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을 알리는 내비게이션 여자 목소리가 들리자, 아들은 건물의 모퉁이를 돌아 바닷가 주차장에 차를 세우며 말했다. “잠깐만 계세요, 여기가 맞는 것 같은데... 확인해 볼게요.” 아들이 차에서 내리자 ㅇ슬이도 아들을 따라 내리면서 “자기야, 맞다. 저기다.”라고 말했다. 아들과 ㅇ슬이가 다시 차에 타면서 동시에 말했다. “여기 맞아요.” “차를 돌려서 식당 주차장에 주차할게요. 타고 계세요.”라고 아들이 말했다.


건물은 바닷가 주차장의 도로 건너편에 있었고, 이층인지 삼층인지 구분이 잘 안 가는 건물의 이층쯤에 식당 간판이 보였다. 주자장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왼쪽은 마을회관이 있었고, 마을회관 주변에는 그물과 어구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횟집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어촌마을을 돌아다녔던가! 동해바다 정자를 기준으로 북쪽으로 이어지는 어촌들, 신명, 읍천, 감포, 구룡포, 후포, 월포, 보경사 앞바다 송라의 구진, 구계양, 영덕, 고래불, 멀고 먼 강원도 안인. 동해바다 정자를 기준으로 남쪽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어촌들, 우가포, 제전, 주전, 방어진, 장생포, 서생, 진하, 기장, 해운대, 광안리, 자갈치. 남쪽바다의 충무, 거제도, 삼천포, 남해, 미조... 서쪽바다의 완도, 여수, 대천 등지를 돌아다니면서 눈에 익었던 정겨운 풍경이었다.


삼십년 횟집을 하는 동안, 십오년은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다가 내버린 허송세월이었다. 조금이라도 특별하거나 값이 싼 생선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일톤 물차(포터)를 몰고 가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전남 완도나 강원도 안인은 일박이일 코스지만 나머지 지역은 장사를 마치고 출발해서 다음날 오전이면 도착했다. 남해 미조가 좀 먼 곳이기는 했어도 장사를 마치기 열시 전에 출발하면 한시 전에 미조항에 도착했다.


새벽의 이른 경매를 봐서 복산동에 있던 횟집에 도착하면, 정오가 지나 있었다. 활어를 싣고 돌아오던 길에 쏟아지듯 밀려오던 졸음과 아내가 기다린단 생각으로 멀고도 지루한 도로 위에서 조급해하며 안타까워 애태웠던 지난 감정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젊음이 한참인 혈기왕성한 때이기도 했지만, 젊어서 무모한 때이기도 했다. 인건비는 고사하고 기름 값도 나오지 않는 위험하고 피곤한 일을 곰처럼 겪어낸 세월이었다. 내가 바다를 그리워해서 바닷가 마을들을 찾아 헤맨 것이 아니었다. 그저 한 푼이라도 벌어 볼 요량으로 또는 큰 기회를 잡아 볼 요량으로 죽을 줄 모르고 쫓아다녔던 것이다. 


아들과 ㅇ슬이가 건물 왼쪽 옆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갔다. 테라스가 있는 2층이 식당이었다. 간판도 없이 글자 ‘부엌 in 세화’만 난간 벽에 자그마하게 붙어 있었다. 눈 여겨 보지 않으면 간판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크기였다. 계단을 올라선 출입구 앞에도 상호(전면보다는 크게)가 적혀 있었다. 실내로 들어서니 입구 좌측은 주방이 있고, 주방 맞은편에 계산대가 있다. 주방 옆 안쪽으로 진열장이 있었고 진열장을 뒤의 벽에는 화장실을 가리키는 팻말이 높이 붙어 있었다. 주방과 진열장(와인과 와인 잔, 인테리어 소품들) 앞으로 의자가 딸린 식탁이 유리창을 사이로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유리창 밖은 테라스가 이어지고... 식당으로 올라오기 전에 보았던 바닷가와 마을회관이 한 눈에 들어 왔다.


맨 시멘트에 광택이 나는 바닥은 깨끗했고, 실내는 따뜻했다. 우리는 삼십대를 갓 채운 것 같은 여성이 안내하는 탁자에 앉아서 인사를 했다.


“사장인교?” 인사를 마치고 메뉴판을 내미는 여자에게 내가 물었다.
“아니에요, 사장님은 주방에 계십니다.” 써빙을 하는 여자가 서울 말씨로 상냥하게 대답을 했다.


“그라면 부분교?”라고 다시 물어보는데 “아버지는 개인적인 것을...”이라며, 눈치를 주더니 “주문부터 하세요.”라고 아들이 말했다.


