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계속해서 되풀이되는 감정이나 일들이 있다. 그것을 심리학에서는 역동(逆動dynamics)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역(逆)은 거스르다, 거절하다, 거꾸로 생각하다, 어긋나다 라는 뜻이고, 동(動)은 움직이다, 흔들리다, 일어나다, 나타나다라는 뜻이다. 이 두 글자를 합하면 거슬러 생각하다, 거슬러 일어나 나타나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역동이라는 말은 지금 이 상황에 나타날 생각, 감정, 행동들이 아닌데 그것들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우리의 일상생활에 적용시켜보면 지나간 일에 대해 ‘그렇게 안 해도 되는 일이었는데...’라는 것들이 된다. 이러한 역동으로 우리는 과거에 있었던 일로 인해 현재에도 영향을 받게 되고,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것들이 많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유난히 조심스러운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원래는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로 자신이 표현하고 하고 싶은 것은 표현하는 사람, 짜증이나 화를 못 숨기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사람의 환경을 살펴보면 아버지는 이 사람과 비슷한 불같은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참다가 어떠한 낌새도 없이 단 한 번에 한꺼번에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하는 물 같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아버지의 불같은 모습과 어머니의 물 같은 모습을 자신도 모르게 답습하게 되었다. (이것을 심리적인 용어로는 함입(陷入, 빠지고 파묻힐 함, 들어갈 입)이라고 한다. 합입의 개념은 나도 모르게 빨려들어가 그렇게 행동한다는 의미이다.) 그리하여 이 사람은 결정적이고 위기의 순간에는 아버지와 같은 화(火)의 성질로, 평소에는 엄마의 물(水)의 성격으로 지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이 사람이 볼 수 있었던 최초의 환경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 사람에게는 아버지, 어머니의 생각과 느낌, 행동들이 자신도 모르게 스며들어 가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 사람은 화가 나면 아버지처럼 불같이 화를 내었고, 화가 가라앉으면 어머니처럼 가만히 있는 모습을 보였다.


이 사람은 그렇게 20년을 보내면서 별로 좋지 않은 점이 있다라고 느꼈다. 하지만 20년 동안의 시간은 학창시절의 경험이 거의 전부였기에 다른 경험들을 할 수 없는 제한된 환경 속에서 과거의 습관처럼 그렇게 지내왔다. (이것을 심리적인 용어로는 내사 (內司, 내부를 담당하다라는 뜻이며, 무언가 나만의 생각이나 느낌이 있음을 감지하였으나, 판단을 보류하고 했던 대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다 그 사람에게 첫사랑, 그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부모님 외에 의미 있는 대상이 생겼다. 그 사람은 자신이 살았던 것처럼,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어머니가 했던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했다. 하지만 그 사람의 그러한 생각과 행동, 느낌은 부모가 아닌 대상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 사람은 다른 대상과의 관계를 위한 변화가 필요했다. 그리하여 비로소 자신의 생각과 느낌, 행동들을 찾는 여정을 시작하였고, 그 과정을 기꺼이 감당하기로 하였다. 즉 내 앞에 있는 대상이 나의 부모가 아닌 다른 사람임을 깨닫고, 내 앞에 있는 바로 그 사람을 살펴보고, 관심을 가지고, 내 눈앞의 바로 그 사람과 비로소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과거에 대한 심도 있는 탐색과 관찰, 숙고와 반추를 할 수 있는 표현의 장이 필요하다. 이런 것들을 하는 곳이 상담이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알고 깨닫게 된 것들을 생활에 적용시켜보고, 지금 여기에 나와 함께하는 사람과 일에 집중하게 하는 것이 상담인 것이다.


추운 겨울 마음이 힘들어 상담실로 오는 이들이 많다. 이들을 만나면서 드는 나의 생각들과 관찰들은 이러한 역동들에 초점이 맞춰있다. 하지만 이러한 역동은 과거의 것이며, 그것은 현재 나의 인식을 통해 충분히 알아챌 수 있는 것이며, 그 인식으로 인해 충분히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변화는 나 자신, 내 주변의 사람들 그리고 나의 경험들로 인해 촉진될 수 있다. 그러니 이제는 나를 열어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세상의 다양한 관계와 경험, 세상을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내가 태어나고, 태어나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만들어갈 세상과 마주했던 방법이며, 다른 이들에게도 이러한 방법이 효과가 있길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송영주 심리상담사/미술치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