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칠환노


“옆 과원은 관행농을 하는 과원이지요. 아까도 말 했지만, 3만이 넘는 과수원 95% 이상이 관행농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관행농은, 관행농이 나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농업이 산업화 되면서 관행적으로 행해온 농사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구분하기 위해서... 친환경재배 농가는 관행농의 4%인 1100여 정도의 농가가 됩니다. 유기농은 친환경 재배농가의 30% 정도인 401가구가 있습니다. 제가 농사를 그만두면 제주에서 유기농을 하는 농가는 400가구로 아귀가 딱 맞아 떨어지지요. 우리농장의 존재감이 이렇게 큽니다. 유기농을 하는 농장이 400개를 넘기느냐 400개에 머무느냐가 우리 농장에 달려 있지요. 하하하! 사람이 살아가는 데 근본이 되는 것은 농사입니다. 농업이 바로 서지 않으면 우리가 모여 사는 사회도 위험하게 되지요. 우리는 노후의 소일거리로 과원을 운영하고 있지만, 관행농이든 친환경이든 유기농이든 개인이 농사를 지어서 이윤을 남긴다는 일이 아주 어려운 현실이 이 나라 농업의 현실입니다. 이윤을 목적으로 고용과 수확에 초점을 맞춘 기업농조차도 상황이 좋은 편은 아니지요.”


그는 식당에서 했던 감귤농사 이야기를 하면서 나랏일을 하는 관료들의 몸에 밴 농업 천시풍토를 비판했다. “현재 짓고 있는 농가의 10%가 농사를 그만두게 되면 대란이 일어납니다.”라고 말하면서 나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근본이 되는 농업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농장이 몇 평정도 되는교?”
“1에이커는 조금 더 되고, 0.5헥타르는 안 되는데, 1500평. 평이 이해가 쉽겠군요. 노 사장님은 운동을 좋아하니까! 축구장 반 만하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그러면... 여서 나오는 돈으로 생활을...?”
“아니에요. 그저 푼돈이나 건지는 거지요. 우리는 둘이서 벌어 놓은 것이 있어서 그나마 가능한 일이지만, 비료값 농약값도 안 나와서 그냥 방치하는 농가도 많습니다. 옆의 과원도 관행농을 하기는 하지만, 거의 방치농에 가까워요. 일 년에 몇 번 약치고 비료 칠 때만 오지... 저 농장 구석에는 봄까지 개가 묶여 있었는데, 나는 날마다 오니까 그 개가 나에게 꼬리를 치면서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그렇게 친해져서 쓰다듬어 주려고 가까이 가서 보니까, 목줄을 비닐을 꼬아서 해 놓았는데, 비닐이 살을 파고 들어가 있잖아요. 그래서 전화를 했습니다. 그 뒤론 개도 볼 수 없고, 사람도 보지 못했어요.”


그는 말을 채 마치지 않고서 농원의 한쪽으로 걸어가면서 혼잣말로 “사람들이 나빠! 어떻게 살아 있는 생명을 그런 식으로 묶어 놓는지... 에잇!” 중얼 거리는 소리가 처량하게 들렸다.


“노 사장님 여기로... 이 꽃을 좀 보세요.”
화제를 돌리려는 듯 나를 불러서 손으로 가리키는 곳에는 풀 한포기가 초록을 반짝이며 돋아나 있다.
“난초! 우리 식당 뒷밭에 봄이면 싹 트는 거하고 비슷한데요?”
“수선화에요. 꽃이 보이지요?”
“아, 예! 꽃이 쪼메해가 자세히 안 보면 모르겠는데요?”


내 말을 듣던 그는 무릎을 꿇고 앉더니, 얼굴을 꽃이 핀 폴에다 가져다 대고 냄새를 맡았다. 얼굴을 땅에 붙인 채로 “향기가 참 좋아요!”하면서 몸을 일으켜 세운다. “수선화의 매혹적인 향기를 맡으려면 무릎을 꿇어야만 해요. 추사 김정희가 좋아했던 꽃이지요. 왜, 글 잘 썼던 옛날 사람 말입니다. 육지에선 귀하지만 제주에선 쓸데없는 풀로 알려졌었지요. 뿌리와 잎에 독성이 있는 독초입니다. 약초를 아는 사람들은 피부병에 즙을 내어 바르기도 하는데 위험하지요.”


