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제 아주 가~”
“무슨 말씀이세요? 이 밤중에 어딜 가신다는 거예요?”
“어딜 가긴, 서울 가지. 우리 집.”
“갑작스럽게... 그럼 가게는요?”
“오늘까지 하고 문 닫았어~”


이야기 중간 중간 맺혔다 겨우 삼켜지는 할머니의 눈물에 덩달아 나도 눈이 시리다. 시치미를 떼긴 했지만 대충 알고 있었다. 오늘이 바로 건물주가 최후통첩한 날이란 걸. 밀린 월세는 이미 보증금을 훌쩍 넘겨버렸고, 밀린 관리비 때문에 내용증명까지 날아온 상황. 권리금은커녕 시설비도 한 푼 못 건지고 외려 갚아야 할 돈만 쌓여있는 처지. 공치는 날이 점점 늘어가는 상황에서 할머니가 할 수밖에 없는 선택이 야반도주였다.


“밥 좀 챙겨 먹어~ 밥은 꼭 꼭 챙겨 먹어야 되는 거여~ 그리고 아무한테도 인사 못하고 가~ 그래 알어~ 다른 사람들한테는 모른척 해~”


컵라면으로 아침을 때우는 걸 보신 후로 눈만 마주치면 밥 챙겨 먹으라고 노래를 하시던 할머니. 내 또래의 아들이 장사를 했는데 밥을 제대로 챙기지 않아 쓰러진 적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서야 이해했더랬다. 좋은 일도 아니고 빚 때문에 남몰래 떠나시는 할머니는 친하게 지내던 분들에게 귀띔도 하지 않았다. 불안 불안한 영세 자영업자는 자기 집 상황만큼이나 옆집 상황에 관심을 보인다. 아마 모른 척하지만 이미 다 알고 있는 사람들의 어색한 놀람과 가식적인 위로가 불편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영세 자영업자라면 남의 일 같잖을 할머니의 야반도주. 여기저기 픽픽 쓰러지는 가게들. 장사를 시작한 이후 2년 동안 인근 음식점이 모조리 문을 닫거나, 주인이 바뀌어 새로운 간판을 달았다. 사연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문을 닫을 처지까지 간 상황이라면 정말 하루하루가 지옥 같은 날들이었을 테다. 그런 끔찍한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도망가지 못하는 이유는, 더 지독한 불지옥이 기다린다는 공포감 때문이겠지. 부디 할머니의 도피처가 불지옥이 아니라 안락한 휴식처이길 간절히 바란다.


“잘 될거여~~ 사장님네는 진짜 잘 될거여~~ 내가 장사를 오래해 봐서 알잖여. 돈 마~니 벌어이~”
마지막 인사를 한다. 할머니의 꽉 쥔 두 손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간다. 미처 삼키지 못한 한 방울이 할머니의 볼을 타고 구른다. “그럴게요~ 할머니도 건강하시고 울산 오시면 꼭! 꼭! 들러주세요~” 미안한 맘이 많아서 더 아쉽고 더 먹먹하다.
“내본아 우리도 밤에 몰래 떠나자~”
“(울먹) 엄마랑 아빠랑 싸운 거예요? 그래서 어디 가는 거예요?”
“아니야~ 엄마랑 아빠랑 다 같이 가는 거야~~”


아이들만 행복해질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각오로 시작한 일이다. 근데 아이들을 위한 시간을 내는 게 쉽지 않다. 당장의 힘듦이 훗날 여유로운 삶을 위한 거름이라는 믿음으로, 금과옥조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기대로 지내는 시간들. 문득 훗날의 행복을 담보로 지금 불행을 감내하는 게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훗날 ‘좋은 아빠’를 담보로 지금 ‘나쁜 아빠’를 감내하라고 할 수 없잖은가. 야반도주를 계획한다. 무작정 가야겠다. 하루라는 지극히 제한된 시간일지라도 우리를 옥죄는 모든 굴레로부터 도망가기로 한다. 내일은 내일 생각하기로 하고.


김동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