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사법부와 언론, 정치인의 책무다

김기현 울산광역시장 형제 연루 비리 의혹을 단순히 검찰과 경찰의 샅바 싸움으로만 봐야할까. 개발이냐 상생이냐의 문제로도 볼 여지는 없을까. 아파트나 부동산 이권이 개입된 비리가 과연 북구에만 있을까. 역세권이나 강동, 테크노산단과 삼산, 혁신도시에는 없을까. 합리적 의심이다. 경찰의 시청 압수수색으로 시작된 이 문제제기는 끝을 모르는 추락에 빠져있는 울산과 울산인의 삶과 그 미래를 바꿀 수 있다.

황운하 청장의 울산경찰은 두 달 전 시청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김기현 시장의 동생이 연루된 비리 의혹, 김기현 시장의 최측근인 시장 비서실장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비리 의혹을 연거푸 수사하고 검찰에 혐의자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울산지검은 이를 번번이 기각했다. 항간에서는 경찰이 너무 무리하게 수사를 했다고 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검경수사권 조정을 주창하는 황운하 청장의 울산경찰을 검찰이 곱게 볼 리 없다는 시각이 존재하고 있다.

영장 기각 사실은 다음날인 토요일에 지역신문이 잘 발행되지 않는 금요일 오후를 틈타 기습적으로 알려졌다. 지역 언론인들은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부터 이를 앞다퉈 보도했다. 한쪽에서는 한 사안을 놓고 경찰과 검찰의 입장이 이렇게 번번이 다른 경우는 드물다고 지적한 시민사회 관계자의 코멘트를 인용해 검찰의 영장기각을 행간에서 비판했다. 이 보도가 나온 지 한 시간도 안 돼서 다른 한쪽에서는 법조계 관계자는 물론 울산지검 관계자에게 직접 코멘트를 받아 사건은 법리로 따지면 될 일이지 시민의 법 감정에 호소하면 안 된다고 울산경찰을 역시 행간에서 꾸짖는 듯한 기사를 썼다. 마치 검경 대리전에 언론계가 가담한 모양새다. 이후 숱한 중앙언론의 관점이 가미된 영장 기각 관련 기사가 쏟아져 나왔고 다음날 지역 양대 일간지는 이구동성 제목으로 경찰의 무리한 수사를 비판하기에 이른다.

행간 너머의 진실

하지만 검찰, 언론, 정치인들 역시 이 사건에 김기현 시장 형제나 측근이 연루됐든 안 됐든 상관없이 방조자라는 점에서 그 책임에 자유롭지 못한 측면이 있다. 이 사건 얼개는 김기현 시장 취임 전후에 벌어진 일이다. 벌써 4년이나 됐다. 지역 정치권 등에서 이 의혹에 대한 문제제기를 할 때도 법조계나 언론계 일각에서는 이미 알고 있던 일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그렇다면 그들은 대체 4년 동안 뭘 했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게 흔히 말하는 시민의 법 감정, 지역의 여론이다. 왜 한편에서는 어디서 굴러온 돌이라고도 하는 황운하 청장이 부임할 때까지 이 사건은 그 중차대함에도 지하 깊숙이 묻혀있었냐는 뜻이다. 알았어도 직무유기, 몰랐어도 직무유기다.

이번 주, 그러니까 9일 오후 두 시 김기현 울산광역시장이 출마선언을 한다. 돌고 돌아서 드디어 재선 도전이다. “아칸소 주지사도 미국 대통령 했잖어!”라는 명언을 남긴 김 시장은 촛불 국면 이후 대권 도전, 탈당 및 바른정당 입당 등 여러 카드를 고민했지만 장고 끝에 울산 경제를 살리기 위해 시정에 전념하고 시민의 평가를 받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 직전에 서로 이웃하며 도백과 시장을 각각 지낸 홍준표 현 자유한국당 대표와 회동 후 입장을 급선회해 호사가들의 분분한 정치적 해석을 낳기도 했다. 각설하면 현직 시장 출마 이틀 전에 ‘울산경찰은 이제 수사를 고마하라’는 입장이 검찰과 지역 언론 등을 통해 은연중에 쏟아져 나온 것이다. 이때 연상되는 단어로는 ‘정지작업’이라는 게 있다.

