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발자연

태화강공원은 느티나무가 울창하게 자라 봄꽃놀이를 나온 사람들이 나무그늘에 쉬기 좋은 곳이다. ⓒ이동고 기자 >



우리가 흔히 쓰는 말에 ‘꽃놀이패’라는 말이 있다. 바둑에서, 패를 만드는 쪽은 패를 이기거나 지거나 큰 상관이 없으나 상대편에서는 패의 성패에 따라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다고 풀고 있다. ‘패’는 바둑에서 나온 말로 서로 아가리를 벌리고 권리를 주장하는 특수한 지점을 말하는 것이고 무한반복을 방지하기 위해서 이 지점에 대해 계속해서 두지 못하게 하는 룰을 만들었다.


꽃놀이패를 들고 있다면 그 사람은 어떤 국면이든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끌고 갈 수 있다. 이런 뜻으로 ‘꽃놀이’라 불렀던 것이 신기하다.


꽃놀이는 추웠던 정월, 이월 다 가고 날씨가 따뜻해지고 산과 들에 온갖 꽃들이 피어나는 춘삼월에 하는 것이다. 이때가 되면 누구나 좋은 날을 택하여 제각기 좋아하는 음식을 장만해 싸들고 경치 좋은 산이나 개울로 소풍을 겸한 꽃놀이를 간다.


세상에 꽃놀이를 싫어하는 이들은 없다. 예전에도 서당 유생들은 두견화와 화전을 준비해 산꼭대기나 냇가에 모여 춘계 개학식과 같은 것을 했다고 한다.


어릴 적에는 친인척 계중모임도 이때쯤 이뤄졌는데, 유원지 근처 한적하고 그늘 좋은 장소를 먼저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였다. 지금은 북녘동포들이 유원지에서 춤추는 모습을 낯설게 보지만 오래전에는 그런 모습이 자연스런 유원지 풍경이었다. 최근 방송에 나온 목도 영상에서 상춘객들이 유원지에서 춤을 추는 광경이 나온다. 그 당시에야 춤에 무슨 격식이 있었겠냐마는 겨울 난다고 움츠리고 힘든 일에 찌든, 몸과 마음을 맘껏 푸는 날이었다. 남의 손에 마지못해 이끌리는 척, 혹은 술 한 잔 힘을 빌려 같이 어울려 추는 춤은 훤한 대낮에도 어색하지 않았다. 지금이야 유원지에서 누가 음악을 틀어놓고 춤추면 고성방가죄로 신고가 들어갈 가능성이 높지만.


하지만 요즘 공원 행사장은 항상 요란하다. 바로 지자체에서 위임받은 고성방가 때문이다. 시민들은 무대 위에서 활동적으로 움직이는 공연자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거나 박수치는 것이  다다. 최근 작천정 벚꽃축제를 갔더니 날짜를 잘못 잡았는지 벚꽃은 벌써 다 지고 없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인 장소가 각설이 공연장이었다. 각설이 공연만 빠져도 수준 높은 행사겠지만 각설이는 어수선한 축제나 볼 것 없는 행사장을 메우는 ‘약방에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 행사장은 먹거리, 할인판매장 등으로 북새통이었지만 그 마당에서 한 바탕 웃고 가면 그나마 뭐라도 구경했다는 위안을 받는 것이다.


정원박람회가 열리는 태화강대공원은 어떨까? 일요일 나가보니, 언제 비가 을씨년스럽게 왔느냐는 듯 하늘은 맑고 햇살도 포근했다. 개막식에 힘들어 하던 식물들도 조금 힘을 받았다. 멀리서도 들리는 공연단의 고성방가가 엄청난 데시벨(db)로 태화강공원을 다 덮고 있었다. 사람들은 연기가 나고 소리가 나면 끌리게 되어 있는 본능 유전자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연기가 나는 곳은 뭔가 먹을 것이 만들어지는 곳이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소란스러운 곳은 뭔지 궁금해 도저히 안 가보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두 줄로 그늘 좋은 느티나무 아래 돗자리를 깔거나 잔디밭에 텐트를 치고 여유로운 봄을 맞고 있었다. 마침 정원박람회라는 볼거리도 있고 하니 꽃놀이로는 이보다 다채로운 곳도 없다.


곳곳에 의자를 배치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정원작품 중간에도 앉아 쉴 의자가 있어서 포토존을 만들고 있었다. 특히 화사한 봄날 옷을 입은 젊은 여성은 친구끼리 어울려 여러 가지 연출로 사진 찍기에 바빴다.


짧은 플라워쇼를 방불케 하는 이벤트로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인지라 예비후보들도 명함을 돌리고 악수를 청했다. 같은 색 유니폼을 입은 단체 사람들은 태화강을 국가정원으로 만들자 홍보활동도 했다. 저기 멀리서는 성당 사람들이 나와 악기를 연주하며 찬양가를 불렀다. 지방언론들은 벌써 ‘울산정원박람회 인기몰이’ 등등을, 울산시는 ‘생태하천 변신한 태화강 국가정원 지정해야’라며 목에 힘을 준다.


꽃놀이패는 정원박람회를 열어 9일간 짧은 기간에 10억이 넘는 예산을 쓰는 지자체장이 쥐고 있는가? 정원박람회는 우리가 익히 아는 순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부산, 경기 등 없는 곳이 없다. 봄날 꽃놀이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 편안한 꽃놀이를 할 것인가? 생태가 되살아났다는 목도나 어서 개방해서 한적한 곳에서 신록이 살아나는 봄을 여유롭게 맞고 싶다. 


이동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