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곤지암01


한여름도 아니고 봄날의 공포라니. <곤지암>은 예상 밖의 흥행을 기록하며 계절을 앞선 항해를 시작했다. 감독 정범식은 공포 매니아들의 칭송을 받았던 <기담>(2007)으로 데뷔한 후 한 분야를 꾸준히 개척해왔다. 젊은 감각의 소재와 형식으로 돌아왔다.


페이크 다큐 또는 모큐멘터리 기법 자체는 새롭지 않다. <블레어 위치>(1999) 이후 이미 실화처럼 보일 목적으로 가짜 다큐멘터리에 공포를 얹거나 스릴러를 구현한 작품이 한 가득이다. 그러나 우리 영화에서는 그렇게 재미를 본 경우가 없었다. 서사와 개연성을 갖춘 이야기를 중시하는 관객들의 성향 때문이다.


사실 공포 자체가 여러 장르 중 가장 흥행 성적이 떨어진다. 최근 <곡성>과 <부산행>이 높은 성적을 올린 탓에 그 경계가 조금씩 무너졌지만 제작편수는 여전히 부족하다. 그나마 꾸준히 한 우물을 파온 정범식 감독은 도시괴담처럼 전해지는 공간, ‘곤지암 정신병원’을 소재로 꼼꼼하게 준비해 새로운 실험을 했다.


12곤지암02


영화홍보에도 나오지만 실제로 CNN방송에서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기괴한 7곳 중 하나다. 최악의 핵발전소 사고 현장 체르노빌 유원지와 일본의 자살명소로 불리는 후지산의 아오키가하라 숲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촬영은 유튜브나 아프리카TV의 개인방송 생중계를 따왔다. 전문 촬영감독 대신 배우들의 몸에 고프로를 채웠다. 그리고 오스모, VR카메라, 드론까지 최신 촬영장비를 효과적으로 이용했다. 장면의 깊이는 부족하지만 생생함은 극대화 됐다. 날것의 화면과 날카로운 비명이 더해져 관객에게 전해지는 두려움도 실시간이 된다.


아쉬운 것은 초반부의 매우 느린 전개다. 배우들은 대부분 신인배우로 채워 일반인처럼 보이게 했다. 그 탓에 연기는 부자연스럽고 시선을 끌 이야기는 부족하다. 그렇게 지루한 도입부에 방심하다 후반부에 이르러야 공포에 쩔게 된다. 훌륭한 후반을 위해 상당한 전반부를 인내할 수 있다면 말이다.


12곤지암03


사실 집중할 이야기는 애초부터 없는 게 또 하나의 특성이다. 등장인물 7명은 모두 곤지암 병원의 괴담을 체험하기 위해 모인 이들이지만 인물의 배경이나 관계는 크게 중요치 않다. 갈등도 조금 흐르지만 후반부의 순차적인 공포의 계단 속에 묻힌다. 결국 <곤지암>은 공감보다 체험에 무게가 더 실려 있다. 요즘 방송 트렌드로 풀어내는 새로운 공포체험 말이다.


공포 속에 눈에 띄는 것은 풍자의 장치다. 눈치가 없는 관객이라도 박근혜와 박정희의 사진들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그 외에도 박근혜의 탄핵 날짜나 박정희의 쿠테타 날짜와 김재규의 저격 날짜도 중간에 활용된다. 그리고 최순실의 아버지 최태민과 세월호까지. 실제 세상의 섬뜩한 역사와 영화 속 가상의 공포가 어떻게 버무렸는지 한번 찾아보길 추천한다.


배문석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