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을 따라 도로를 건너서 주차장을 지나 천막 안으로 들어서자 하얀 샷시로 된 미닫이문이 나타났다. 출입문 왼쪽엔 커다란 현수막이 붙어 있는데 나이가 지긋한 부부가 하얀 위생복에 하얀 위생모를 쓰고 손가락을 브이자로 만들어 보이며 찍은 사진이 보였다. 사진 위에는 제주 글로 ‘혼저 옵서게’라고 큼직하게 써 있었다. 식당문을 열고 들어서자 테이블 열 개 정도 되는 홀에 고기 굽는 연기와 냄새가 가득하고 시끌벅쩍했다. 테이블과 의자는 시제품이 아닌 직접 만든 것으로 넓고 길면서 투박했다. 의자는 공원벤치처럼 테이블에 맞추어 하나로 길게 만들었는데 한쪽에 네 명이 앉아도 비좁을 것 같지 않았다. 가족들은 출입문 오른쪽 구석에 있는 두 개의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아들과 아들의 여자 친구가 벽이 있는 테이블 안에 앉아 있었고, 아내와 제수씨는 유리창이 있는 바깥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내 자리는 아내와 제수씨가 앉아 있는 맞은편이다. 우리가 식당에 모일 때마다 주류와 비주류로 나누어 앉다 보니 언제나 좌석의 배치가 이렇게 되는 것이었다. 동생의 자리는 아들을 마주보는 식당 안쪽이다. 내가 자리로 들어가려 하자 아들이 일어서서 의자를 당겨 주었고, ㅇ슬이도 “아버님 시장하시겠어요.”라고 하면서 인사를 한다.


“아주버님이 안계시니까 술 맛이 없심더! 어디 가셨다가 인자 오시는교? 고기가 억씨 맛이어요.”
“미안심더, 내 때문에...” 제수씨에게는 언제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라예, 우리는 아까 전에부터 마이 묵었어요, 여는 고사리하고 콩나물을 고기하고 같이 볶아 무라고 주는데, 고사리가 억씨 맛있어요.” 제수씨는 언제나 나를 위한 멘트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처럼 항상 듣기 좋은 말을 한다.


다들 어색하게 하지 않으려 표정을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분위기가 냉랭하다. 동생은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형님이 바쁜 시간을 쪼개어 이 자리에 참석을 해 주셨습니다. 원래는 숙소에서 만나 잠만 자기로 약속되어 있었는데... 형수님의 특별한 사랑과 관심으로 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중에 제일 어른이시자 오늘의 귀한 손님께서 건배사를 하겠습니다.”라면서 건배사를 하라고 했다. 나는 하던 말도 자리를 만들어 주면 잘 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모임에서 인사를 시키거나 여러 사람 앞에서 자기 소개를 하라는 요청이 들어오면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가 전부이고, 모임의 사람들이 자세히 소개를 하라고 짓궂게 요청을 하면 ‘칼질하는 사람입니다’라고 하면서 앉아 버리는 사람이다. 그러니 나에게 건배사를 시키면 나에게 고역인 것이지만, 부득이 해야만 한다면 ‘위하여’가 전부인 사람이다. 그런 내가 술잔을 들고,


“제수씨, 내가 없으니 술빙가 쪼깨밖에 없네요. 짠 합시다. ㅇ슬이도, 당신도, 술 없는 동생하고 아들은 물잔이라도 들이대라.”라고 말하면서 건배사를 하기 위해 일어섰다. “맞다, 동생 말이. 오전에 숙소에서 만나자 약속하고 나는 낯선 사람 따라 갔다. 정말 특별한 시간이었다. 칼질을 너무 오래해가 어깨도 허리도 안 좋고, 저사람도 설겆이를 너무 많이 오래해가 손가락과 팔이 저려서 까닥하면 한의원에 다니고 있다. 그래서 하루 빨리 시골로 들어 갔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오늘 오전에 만난 분이 그런 나의 생각에 많은 도움을 주는 시간을 만들어 준 것이다. 그 분은 미국에서 대학 교수님을 하시다가 우리나라에 오신지 십 년이 채 안 되었다고 켔는데... 중이 절이 싫어 절을 떠나 제주도에서 밀감 농사를 하시고 계신다...” 말이 길어지고, 맥락없는 ‘중(스님)’ 이야기가 나오자 동생이 재촉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 보고 있는데, 아내가 말을 한다.


“그 사람이 대학 교순데 와 ‘중’ 이야기를 하는교?” 가족들이 나를 쳐다보며 나의 대답을 기다린다고 고요하여 식당 안의 소음이 우리가 앉은 테이블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나는 말했다.


“그기 아니고, 그분 외국에서 교수를 하다가 우리나라 대학에 와가 아~들(학생)을 가르치는데, 자기 적성에 안맞아가 대학교수 때리 찻뿌다. 그말이다.”


“형님, 건배사 하라카이요?” 동생이 길을 안내하듯 조용한 말투로 나를 보며 말한다.


