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5장에서 하느님은 어질지 않아 만물을 풀강아지로 여기고, 성인도 어질지 않아 사람을 풀강아지로 여긴다고 했다. 고대에 풀로 만든 강아지는 제사에 의례적 용도로 사용되었다. 아마도 조상의 혼령을 지키는 호위무사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의례용으로 쓰고 나면 버려졌다. 귀하게 대접받다가 버려졌다에서 버려졌다를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 하느님한테 만물이, 성인한테 백성이 귀한 존재이면서, 간섭하지 않고 내버려두어 철저한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말이다.


조상을 위한 제사에 풀호랑이나 풀독수리를 쓰지 않고 풀강아지를 쓴 것은 강아지가 그때부터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는 말이다. 친근하게 서로 정을 나누었다는 증거다. 고려시대 이규보 선생의 시에 광에 넣어둔 고기를 몰래 꺼내 먹은 개를 나무라는 내용이 있다. 700년도 더 전에 그때 벌써 귀족들은 개를 밥을 먹여 키우는데 고기를 넘봐 혼을 낸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참혹하게 때리지 않는 것은 집을 지키는 막중한 일을 해서 그렇다고 끝을 맺는다.


하느님은 만물을 풀강아지로 여기고, 성인도 백성을 풀강아지로 여기듯, 보통 사람인 우리는 진짜 강아지를 풀강아지로 여겨 구속하지 않고 자유를 주어야 하리라. 안방에서 해방시켜 마당으로, 마당에서 골목으로, 골목에서 들판으로 삶의 터전을 돌려주자. 그렇게 하기 위해서 인간은 국토 균형 발전과 새로운 도시 건설과 주거 공간에 대한 인식을 인간만을 위한 데서 “사람과 자연은 하나다. 자연과 더불어 살자”로 획기적인 전환을 해야 할 것이다.


諭犬(유견)이라


                        李奎報(이규보)라


我家雖素貧(아가수소빈)하나

食祿許多斛(식녹허다곡)

恐爾舐穢物(공이지예물)할까

亦許日飡穀(역허일손곡)

胡奈不知足(호나부지족)하고

盜我所藏肉(도아소장육)

戀主雖可尊(연주수가존)하나

巧偸良不淑(교투양불숙)

我有手中杖(아유수중장)하니

鞭之足令服(편지족령복)

守門任莫重(수문임막중)하여

未忍加慘酷(미인가참혹)



개를 타이르다


우리 집이 본디 가난했지만
나라에서 받는 녹으로 곡식이 많으니
네가 더러운 오물을 핥을까 두려워하여
또한 날마다 밥을 먹는 것을 허락했거늘
어찌하여 스스로 만족할 줄 모르고
내가 넣어 두었던 고기를 훔쳤느냐
주인을 따르는 네 마음은 높이 보지만
교묘하게 도둑질한 것은 참으로 나쁘다.
나는 손에 지팡이를 쥐고 있어
너를 채찍질하여 족히 명령에 복종하게 할 수 있지만
문을 지키는 네 임무가 막중하기에
차마 참혹하게 매질을 할 수는 없구나.


백태명 울산학음모임 성독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