김기현 시장의 친형 김0현 씨는 아직도 잠적 중이다. 경찰은 소재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고 체포영장을 청구했지만 이 또한 번번이 검찰이 기각시켰다. 이 수사를 번번이 경찰의 능력 부족을 탓하며 사법부에서 뭉갤 일인가. 지역 정치인들은 팔짱만 끼다 못해 급기야는 이를 정쟁의 소재로 전락시켰다. 공작수사이니 미친개이니 극언을 쏟아냈다.

1000억 원 프로젝트, 서민의 ‘고혈’이다

김기현 시장 형제 비리 의혹의 한 축으로 지목 받고 있는 북구 신천동 아파트 건축 현장은 이권이 개입된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노다지다. 아파트 시행 관련사는 이곳 개발을 맡게 되기 전만 해도 별 볼일 없는 부동산개발대행업체에 지나지 않았으나 약 1000억 원 상당의 이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며 기업 커리어에 정점을 찍는다. 또 시공을 맡은 굴지의 대기업이 여기서 따낸 수주액만 800억 원 규모다.

하지만 아파트에는 단순히 노다지로 요약되는 경제적 이득보다 더 큰 가치가 있다. 북구는 부정할 수 없는 서민도시, 베드타운, 노동자의 삶터다. 아파트는 단순히 돈벌이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는 공간이라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아파트는 보금자리다. 수많은 시민들의 삶의 터전이 될 곳이다. 아파트 개발 비리라는 것은 서민의 피눈물을 훔쳐서 이익을 착복하는 대형 경제 범죄라는 점에서 엄히 다스리고 살펴봐야 마땅하다.

당장 이 사건이 터지고 나서 조만간 준공승인과 입주를 앞두고 있는 이 아파트에서 정말 살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는 계약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아파트 외벽에 페인트도 마르지 않은 이 아파트를 부동산 시장에 내놓은 이들이 세대수로만 해도 400세대에 육박한다. 총 분양세대 수의 절반에 육박한다. 그 속에 투기세력이 얼마나 섞여있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나 그것만으로도 서민들의 고혈을 짜는 일이다. 

전 세계적인 저성장 국면과 산업 경기 침체로 인구수가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울산의 실정을 볼 때 이러한 입주 포기자 속출과 향후 심화가 우려되는 미분양 사태는 울산 중산층과 서민의 목을 조르는 직접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내년까지 울산지역 신규 아파트만 2만 세대에 육박한다는 통계도 나왔다. 울산 전역을 먹구름처럼 뒤덮고 있는 부동산 블랙홀의 복판 구석구석에 핫이슈가 된 김기현 시장 형제 및 측근 연루 비리 의혹이 있는 것이다.

드루킹 특검보다 급한 김기현 형제 특검

드루킹 사건의 피해를 본 사람들은 한낱 정치모리배들과 정도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은 정치인들이지만 아파트 및 부동산 비리라 함은 그 피해 규모가 가상현실의 댓글 폭탄 수준을 훌쩍 넘어선다. 미분양 폭탄이라는 말이 있다. 울산은 지금 폭탄을 맞았다. 울산의 핵심 개발지역 곳곳에 포진해있는 이 비리들은 서민에게는 그야말로 목을 날리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빚더미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5% 고금리 주택담보대출 시대의 현실이다. 이 문제는 한낱 울산 검경의 알력 싸움이나 지역 정치권의 정쟁거리로 끝날 게 아니라 필요하다면 특검을 추진해야 하는 중차대한 사안인 것이다.

이채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