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지랖이 넓다. 마누라한테 가장 많이 듣는 소리 중 하나다. 영화나 다큐를 볼때마다 훌쩍거리는 것도, 옆 가게 매출부진 문제를 지나치게 걱정하는 것도, 사회불평등이니 사회정의니 하며 떠들어 대는 것도 일종의 오지랖이라는 것이다. 오지랖은 웃옷의 앞자락을 얘기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오지랖이 넓다는 말은 남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을 빗대어 쓰는 관형구다. 그렇다. 나는 ‘남의 일’에 ‘관심’이 너무 많다. 제 코가 석자인데 그 놈의 남의 일에 말이다.


나는 왜 남의 일에 관심이 많을까? 대충 유추해 보건데 나는 생리적으로 거울신경세포가 지나치게 발달해 있는 것 같다. 상대의 경험을 보는 것 만으로도 직접 경험하는 것과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이 거울신경세포다. 즉, 관찰자가 상대방을 관찰하면서 마치 자신이 스스로 행동하는 것처럼 느낀다는 것인데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공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남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느끼는 감정. 어쩌면 이건 착해서가 아니라 생리적인 현상일 뿐이다.


어쨋든 나는 공감력(특히 슬픔에 관해서)이 높다. 그게 나의 오지랖의 출발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오지랖이 그리 부정적인 면만 있는것 같지는 않다. 그래. 어차피 타고난 천성(혹은 생리적 조건)이라면 단점을 장점화 해서 살자. 오지랖은 관심을 넘어 행동하고자 하는 욕구다. 어려움을 보면 거울 뉴런이 파바박 작동해서 자기 일처럼 공감하게 되고 곧 뭔가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고민하고 행동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대부분 생각에서 그치지만)


그래서 조심해야 한다. 같잖은 정치적 올바름으로 먹던 우물에 침뱉으면, 가령 아군인지 적군인지 구분 못하고 지적질을 해대면 그나마 남은 친구들도 모두 등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참견 충동을 절제(?) 못해 내려간 남의 바지 지퍼를 직접 올려주다가는 싸대기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우리 이니님이 주시는 시원한 사이다가 왜 자꾸 맥히나 했더니 사실은 ‘사이다 맛 고구마’였던 것이다.


김동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