물과 달리 점성과 탄력이 떨어진다. 우리가 밀가루로 만든 음식을 좋아하는 까닭은 쫄깃한 식감이 큰 몫을 한다. 물론 값이 싸다는 점도 있지만, 밀가루 음식의 쫄깃함은 글루텐 성분이 만들어내는데, 메밀에는 이 글루텐 성분이 턱없이 부족하고, 수확 후엔 글루텐의 농도가 점점 떨어진다. 지금 시중에 나와 있는 메밀가루나 면은 다루기 쉽고 식감을 쫄깃하게 하기 위해 다른 곡물(밀)이 섞여있다. 시중의 건조된 메밀면은 보통은 메밀가루와 밀가루를 3:7 혹은 4:6 정도로 배합하여 만들어낸다. 밀가루의 배합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며 메밀의 함량이 높을수록 향과 맛은 더 메밀답겠지만 음식을 만드는 일과 먹는 일은 즐거워야하기에 밀가루의 존득함에 익숙한 우리 입맛 탓에 밀가루의 배합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메밀을 찾는 많은 분들은 글루텐이 우리 몸에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치기에, 글루텐이 없는 메밀을 찾는데 메밀면에 밀가루가 들어있으니 좀 난감한 일이다.


평양냉면, 함흥냉면 모두 겨울에 즐기던 음식이었는데 메밀의 향이 달아나지 않게 보존하는 기술이 발달하여, 차게 먹는다는 것 때문에 여름에 더 찾고 즐기는 음식이 되었다. 우리가 가위로 잘라가며 먹는 쫄깃한 평양물냉면은 메밀면이라 부르기가 좀 그렇다. 함흥냉면처럼 전분을 배합하기 때문이다. 메밀로 만든 평양면은 가위가 필요 없는 면이 제대로 된 평양냉면이다. 십여 년 전 금강산에 가서 먹었던 물냉면은 찰지지 않고 입안에서 후드득 끊어지는 느낌에 의아했는데, 나중에 메밀면의 특성을 알게 되어 이해가 되었다.


메밀로 만든 우리 전통 메밀면들은 다 차게 먹는 것으로 전해졌다. 메밀은 뜨거운 물 혹은 육수에 들어가면 풀어져 자칫 죽이 되기 쉽다. 메밀이 따뜻한 면으로도 차림표에 오른 것은 밀가루의 덕이며 장터에서 푹 고은 고기국물에 잔치국수처럼 메밀면을 넣어주던 것이 오늘날의 메밀온면이 되었다. 메밀의 찬 기운과 많은 량의 밀가루 배합으로 온면에서 메밀의 향과 맛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메밀은 위와 장에 좋으며 몸의 독소를 배출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몸이 찬 사람에겐 메밀은 맞지 않으며, 알르레기 체질에게도 권할 만한 음식은 아니다. 강원도 봉평은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덕에 산다는 우스갯소리도 있고, 아직 우리 땅에서 자란 메밀은 쉽게 구할 수 있으니, 수입 밀가루보다 글루텐이 적은 우리밀이 배합된 메밀, 건조면보다 생면을 구하셔서 조리해 드시는 게 좋은데, 이 두 가지를 다 충족할 제품이 시중에 있는 지는 확인해 보지 않았다. 올 겨울은 시원한 동치미국물에 메밀면을 후르르 말아먹으며 남과 북이 하나 된 겨울 올림픽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


성경식 셰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