나도 그가 했던 것처럼 꽃에다 코를 대고 숨을 들이키자 은은한 향기가 감미롭게 코를 자극한다. 꽃은 작아서 볼품이 있는지 없는지 표시가 나지 않아 흘끗 쳐다보고 일어나자,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꽃을 자세히 봤나요? 함께 앉아서 봅시다. 중앙에 노란 꽃이 보이지요? 잘 보세요. 술 잔 같지요? 금 술잔! 노란 꽃을 받치고 있는 하얀 꽃잎도 보이지요? 하얀 꽃 잎 여섯 장이 중앙의 노란 꽃을 받치고 있잖아요. 꼭 금잔을 은 접시가 받치고 있는 것 같지요? 그래서 ‘금잔은대’라고도 합니다. 수선화를 보거든 무릎을 꿇으세요. 그러면  은접시 위의 금 술잔에 매혹적인 향이 베어나는 술을 마실 수 있습니다.”


그의 걸음은 가볍고 유연했고, 몸에서 풍기는 기운은 맑고 따뜻했다. 또렷한 음성은 부드럽고 분명하게 가슴에 담겼다. 그의 말에 심취해 있는데, 그는 어느새 열 걸음이나 떨어진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과원 경계에 둘러선 키 큰 나무들은 방풍수입니다. 경작지 방풍림은 정부의 감귤재배 권장에 따른 재배면적 확산에 대처하기 위해 빠른 시간에 방풍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삼나무가 조림되었습니다. 사려니숲 진입로인 비자림로 일대가 다 삼나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지요. 바람을 막기 위해 심었는데, 현재는 햇볕을 가리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어요. 해마다 사다리차를 불러서 잘라줘야 하는 형편이지요. 제주에서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모두가 같은 문제를 겪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산림이 파괴된 제주의 산과 들에 나무 한그루 구경하기가 어려운 시절도 있었습니다. 제주의 산림 파괴는 일제의 수탈이 끝나고 광복 이후에도 원주민과 현지인에 의해서도 과감하게 이루어졌지요. 제주도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원주민과 현지인을 구분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 부분은 기회가 되면 말씀 드리지요. 각설하고요, 육지에서도 사오십 년대엔 산에 나무가 남아 날 수가 없었지요. 법과 제도도 미미하고 혼란스러운 시절이기도 했지만, 본질적인 것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였으니까요. 그나마 육지에는 석탄과 석유가 있었지만, 제주에는 석탄도 석유도 70년도가 지나서야 공급됐어요.


제주 사람들의 생활에 필요한 연료는 마른 풀과 장작이 전부였던 시절이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살고 있는 집과 마을 주변의 숲에서 나무를 베어다 밥을 해먹고 난방을 했지만, 부자들은 질 좋은 장작과 숯을 사들여서 썼지요. 부자들이 쓴 질 좋은 장작과 숯은 한라산에서 합법적으로 벌채한 나무로 생산된 것이었습니다.”


“한라산에서 나무를 캐는 것이 우째가 합법이 될 수 있는교? 가난한 사람들이 집과 마을 주변에서 나무를 캐고 갈비를 긁어다가 불을 때는 것은 말이 되지만! 제가 어릴 때 울산 산도 벌거숭이였으니까요.”


“말이 길어지겠지만, 찬찬히 이야기를 합시다. 우선 일제강점기 때 엄청난 수탈을 당했지요. 일제 때 사람뿐 아니라 삼천리강산의 수목도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호되게 당했었지요. 그리고 광복 이후에도 이 땅의 파괴는 지속되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한대로 삶의 터전에 그나마 남아 있는 땔감이 절실했고, 부자들은 부자대로 고급스러운 생활의 유지를 위해 많은 연료가 있어야 했지요. 한마디로 한라산에 있는 나무들은 금광이나 다름이 없는 사업이었던 것입니다. 한라산에는 큰 돈벌이가 되는 나무가 많이 남아 있었고, 돈이 되는 일에는 예나 지금이나 부정한 거래가 우후죽순처럼 자라게 되어 있지요. 수완이 뛰어난 사업가들은 산림을 관리하는 관리를 매수해 벌채 허가를 받아서 장작과 숯을 만들어 부자들에게 팔았습니다. 그런데 허가를 받은 만큼만 벌목을 했으면 그나마 다행일 수도 있었는데, 거래를 위해 부정한 돈을 투자한 장사꾼들이 약속된 이익에 만족할 수 있었겠습니까? 허가 받은 ”결국 돈이 문제군요!“


“그게 다가 아닙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할까요? 1948년 4.3 때는 빨갱이 토벌이라는 명분으로 양민학살을 자행하면서 군 작전이란 이유로 대규모로 산림을 훼손해 민둥산을 만들어 버렸지요.”


“아이고, 민,관,군이 다 함께 절딴을 내 버렸었군요. 배워서 있는 놈들이 쪼매 생각을 했으면 좋았을 낀데, 진짜 나쁜 놈들은 공무원들과 군인들임더... 어휴!”


노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