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가고 오는 것에 대한 애착이 더 생기는 것 같다. 살아오면서 자연스레 몸에 배어있던 오래된 문화나 관습이 변할 때 더욱 안타까워진다. 어릴 때부터 오랜 세월 ‘그래야 된다’는 시대적 정서 속에 고착된 유교적 가치관이나 고정관념을 바꾸어야 하는데 어디 쉬운 일인가. 시대의 흐름에 쫓아가기는 하되 마지못해 따라가는 형국이 될 때도 있다.


동네 야산 정상에 있는 쉼터 나무그늘 아래 두 노인이 의자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 분은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 공감하고 동조하길 바라는 것 같이 목소리를 높이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른 분은 그 분의 말을 진중히 듣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세월을 탓하며 친구 분을 위로하고 있었다. 그들이 나누는 화두는 제사에 대한 내용이었다. 근래 내 관심사이기도 했기에 염치를 무릅쓰고 귀를 쫑긋 세웠다.


한 노인의 친척 중에 집안의 경조사를 빠짐없이 잘 챙겼던 의리 있고 정 많던 사촌 동생이 죽었단다. 그런데 그의 외아들인 조카가 장례식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시대가 변했다며 그 사촌 동생의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는 것이다. 엎친 데 덮친다고 사촌 동생을 잃은 슬픔에 또 다른 슬픔을 얹는 격이었다. 분노가 섞여있던 노인의 목소리에서 가는 세월에 대한 허탈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 노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말을 이어갔다. 이것은 제사를 지내고 안 지내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 동생이 생전에 친척들과 살갑게 나누던 인정을 그 아들이 단칼에 자르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사촌 동생의 기일에 맞춰 친척이나 가족들이 만나서 따뜻한 밥 한 끼를 함께 나누어 먹으면 그나마 작은 정이라도 유지될 터인데, 이제는 친척들이 만날 기회마저 잃어버리고 말았으니 이 노릇을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워하였다.


이 문제는 그들만의 화두가 아니다. 요즘 많은 집안에서 그와 같은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제례문화는 인간이 집단생활을 하면서 서서히 나타났다. 원시 고대 인류에게 우주의 변화는 경이와 신비로움을 주는 동시에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보이지 않는 신에게 구원을 빌며 안식과 안락을 기원하는 자리가 되었다. 점차적으로 사후 세계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며 안녕을 빌었을 터이고 귀신도 섬기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함께’한다는 것에 대해 끈끈한 마음의 울타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을 어찌하겠는가. 우리 전통 문화는 이미 과도기를 지나고 있다. 급격한 사회변화에 따라 색이 바래지는 제례문화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새로운 형태의 제례문화가 사회 저변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시간의 흐름 속에 한 사회의 규범이나 문화도 함께 변화한다. 자연스런 삶의 이치다. 그러나 변해가는 전통을 아쉬워하는 두 노인의 대화에 수긍하며 몰입하고 있는 나를 본다. 나도 이제 많이 늙어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조숙향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