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두 개의 드라마가 있다. 하나는 나의 아저씨. 뭇 아저씨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아이유가 이선균과 호흡을 맞추며, 20대 초반의 소녀와 40대 중반 아저씨가 서로에게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다루고 있다. 하나는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역시, 연상인 손예진과 연하인 정해인의 러브스토리를 다루고 있다. 당연히 전자는 아저씨들이 이선균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후자는 또래의 여성들이 손예진에게 감정이입을 한다.


그렇다고 이 드라마들이 그저 두 사람간의 사랑이야기만 주구장창 다루는 것은 아니다. 나의 아저씨에서 이선균이 분한 동훈은 그나마 가족 가운데 제일 잘 나가는 회사원이지만 회사에서는 권력관계와 상관없이 자신의 일만 묵묵히 해나가는 평범한 셀러리맨에 불과하다. 그의 형제들은 회사에서 쫓겨난 신용불량자, 실패한 영화감독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영세한 청소용역회사를 운영하며, 나이 어린 건물주에게 모욕을 당하기도 한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회사원으로 나오는 손예진 역시 직장생활에서 상사의 갑질에 시달리고, 다시 자신 역시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점 사이에서 본사의 갑질을 대변하는 샐러리맨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드라마가 보여주는 현실은 여기까지다. 드라마가 끝나는 순간 우리는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온다.


자, 내가 돌아온 세상은 어떤가 둘러보자. 한국에서 철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정부를 위협하던 한국GM. 결국 대규모 인원을 구조조정하겠다고 나섰고, 이 과정에서 벌써 세 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울산의 현대중공업에선 2400명의 노동자를 구조조정하겠다고 하고 있다. 증평에서는 빚 독촉에 시달리던 40대 엄마가 네 살 딸과 함께 세상을 떠난 지 두 달여만에 발견됐다. 그 둘의 아빠 역시 지난해 9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경찰은 빚을 고스란히 떠안은 모녀가 자살을 선택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노동자의 처지, 가난한 자의 처지는 그대로다. 그동안 경영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노동자의 권리를 막을 때는 언제고, 산업구조재편이라는 이름으로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해고를 하면서 이제와 노조가 그 동안 아무런 대책도 없었다고 비아냥거린다. 경영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돌리려면,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또한, 무려 2400명을 해고하겠다고 나설 때는 그 2400명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해고로 고통을 당해야 하는 그 사람과 그 사람의 가족을 모두 포함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이런 대규모 구조조정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야 하고, 그런 대안이 마련되지 않는 해고는 살인에 다름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 현실이 이렇게 각박하니 우리는 다시 드라마 속으로 게임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유럽에선 우리나라처럼 그렇게 드라마가 인기가 없다고 하고, 매주 쏟아져 나오는 드라마를 보며 놀란다고 한다.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드라마 제작환경의 열악함이야 얘기해서 무엇 하겠나? 하지만 우리는 다시 드라마를 켜고, 드라마 속의 주인공으로 쉽게 감정이입을 한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가 되어 연하의 귀여운 남성을 만나고 싶고, 어느 비루한 이십대 여성을 보살피는 누군가의 아저씨가 되고 싶기도 하다. 그래도 아주 가끔은 아주 잠시 잠깐이라도 해고 당해야하는 노동자와 빚에 시달리며 아이를 키워야 하는 엄마에게도 감정이입을 한 번 해보자. 어쩌면 그들이 주인공인 드라마의 결말이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인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