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발자연

어떤 물고기든 먼저 옆에서 보았다면 단지 먹이로만 여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동고 기자


요즘 한 마디로 낚시 열풍이다. 낚시라면 한 두 개의 낚시 채널이 있었고 자연 속에서 고요함을 즐기는 호수 낚시 정도였다. 밤새 어둠 속에서 빛나는 찌의 미세한 움직임에 집중해 챔질을 기다려 낚은 물고기를 길이만 재고 바로 다시 놔주는(Catch & Release) 모습은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지금은 가히 예능 낚시 시대로 접어들었다.


한 종편에 ‘도시어부’라는 이름으로 유명 연예인들이 바다낚시를 즐기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은 이후 곳곳에서 낚시 열풍이 일고 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낚시꾼이 으레 그렇듯 대물이다. 대물이 나올 만한 장소 경쟁, 대물을 낚으면 엄청난 흥분과 기쁨이, 물고기를 한 점이라도 건지지 못하면 기가 죽는 그 미묘한 감정선이 바로 이 프로그램이 갖는 묘미다.


방송에서 춥고 긴 겨울 풍경을 잡아내는 데도 얼음낚시를 하는 풍경은 한마디로 대세였다. 화천 산천어 축제장에 바둑판 알처럼 일정 간격으로 자리 잡은 사람들이 얼음구멍을 통해 산천어를 낚는 풍경이 겨울풍경의 전형처럼 되었다.


우리가 사이버상에서 자극적인 제목에 끌려 들어가면 별 내용이 없거나, 전혀 다른 내용에 끌려 들어가는 것을 ‘낚였다’라고 표현하듯이 낚시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꼼수다. 낚시는 물고기를 속이는 행위다. 물고기가 좋아할 법한 탐스런 미끼 속에 바늘이 들었거나 아예 진짜 보다 더 화려한 인조 미끼로 물고기를 유혹하는 속임의 기술이다. 심지어 먹을 수 없는 쇳조각이나 플라스틱으로 물고기를 잡기도 한다. 낚시꾼 입장에서는 그걸 물고 올라오는 물고기가 가엽다고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물고기의 우둔함을 깔보는 마음만 가득할 것이다.


물고기의 인지와 행동을 연구하는 컬럼 브라운 박사는 인터뷰에서 물고기의 ‘3초 기억력’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이들은 먹는 게 최우선입니다. 왜냐고요? 환경이 너무 불확실해서 먹이를 보면 도저히 지나칠 수 없기 때문이죠. 많은 물고기들은 심지어 배가 꽉 찬 상태에서도 먹이를 먹습니다.”


“기억력이 나쁘지 않고서야, 똑같은 미끼를 여러 번 문다는 건 너무한 거 아닌가요?”


“글쎄요 당신이 몹시 굶주려 있는데, 누군가가 당신의 햄버거에 지속적으로 갈고리를 집어넣는다고 생각해봅시다. 예를 들면 열 번에 한 번 꼴로 말이죠. 그런 당신은 어떻게 할 겁니까? 제가 보기에, 당신은 햄버거를 계속 먹을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굶어죽기 때문이죠.”


낚시를 가는 돈이라면 차라리 장에서 그 물고기를 사는 것이 훨씬 이득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낚시에 열광하는 것일까? ‘삼시세끼’ 프로그램이 갖는 묘미는 내가 직접 채비를 하고, 물고기를 잡고, 동료들 입에 물고기가 들어가는 과정까지, 맑스적 관점에서 이야기하면 낚시꾼이 그 모든 것을 장악하는 그야말로 ‘소외되지 않은 노동’이 갖는 만족감일 것이다. 하지만 노동이 갖는 중요한 가치는 전혀 다른 데 있다. 바로 자신이 먹을 음식을 조리하기 위해 생명을 죽여야 하는 일 말이다. 음식을 장만하면서 우리는 ‘생명윤리’를 생각할 기회를 얻는다는 사실이다.


처음으로 닭을 키워 본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알고 지내던 수사님이 온다길래 가마솥에 물까지 올려 끓였다. 도착할 시간은 다가오는데 도저히 닭을 잡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닭을 먹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닭의 목을 비틀어야 하는 일이었다. 어영부영하다가 수사님이 도착했고 그 연유를 들은 수사님이 직접 닭목을 비틀었다. 끓는 물에 담가 털을 뽑고 속을 가르고 내장을 분리해내고 그 과정은 닭 한 마리를 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엄중한 일인가에 대한 생생한 체험이었다. 한 생명을 죽였고 아직 김이 술술 나오는 내장을 분리하는 과정은 스티로폼에 깨끗하게 누워있는 허연 닭을 대할 때와는 다른 생생함이었다. 넘쳐나는 육식문화에는 우리가 그들을 직접 대면하지 않는다는 편안함의 울타리가 있다. 


물고기의 행동, 해부구조, 생리 분야에서 그동안 이뤄진 연구를 보면 학계 대부분은 이미 “물고기도 고통을 느낀다”고 결론을 내렸다. 물고기가 대뇌의 신피질은 없어도 뇌의 다른 부위를 통해 고통을 느낀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련의 실험 결과가 뒷받침한다. 우리는 그들을 맨손으로 잡든, 낚시 바늘에 꿰든 고통을 주면서 웃으며 기뻐한다. 심지어 산 낙지를 매운 양념장에 치대어 입에 넣으면서 기뻐한다. 인간이 다른 생명체를 대하는 윤리는 실종되어 간다. 


산천어 체험 축제장에서 낚시질과 맨손 잡기로 아이들이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생각하면 아득해진다.


이동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