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몇 개월은 우리나라의 역사가 대전환을 이룰 역사의 변곡점이다. 2차 대전의 직접적 당사자가 아님에도 전쟁을 일으킨 일본 땅이 분단되지 않고 오히려 2차 대전의 결과로 한반도의 분단이 결정되며, 이후 남과 북이 전쟁을 치르고,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에 개입한 미국과 북한, 중국 간에 휴전협정이 이루어진 이래 65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러한 정전체제는 남북 양국 사이뿐만 아니라 남북의 국민에게도 질곡을 의미했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이 북한을 반국가단체가 아니라 독립된 외국으로의 국가 승인을 전제하는 취지의 대북정책을 취하면서, 1972년 7월 4일, 한국전쟁 이래 남북 최초의 정부 간 회담인 7.4 남북 공동 성명에서 남북한 간의 불가침을 약속하였다. 7.4 남북 공동 성명에서 개최하기로 한 후속회담인 남북조절위원회 제2차 회담에서, 북한은 평화협정 체결을 제안하였으나 정치적으로 불가침을 선언하는 평화협정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1992년 남북은 재통일을 위해 필요한 화해, 불가침, 교류협력에 관한 남북 기본합의서를 정식조약으로 채택했다. 그러나, 이것도 평화조약은 아니었다. 기본조약, 기본합의서라는 표현은 정전협정(Ceasefire), 휴전협정 (Armistice), 평화협정(Peace Treaty) 다음 단계의 정식 국교수립조약인데, 남북 간에는 기본조약을 체결해 놓고도, 그 전 단계인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못했다.


2000년 6.15 공동선언은 남측의 연합 단계와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안이 공통점이 있다며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하기로 합의했다. 남한 정부의 3단계 통일방안(남북연합-연방-통일)의 1단계인 ‘남북연합’은 남과 북이 독립국가로서 협력기구를 제도화하는 것이 골자였다. 남북연합 정상회의, 남북연합회의(국회), 남북연합 각료회의 등을 통해 교류를 넓혀 가되, 국방 및 외교권은 남북이 각각 소유하는 ‘1민족 2국가 2체제 2정부’를 뜻하는 것이다. 반면에 북한은 ‘느슨한 연방제’를 주창하며 ‘완전한 고려연방제’에 앞서서 잠정적으로 지역 정부에 국방과 외교권 등까지 부여하는 북한의 연방제는 ‘1민족 2체제 2정부’는 같으나 ‘1국가’를 표방하고 있다.


2007년 10.4 선언은 6.15 선언을 지지하고 종전협정을 추진하기로 하였으나 종전협정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은 냉전 시대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한반도의 비정상적 상황을 종결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폐기하는 대신 북미 수교, 북일 수교, 휴전 당사자 간, 혹은 남, 북, 중, 미 4자 간의 종전협정, 남북평화협정, 미, 중, 러, 일 등의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보장, 북한의 국제통화기금 등과 같은 국제기구의 가입, 북한에 대한 제재의 해제, 남북, 북미의 경제적 교류 협력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통해 동북아의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하며, 남북은 통일로 한발 성큼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한 번도 걷지 않은 길을 걸어가야 하는 남북미는 협상의 결렬에 따른 위험에도 준비해야겠지만, 더욱 큰 평화에 대한 구상을 하고 좋은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편 국내의 모든 정치세력도 이념을 넘어 이와 같은 중요한 결단의 시기가 결코 허투루 되지 않기 위해 힘을 보태야 할 것이다.    


통일은 천박한 대박이 아니라 한국사의 새로운 분수령이 되고 전쟁의 질곡에서 옥죄이는 한반도를 동북아의 평화를 선도하는 국가로 거듭나게 할 것이다.


김연민 울산대 산업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