“그래도, 우리 때문에 일찍 나왔는데 인사라도 해야지. 사람이 너무 사무적이라도 못쓴다.”라고 내가 말하는 사이에 아내와 두 아이는 메뉴를 고르고 있었다. “나는 아무거나 시키면 된다.” “아무거나가 어딨는교? 골라보소.” 내 말 끝에 아내가 메뉴판을 내밀면서 말했다.


“엄마, 파스타 하나, 샐러드 하나, 볶음밥 두 종류를 시켜서 나눠 먹으면 되요.” 아들이 아내의 말과 행동을 외면하고 말했다. 아내는 아들에게 질 수 없다는 듯 메뉴에 있는 음식들을 묻고, 고르려고 애를 쓰다가 말했다. “나는 토마토가 들어간 매운 파스타 먹을 거야. 그리고 해물이 들어간 국물 얼큰한 짬뽕 파스타도.”


아내는 아이들이 옷을 갈아입고 짐을 챙길 때, 아이들이 듣지 못하도록 주의를 하면서 나에게 말했다. “자식새끼 키워놔 봤자 아무대도 필요 없심더...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안 되는 가스나한테 빠져가 즉아부지 술 마이 문 줄 알면서도 해장국 묵자는 소리 한 번 안하는 거 보소? 가스나가 가자카면 애미애비도 내삐리고 갈끼라... 미친놈!”이라고 하면서 이곳에 꼭 오려고 하던 아들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내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마냥 기분이 좋아 보였다.


식사를 하는 중간에 와인이 나오고... 와인을 따라 주던 아들이 말했다. “아버지, 오늘 밥값은 ㅇ슬이가 내고 싶다고 합니다. 여행에 초대해 주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꼭 받아 줬으면 하네요.” “아이다!” 아내와 내가 동시에 포크를 흔들며 말했다. “돈도 안 버는데... 나중에 벌면 사도 된다.” 아내가 다시 설명을 붙여서 말했다. “아니에요, 이곳의 식사비용은 제가 꼭 내고 싶어요. 어머님, 아버님이 너무 고마워서요.” “밥만 물때는 잘 안 넘어가디마는 와인하고 ㅇ슬이가 돈 낸다 카이 갑자기 맛이 억수로 좋네... 그래 고맙다. 맛있게 묵자.” 나는 와인을 막걸리 마시듯 들이키며 말했다.


아이들은 밥을 먹으면서도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우리 사진도 찍어주고, 즈들 둘 사진도 찍어 달라며 전화길 건네주기도 했다. “느그 아버지는 술장군이다. 술이 저마이 좋으까? 산에 간다는 사람이.” 와인 한 병을  다 마시다시피 하자 아내가 기분이 좋아서 하는 말이다. 걱정과 함께...


식사하는 동안 다른 손님은 오지 않았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나는 주방 앞으로 가서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요리사겸 사장에게 인사를 건넸다. “훌륭한 요리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저도 울산에서 칼질하는 사람입니다. 아침부터 번거롭게 해서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앞으로는 파스타와 와인으로 해장을 해야겠습니다.”라고 말 했다. 주방의 배식구를 마주하고 내 말을 듣던 젊은 사장은 주방문을 열고 나와 “고맙습니다”라고 머리숙여 인사를 하더니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사진을 찍으며 내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던 아내와 아이들은 내가 하는 짓이 맘에 들지 않는다는 눈치를 주고 있었지만 나는 다시 써빙을 하는 여성에게 다가가 말했다.


“신랑이 과묵한 편이지요? 성격이 깔끔하네요.”
“아니에요. 사장님이 바빠서 그래요, 점심에... 그리고 남편 아니에요.”


“그라면, 어떻게?”
“집이 서울인데요, 놀러 왔다가 친구 부탁으로 몇 달째 도와주고 있어요. 오전에는 저 분이 요리를 하고 오후에는 제 친구가 요리를 합니다.”라고 이야기하면서 명함 한 장을 건네주었다. 명함에는 ‘Owner chef 황성훈, Open, am 11:00~ pm 9:00’라고 적혀있었다.


“집에서는 걱정 안 하는교? 처자가 이래 오랫동안 객지에 있으면... 나는 울산에서 횟집을 하는 사람입니다. 경영이 아니고, 칼질을 하는 사람이지요.” 그녀의 소개를 받은 답례로 내 소개를 했다.


“너무 멋있어요. 정말이에요! 꼭 예술가 같아요. 울산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 했어요. 꼭 한 번 가보고 싶어요. 명함 한 장 주세요.” 처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명함을 달라면서 손을 내밀며 말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하기야 칼잡이도 예술은 예술이지요. 하하하. 근데 명함이 없어요. 적어 주께요.” 형식적으로 하는 인사지만, 나는 그녀가 찾아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마음이 훈훈해 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노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