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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빠서 묵혀두었던 지난해 양파들>


식물에게도 뇌가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진화론을 주창한 찰스 다윈은 일찍이 식물의 뿌리가 인간의 뇌에 해당한다는 ‘루트 브레인 가설(Root-Brain Hypothesis)’을 제시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의 한 연구팀은 식물의 잎이 흡수한 빛이 관다발을 통해 뿌리로 전달되고, 뿌리는 이를 분석해 지상의 생장(잎과 줄기의 생장)에 필요한 정보를 내보낸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식물이 기온이나 습도, 소리의 진동, 산소와 이산화탄소 농도와 같은 외부 요인을 인식하여 뿌리를 통해 능동적으로 생존환경을 개척한다는 학설입니다.


이러한 과학적 규명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잘 모르겠으나, 식물의 어떤 부위를 뇌로 특정하거나 동물에 일반적인 일종의 중추신경계를 발견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식물이 워낙 동물과는 다른 형태의 구조를 갖추고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꺾꽂이(삽목) 한 나뭇가지가 흙속에 뿌리를 내린다는 사실(번식)에서 루트 브레인 가설은 힘을 잃고 맙니다. 이 밖에도 식물은 생장과 재생, 번식 면에서 동물과는 너무나 다른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식물의 감각이나 감정, 지각의 유무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 여부에 따라 식물의 위상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식물은 고통을 느끼지 않으므로 그것을 식용으로 삼는 것에 별 다른 윤리적 죄의식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대표적입니다. 우선 고통의 자각증상이 없다는 것부터 볼까요? 고통이라는 것이 생존이 위협당하거나 불가능할 때 생기는 현상이라면, 식물에게도 고통을 느끼는 감각이 있을 뿐 아니라 식물은 그것을 스스로 치유하려고 노력합니다. 나무의 상처부위에 옹이가 지거나 고갱이에 상처를 입게 되면, 여러 개의 고갱이가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이 그 증거일 것입니다. 두 번째, 식용과 윤리는 무관합니다. 먹을거리에 대한 예의는 사람들 사이의 규범일 뿐입니다. 지구상의 어떤 생명체도 인간하는 방식으로 먹을거리를 대하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런 식용논리는 인류의 오래된 분배문제가 굴절되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끝으로 죄의식은 먹어야만 사는 생명체의 한 일원으로서 가지는 무가치한 허위의식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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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계속되는 농민들의 씨 나눔>

     
어쨌든, 씨앗은 자신의 발아시기를 스스로 선택합니다. 배아는 물, 햇빛, 온도 등의 조건이 맞으면 발아하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단단한 씨껍질(종피) 안에서 잠들어있습니다. 수면과 발아 사이의 긴장은 오로지 환경조건에 달려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유난히 따뜻한 날이 계속되면 겨울이더라도 발아를 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개나리나 진달래꽃이 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물, 햇빛, 온도 등이 일시적으로 적정하다고 온갖 풀씨들이 한꺼번에 발아하지는 않습니다. 극히 일부의 씨앗들이 껍질을 깨고 나올 뿐입니다.


이런 현상은 제철인 이른 봄에도 볼 수 있습니다. 기온이 오르고 남중고도가 높아진 햇볕이 더욱 뜨거워지면 풀씨들이 새파랗게 일제히 발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실제로 어마어마한 새싹들이 돋아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농민들에게는 이때가 제초의 제1적기입니다. 아내와 저는 밭고랑에 쪼그리고 앉아 호미로 그것들을 박박 긁어냅니다. 그러고 나서 며칠 지나면 같은 자리에서 이전과 다르지 않은 새싹들이 파랗게 우르르 일어섭니다. 이것은 풀씨들이 최적의 환경조건만으로 발아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호조건에서 발아하는 개체 수와 관련한 경쟁 회피 경향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시 말해 동종, 이종을 가리지 않고 풀씨들은 개체적 특성을 각각 가지고 있어서 환경의 다양한 요인들에 종합적으로 대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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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어르신 주름을 닮은 메주들>


모든 씨앗에는 생장억제 호르몬과 성장촉진 호르몬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어느 호르몬의 분비가 왕성한가에 따라 씨앗은 휴면하거나 발아하게 됩니다. 씨앗에게는 그것을 조절할 능력이 있는 셈이죠. 그 조절능력은 집단적이지 않고 개체마다 자신만의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생존전략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식물의 감각과 지각이 과연 있는지,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발현되는가에 대해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매우 치밀하게 계산된 방식으로 생존전략을 짠다는 것입니다.


농작물 씨앗도 풀씨와 그리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아시다시피 농작물은 오랫동안 여러 방식으로 길들여져 왔습니다. 야생의 식물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걸어온 셈입니다. 같은 식물로서 비슷한 특성을 공유하지만, 생장과 번식에서 패턴을 강화하는 쪽으로 농작물은 변해왔습니다. 특히 농업은 생산성에 가장 큰 가치를 두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저장성이 강한 쪽으로 개량되어 왔습니다. 따라서 생존과 번식을 가장 큰 목표로 삼는 일반 식물과는 매우 다른 성격을 가지게 됩니다.


2~3월은 모종의 계절입니다. 농작물 씨앗이 인큐베이터에 들어가는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합니다. 기상이변이 일상화되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농사꾼 입장에서 사계절은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닙니다. 작물을 기를 수 있는 기간이 짧기 때문입니다. 늦서리를 피하자면 5월이 거의 다 되어서야 파종할 수 있고, 가을 이른 서리 걱정에 수확을 서둘러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박하게 치면 농사지을 수 있는 기간이 연중 6개월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농민들은 늘 바쁩니다. 생육기간을 하루라도 더 늘이려면 심고 거둘 때의 최적시기를 찾아내어야만 합니다.   
그런 노력의 결정판이 모종재배입니다. 모종재배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심게 될 시점에서 역산하여 모종판에 씨 뿌림을 합니다. 그러자면 모종하고 싶은 작물의 적정 모종재배 기간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합니다. 모종판의 매우 작은 홈에서 뿌리를 내리는 작물은 자신의 생체시계를 그 홈의 크기에 맞춥니다. 그 홈을 자신의 모든 세계로 인식하는 것이죠. 그 안에 너무 오래 두면, 일정 기간이 지난 다음부터는 늙기 시작합니다. 고유의 생장과 무관하게 그렇게 되므로 밭에 옮기면 꽃대가 올라오거나 쑥쑥 자라지 않습니다. 또 모종 기간이 너무 짧으면 밭에 심을 만큼(정식) 뿌리가 알차지 않아 옮겨 심으면 매우 고생하거나 (모살이) 죽어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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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주인 없는 새 둥지>


그리고 모종재배는 재배가 아님을 명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빛을 많이 보지 못 해 웃자라는 것도 조심해야 하지만, 비료 성분이 많아 지나치게 성숙해도 곤란합니다. 너무 왕성하게 자란 모종은 정식했을 때, 급격하게 기세가 꺾이게 됩니다. 모종이 적당히 자랐을 때, 홈에서 꺼내보면 엄청나게 많은 실뿌리가 상토를 감싸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애석하게도 이 뿌리들은 정식하고 나서 시간이 지날수록 대부분 퇴화되어버립니다. 정식 초기 작물의 삶을 지탱하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함에도 새 뿌리가 나오는 속도에 비례하여 퇴화되는 것이죠. 이파리 또한 마찬가지로 머잖아 새 잎으로 교체됩니다. 모종은 흙에 옮겨지는 작은 홈의 세상을 잊고 제2의 삶을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모종재배의 구체적 사항은 다음 글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이근우 농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