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발자연

<단조롭던 병영설길에 제당을 둘러싼 나무들이 있어 신선한 포인트가 되고 있다. ⓒ이동고 기자>


울산대공원이 아무리 넓다고 자랑해도 우리에겐 정작 가까운 일상공간이 더 중요하다. 아침저녁으로 가벼운 산책을 할 수 있고, 걸어 출퇴근길로 이용할 수 있는 편안한 길을 누구나 원한다. 병영성은 그런 측면에서 걸어 다니기 좋은 길이다. 길은 구릉의 정상에서 넓은 계곡을 두른 포물선 모양으로 전체적인 형태는 타원형이다. 현재 성곽은 없어졌지만 말굽형 구릉 형태를 따라 길이 연결되어 있어 걷기에 아주 편하다. 보는 방향마다 멀리까지 보이는 풍경은 눈마저 아주 시원하다. 봄기운 넘치는 복사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다.


병영성이 만들어진지가 600년. 오래전부터 자기 마을과 가족을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지키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울산 주민을 병영으로 이주시킨 이유는 바다를 건너와 노략질을 일삼는 왜적의 침입이 잦았기 때문이었고, 병영성을 세운 이유도 왜적으로부터 주민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왕이 있는 서울에서 보면 울산과 창원은 남쪽을 지키는 중요한 두 요새였다. 창원에 경상우도 병마도절제사 군영이 있었고 울산 병영성은 바로 경상좌도 병마도절제사가 머무르던 곳이었다. 당시 병마도절제사는 종2품으로 지방의 관리 중 가장 높은 벼슬이었고 병영성안은 거의 군부대 근처 마을과 비슷한 모양이었을 것이다. 곳곳에 흩어져 있던 울산주민들을 방어의 효율성을 위해 성안으로 이주하라고 명하면 울산부사는 종3품인지라 무조건 따라야 했다고 한다. 군인과 함께 사는 것을 민간인들은 반기지 않았다고 한다. 부역일에 동원되었을 것이고, 평소에는 포졸이라 불렸던 군인들과 같이 거주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길을 걷다 보면 훤하게 뚫린 시야 속으로 나무들이 몇 그루 심겨진 곳을 만난다. 연록 수피를 가진 벽오동나무가 대부분인데 중간에 팽나무, 사철나무, 광나무도 끼어 있다. 제당 양쪽에 자라다가 죽은 나무는 아카시나무인데 고사목으로 서 있다. 당산인지 제당인지 알 수 없다. 다듬지도 않은 주춧돌에, 집을 지탱하는 나무는 오래되었는지 곳곳에 바스러질듯하고 특이하게도 지붕을 콘크리트로 덮었다. 하지만 그 지붕은 용마루 부분이 쪼개져 있어 비가 오면 비가 줄줄 새어들 것 같다. 아직도 왼새끼에 지전을 꼽아 달아둔 것으로 보아 최근까지도 당제를 지내는 것이 아닌가 짐작이 들게 한다. 벽체도 시멘트로 되었고 오래전부터 내려오며 여러 시대 건축재료를 덧씌워 현재까지 내려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규모가 너무 작지만 이런 공간이 지금까지 지탱되어 온 건 대단하고 신기한 일이다. 유신시대 미신을 없앤다고 전통신앙과 흔적을 깡그리 다 없애기도 했고 우리 의식도 다 세뇌가 되었는지 당집에 얽힌 세계관이나 정신적 원류를 되돌아보기도 전에 다 사라지고 말았다.


제당 근처에 사는 어르신께 물어보니 서동마을에 있었던 제당을 오래전에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했다. 70년 이상은 넘은 오래전 일이었다. 이 동네에선 제를 모시지는 않고 있고 서동청년들이 와서 대보름에 제를 지낸다고 한다.


마을사람들은 이 장소를 꺼림칙하게 여겨 없애려는 민원을 넣기도 했지만 제를 모시는 분들 입장이 강해서 아직 철거를 못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누가 이 제당을 철거한다고 나서겠냐고 되물었다. 전에 근처 제당을 하나 허무는데도 이틀 이상 혼을 달래는 행사를 했다고 한다. 기록에도 안 나오는 이야기들이 줄줄 나왔다.


병영성은 우리 고장을 지키는 역할을 했던 군사시설 유산이다. 600년의 역사 고갱이는 이런 소소한 제당이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병영성은 우리 선조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 무엇’을 지키려고 했던 유적지이었고 ‘그 무엇’의 중요한 부분이 바로 ‘소도’로부터 내려오는 쉽게 범접하기 어려운 신성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곳에서 큰 일 없길 빌면서 평화와 안녕을 염원했을 것이다. 최근 병영성 600년 역사 행사를 두고 병영성 주변은 복원공사가 곳곳에 진행 중이다. 다양한 스토리텔링에 이런 제당과 관련한 이야기는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제당은 과거에는 문이 열려 있었고 위패까지 있었지만 없어졌고 고양이가 하도 들락거려 이제 열쇠로 잠갔다고 한다. 평소에는 아무도 관리하지 않아 점차 더 흉물스러워지고 있다.


일본 신사는 지금 시각으로 보면 허무맹랑한 세계관이지만 일본인들은 버젓이 복원하고 관광자원화하고 있다. 전통이 중요하고 문화유적을 복원한다고 하면서도 과거 주민들의 일상유적은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냥 그렇게 흉물스럽게만 보고 방치하다 결국 허물어 버릴 것인가?


이동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