“그래... 건배?... 있어봐라, 그분의 과원에서 농사와 자연에 대해서 마이 배았다. 그래가 너무 고마버가 저녁이라도 대접할라 켔는데... 그분이 또 서귀포 섬 구경을 시켜줘서 섬을 구경했다. 섬에서 제주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그분은 정말... 정말 지식인이더라. 잘난 체하는 사람들하고는 다른 진짜... 아! 그래, 지성인 말이다.” 지성이라는 단어 생각하느라 말을 더듬거리며 말을 하는 속도가 느려지고 분위가 산만해지자 아내가 “가만히들 있어라. 아버지 말 들어보자”라고 하면서 나를 쳐다 보았다.


“근데 와 이 이야기가 나왔지...?” 내가 일어서서 말하고 있는 이유를 까먹은 것이었다.
“아버님, 건배사요.” 아들의 여친 ㅇ슬이가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고맙다. ㅇ슬아!”
“건배사 안할건교?” 동생이 다시 환기를 시켰다.


“자기야! 좀 기다리라. 아주버님 말씀하신다 아이가.” 제수씨는 남편인 동생을 나무라면서 “아주버님 계속 하시소.”라며 나를 바라보고 아내도 “짧게 하소”라고 경고성 목소리를 낸다.


“아버지, 말씀하세요. 천천히 말씀하셔도 돼요. 시간 많잖아요. 숙소 가서 자면 되는데요.”라고, 아들이 답답했는지 내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지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가 섬 구경을 시켜주고... 내가 횟집을 한다카이 자기가 다니는 단골 횟집에 데리고 가고 싶다 캐서, 그 횟집에 갔다. 그 횟집은 수족관이 없드라. 서귀포에서 아침마다 입찰을 봐가 장사를 하는데... 주인장 맘에 드는 횟감이 없으면 장사를 안하다 카더라.”


“엄아야, 그거는 아주버님하고 똑같네?” 제수씨가 끼어들어 말했다.
“예, 고기 없으면 쉬는 거는 같지요. 제수씨! 잠깐만요? ... 아! 맞다. 장사도 방어철인 겨울에만 하고 봄부터 가을까지는 쉰다 카데요.”


“옴마야! 그래가 밥묵고 사나?” 제수씨는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말하고 있다.
“경아 가마 있어라. 안그래도 형님 정신없다. 헷갈리게 하지말고...” 동생은 제수씨의 이름 끝자 ‘경아’를 부르며 제지를 했다.


“솔직히, 나는... 그래...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면서... 내 이야기를 들어 주는 사람은 처음이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문 열고 들어 오는 사람이 있다 아이가?”


“형님! 건배사 하라 카이?” 동생이 목소리를 크게 하면서 나의 말에 끼어들었다.
“그래. 건배한다. .... ㅇ인아(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엄마가 들어 오는기라. 그래가 내가 여기에 오게 된거다. 귀빈으로 온 기 아니고... 잡히가 왔다 이 말이다.”


“형님은 건배사 하라 카는데...”
“그래 건배사? 건배사할라꼬 하는 거다.” 동생에게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마라는듯이 ‘건배사할라꼬’에 힘을 주어 강조하면서 말했다.


“다들 잔을 들어라. 개지랄”이라고 말하며 다시 말을 이어가려 하자, 아내의 표정이 어두워지면서, “아~들(가족들) 앞에서 꼭 그래야 되겠는교?” 아내가 애써 참는 듯한 목소리를 감추지 않고 긴장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아내는 -개질랄하고 돌아다니는 여편네라든가 개지랄하는 저 사람이라는 소리를 하려는 것으로- 오해를 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 줄 알면서도 나는 아내를 이해시켜줄 마음은 없었다, 오히려 건배하는 데 방해하지 말라는 듯, “건배사라고요. 자구리 여편네야. 건배사... 건배사”라고 말하면서 아내를 째려 보았다.


“아주버님, 건배사?” “아버지?” “형님 건배사해라...” ... “개질랄”이라는 나의 큰 소리에 가족들이 하나씩 말을 한 뒤 조용해 지자 식당 안에 있던 손님들까지 우리 가족을 쳐다 보고 있었다.


“"아! 그기 아니고... 건배사다. 개질랄은. 내가 이야기하꾸마. 우째든, 서귀포에서 끌려오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이 똑똑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란 말이다. 그래가... 내 건배사가 개지랄이다. 즉, ‘개인의 지성에 날개를 달자’라는 뜻으로 개지랄이다. 이 말이다.” 말을 마치자 가족들은 웅성거리더니 한마디씩 했다. “아주버님 정말 멋지다.” “행님, 그거 말 된다.” “아버님 건배사가 너무 멋져요.” 그러나 아내와 아들은 걱정스러운듯 말이 없었다.


“술잔을 들어라. 내가, 개인의 지성에 날개를 이라고 하면 다함께 개지랄이라고 해라.”
술잔을 높이 들고 가족들은 모두가 한목소리로 “개지랄”이라고 외치며 건배를 했다.


식당은 다시 고기 굽는 냄새와 연기 속에서 시끌이하고 벅쩍이하게 들떠갔다. 아내와 아이들은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동생 내외는 골프친 이야기를, 나는 연신 술잔을 부딪치면서 “개지랄”을 외치는 동안 밤이 깊어갔다.


노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