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송정역. 1930년대 철도역사의 전형이다.

<송정역. 1930년대 철도역사의 전형이다.>


1970년대 후반 어느 여름, 초등학생이던 나는 난생처음 기차를 탔다. 부산 삼촌댁에 다니러 가던 할아버지를 얼결에 따라 나선 길이었다. 영천에서 출발한 기차가 경주 울산을 거쳐 부산 해운대를 향해 달리는 동안 호기심으로 충만한 내 눈과 귀는 지루할 겨를이 없었다. 자리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는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차창으로 스치는 생경한 풍경을 살피느라 혼이 달아날 지경이었다.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 비릿한 갯내음이 차창으로 훅 들어오는 어느 바닷가 간이역에 기차가 정차했다. 피서객들의 승하차가 끝나고 다시 기차가 출발하자 하얀 백사장과 더 넓은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수평선과 나란히 달리는 기차, 푸른 파도를 쪼아대는 갈매기의 날갯짓.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존재하다니. 두근거리는 내 어린 가슴도 더 넓은 바다 풍경에 뻥 뚫리고 있었다. 그때 나는 자유라는 말의 의미를 어렴풋이 떠올렸던 것 같다.
40여년이 지난 그때의 간이역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개나리가 활짝 핀 2018년 4월 어느 날의 송정역을 찾았다. 송정역은 해운대구 송정동 324번지에 위치한다. 동해남부선 복선철로 개통으로 이제 기차역의 용도는 다했지만, 등록문화재 제302호로 지정되어 철거만은 면하게 되었다. 1934년 12월 무배치 간이역으로 영업을 시작하여 1941년 6월 1일 보통역으로 승격되었다.


1940년 12월에 지어진 작은 역사는 삼각형 형태의 박공을 왼쪽에 치우치게 설계했으며 그 아래 대합실을 배치했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기차역의 전형이다. 역사 좌측에 지어진 노천대합실(1967년 건축)도 특이한 철제 장식으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폐역 후 송정역은 갤러리로 운영되고 있다. 매 주말 주민들이 만든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로 관광객들을 맞이했었는데 필자가 찾은 날은 어떤 영문인지는 모르나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동해남부선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바닷가 해안선 철도다. 1934년에 개통됐으며 농수산물과 공업지대의 원료 및 제품을 수송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지난 2013년 부산에서 기장까지 복선화가 완료되면서 해안절경을 펼쳐 보이며 달리던 기차는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현재 송정에서 미포 간 폐선구간은 시민들의 산책로로 변신했다. 자갈밭과 궤도 고임 장치가 걷기에 다소 불편을 초래하지만 시원한 바다를 보며 걷는 상쾌한 기분이 이를 잊게 한다.


16철길 산책을 즐기는 시민들.

<철길 산책을 즐기는 시민들.>


송정역을 벗어난 철길이 약간의 언덕길인 구덕포 구간으로 오르면 40여 년 전 어린 내 가슴을 뻥 뚫리게 했던 송정해수욕장의 절경을 한 눈에 즐길 수 있다. 송정松亭은 광주 노씨가 해송림이 울창한 언덕에 정자를 지은 데서 유래하기도 하고, 죽도 앞 거북바위에 있는 일송정에서 따왔다고도 한다. 예나 지금이나 빼어난 풍경 앞에 머물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은 한결같음을 알 수 있다.


16송정해수욕장 전경, 서핑족의 메카로 거듭나고 있는 해변.

<송정해수욕장 전경, 서핑족의 메카로 거듭나고 있는 해변.>


수평선에는 큰 배들이 순한 양처럼 바닷길을 가고 있고, 가까운 바다에는 하얀 요트 몇 척이 바다 위를 미끄러지고 있었다. 벌써부터 서핑족이 파도타기를 즐기는 해수욕장, 해변의 천국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송정은 지방 2종 어항으로 쫄쫄이 미역으로 유명한 곳으로 매년 2월 송정미역축제가 성황리에 열린다. 철길가에 미역판매라는 손글씨 간판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이유다.


16송정 철길가 해풍으로 말리는 끼다리(미역귀)

<송정 철길가 해풍으로 말리는 끼다리(미역귀)>


청사포. 구덕포를 지나 20여 분 더 걸으면 나타나는 어촌이 청사포다. 과거 기차가 운행될 때 승객들이 탁 트인 이곳의 바다를 보고 감탄사를 자아내던 곳이다. 해운대 12경인 일출과 월출의 황홀경으로 유명한 곳인 이곳은 푸른 바다만큼 해안의 소나무도 절경이다. 최근에는 관광객을 위한 유리 전망 다리가 청사포의 또 다른 명물이 되었다. 지방 어항인 청사포는 원래 100여 명의 어부가 삶의 터전을 이룬 곳이었지만 이제는 동네 전체에 횟집, 장어, 조개구이집 등이 즐비하게 들어서 성업 중이다.


