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국어대사전에서 ‘토호(土豪)’를 검색해보면 ‘어느 한 지방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양반을 떠세할 만큼 세력이 있는 사람’, ‘지방에 웅거하여 세력을 떨치던 호족’, ‘지방세력가’ 따위로 정리돼 있다. ‘국가 권력과 어느 정도 대립적인 위치에 있으면서 향촌에 토착화한 재지지배 세력을 지칭하는 개념’이라는 정의도 있다.


울산에 토호는 언제 어떻게 탄생했을까? 남구 삼산동에서 만난 J씨는 박정희식 산업화에서 실마리를 찾는다. J씨의 얘기다.


일제강점기부터 쭉 내려오던 전통적 의미의 토호가 있고, 산업화를 통해서 형성된 토호가 있다. 울산의 경우 일제가 남기고 간 적산을 불하받거나 한 사람 중에 아주 오랜 토호도 있었겠지만, 그보다 훨씬 더 강력한 부의 집중은 산업화 이후라고 봐야 한다. 산업화를 주도한 세력은 박정희 군부세력과 재벌이 아무래도 핵심이고, 재벌의 빵부스러기를 좀 유리하게 좋은 위치에서 주워 먹을 수 있었던 세력이 지금의 울산 토호를 형성했다고 생각한다.


정치적으로 보면 토호가 지금 같은 형태로 모든 부분을 다 장악하고 퇴행적인 모습을 보인 결정적 계기는 1990년 3당 합당 전후로 나뉠 수 있다. 와이에스 상도동계가 보수쪽으로 가담하면서 울산에는 특히 야권의 거두였던 심완구 전 시장이나 최형우 전 장관이 보수쪽으로 가면서 그야말로 비판세력이 거의 전무하게 된다. 유일한 비판세력이라면 정치적으로 덜 조직화된 진보쪽 노동계 외에는 기득권 내부에서 비판세력이란 건 완전히 사라지면서 기득권자의 자기비판 기능이 완전히 상실돼 이십몇년동안 계속돼왔다.


3당 합당 이전에는 박정희 정권 18년 동안에도 울산에서 민주공화당 이름으로 당선된 사람은 두 명밖에 없다. 울산이 산업수도화되면서 기득권층이 엄청나게 형성돼 굉장히 보수화된 걸로 오해하는데 사실 깨놓고 보면 박정희 18년 동안 공화당 이름으로 당선된 사람은 둘 밖에 없고 울산은 그 이후로도 박정희 산업화와 무관하게 전통적인 야도였다.


그런데 3당 합당 이후에는 보수 진영 내에 비판 기능조차 상실돼 소위 토호들이 더 보수화됐다. 이들이 합당 이후로 만들어진 보수 중심 정치 구도에 철저히 맹종하고 줄을 서면서 자기보신적 태도를 취하게 되고 그러면서 언론도 마찬가지로 철저히 길들여지고 이러면서 비판 기능 없는 토호들의 준동이라 해야 되나 적폐를 키워가는 온상이 되지 않았나 해석해 본다.


그렇게 3당 합당 이후에는 클래식한 토호들과 새로 산업화를 통해 들어온 신흥 재력가들이 몽땅 여기에 다 줄을 서지 않으면 사업하기 힘든 구조가 돼버렸다. 경쟁적으로 한 자리씩 차지하려고 하다 보니 동서 지역구도가 강화됐고, 영남, 울산에서는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으로 연결되는 정치적 흐름이 지배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울산은 시장, 구청장 이런 이들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과 자리가 다 무슨 조직화돼 있어서 조그만 행사나 동네 조그마한 자리도 정치조직의 선거 하부조직처럼 돼있고 또 그런 금전구조가 돼있고, 이것이 적폐를 온존 강화시키는 구조지 않나 그렇게 본다.


정리=이종호, 이채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