16청사포유리 모습.

<청사포 유리 전망다리.>


원래 청사포는 푸른 모래라는 의미의 청사靑沙가 아니라 청사靑蛇 즉, 푸른 뱀이란 뜻의 마을이었다. 옛날 이 마을에는 금슬 좋은 부부가 살았다. 어느 날 남편이 고깃배를 타고 바다에 나갔다가 풍랑에 배가 파선되고 물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아내는 남편이 틀림없이 돌아올 것이라 믿고 큰 소나무 위에 올라가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보며 기다렸다. 이런 아내를 가상히 여긴 용왕이 하루는 푸른 뱀을 보내 용궁으로 데려오게 해 남편을 만나게 한대서 그 지명이 유래한다.


또 한편으로는 아내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가 지쳐 죽자 마을 사람들은 그녀가 기다리던 바위를 망부석, 아내가 죽은 뒤 그 자리에 돋아난 소나무를 망부송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청사포에는 아내의 애처로운 넋을 달래는 청사포 당산이 지금까지 존재한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의 가상한 뜻을 기리기 위해 당산 안에 현동조비김씨신위顯洞祖妃金氏神位라 쓴 위패를 모셨다. 지금은 청사포 당산제의 횟수가 줄고, 제관 맡기를 서로 꺼려 제의를 스님에게 맡기고 있고 축소.간편화 시켰다.


16청사포 당산 전경

<청사포 당산 전경>


청사포는 동해 남부선을 기점으로 아랫마을은 청사포, 윗마을은 새터마을로 불린다. 마을에서 혼인을 하면 새로 살림을 내어 주던 곳이라서 신기新基 마을로 불렀다가 한글 지명으로 바꾸며 새터 마을이 되었다. 이 마을은 부산 최초로 구석기 유적지가 확인된 곳이다. 이곳에서 원판형 석기, 니암제 박편 등이 발견되었는데 한반도 최남단 바닷가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당대 한.일 해양문화교류 경로를 파악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16폐선 구터널 구간.

<폐선 구터널 구간.>


시민들의 산책로로 변한 폐선구간은 장승과 바람개비 태극기 등의 조형물이 심심찮게 설치되어있어 걷는 내내 심심할 겨를이 없다. 청사포를 지나 한 30여 분 더 걸으면 어느새 저 멀리 오륙도가 보이고 광안대교와 동백섬이 보이기 시작한다. 맑은 날은 바다 저 너머 대마도까지 보인다고 하니 가히 사람의 속까지 시원하게 하는 바다 절경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짧은 터널을 지나 한참을 더 걸으면 철길 산책로의 종착지 미포 건널목이 나타난다. 송정역에서부터 4.8㎞ 지점이며 걸어서 두 시간 남짓한 거리다.


해운대 봉자실비. 모든 길은 시장으로 통한다고 했다. 요기도 할 겸 일행이 해운대 전통 시장을 찾았다. 시장 중간쯤에 있는 봉자네실비집이라는 간판 아래로 두말없이 들어섰다. 파전 뒤집기가 몸에 착 달라 붙은 주인아주머니의 솜씨에 반해서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청춘남녀는 물론 중년의 부부 등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주인아주머니께 폐선구간을 걷는 산책객들이 많이 오는지를 여쭈니 해운대에 오는 관광객들도 많지만 청사포까지 걷고 오는 사람들이 목을 축이러 많이들 들른단다.


16해운대시장 봉자실비 박봉자 사장님.

<해운대시장 봉자실비 박봉자 사장님.>


파전이 나왔다. 한 젓가락 떼서 입안에 넣어보니 예사 파전이 아니다. 쪽파도 아끼지 않았을 뿐더러 해물이 꽉 찼다. 고유한 누룩의 향이 배어 있는 금정산막걸리와 환상적인 궁합이다. 잠시 짬을 내 봉자실비 주인아주머니께 말을 붙였다. 여기서 파전을 뒤집은 지가 언제부터인지를 물었다. 올해 62세인 박봉자 사장은 2004년에 이곳에서 문을 열었다. 그전에는 돈 좀 벌어 보려고 전국에서 열리는 야시장을 떠돌며 파전을 구웠다. 야시장에서 돈통을 통째로 모두 도둑맞은 적도 있다는 주인아주머니 왈, 돈을 좇다보니 돈과 더 멀어지게 되더란다.


동아시아를 통째로 먹으려 했던 일본 역시 돈을 좇아 거미줄 같은 철길을 구축했지만 결국은 패망했다. 모든 길은 사실 돈을 좇는 인간 욕망의 긴 여정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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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경 시민기자. 시인, 울산민예총 부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