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전설 민담이 많이 가미된 구 시대 역사서를 사실 위주로 바로 잡아 다시 쓰는 일이 동아시아에서 일제히 일어났다. 역사서를 다시 써서 사실을 재정리하고, 유학의 가치관을 정립하며, 고문을 사용해 문체를 바로잡고자 하는 일을 당나라(1060년), 고려(1145년), 월남(1272년) 순으로 진행했다. 중세보편주의를 수준 높게 갖추어 주권을 지키고, 나라를 발전시키고자 한 일이다.


문명권의 중간부 한국과 월남은 중세보편주의를 문명권의 중심부와 대등하게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결격 사유가 있는 것을 고쳐 써야 했다. 이런 일은 그 당시로서는 진보적인 의의가 있었으나 계속 타당성을 가지지는 못했다. 한국에서 <삼국사기>가 나온 뒤 48년 뒤 이규보가 ‘동명왕편’을 써서, 130년 뒤 일연이 <삼국유사>를 써서 <삼국사기>에서 민족문화의 주체성을 충분히 선양하지 못한 점을 불만스럽게 여기며 중세보편주의를 독자적으로 구현하는 중세후기의 새로운 역사관을 마련하고자 했다.


역사서에 ‘열전’을 두는 일은 다른 문명권에서 하지 못한 큰 자랑이다. 월남이나 일본도 받아들이지 못했으나, 우리는 수준 높은 역사서를 제대로 쓰려면 열전이 있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뛰어난 수준의 작품집을 마련한 것이 <삼국사기> 편찬의 가장 빛나는 성과이다.


‘을지문덕’ 편은 자료 부족으로 자세히 다루지 못했으나 한 대목을 잘 살렸다. 수나라 침략군을 물리친 사건을 아주 자세하고 실감나게 다루어 을지문덕이 누구이고 무엇을 했는지 미루어 알 수 있게 했다. 박진감 있는 구성과 적절한 묘사에다 수나라 장수에게 지어준 시까지 보태, 서사문의 모범 사례를 만들었다.(<한국문학통사1>, 374~377 정리)


<삼국사기> 열전 ‘을지문덕’을 3회에 걸쳐 함께 읽어보자.


乙支文德(을지문덕): 을지문덕(乙支文德)

未詳其世系(미상기세계): 가문의 내력이 자세히 전해지지 않는다.

資沈鷙有智數(자침지유지수)하고 : 그는 자질이 침착하고 굳세며 지모와 술수가 있었고 (맹금 지)

兼解屬文(겸해속문)이라 : 겸하여 글도 지을 줄 알았다.

隋開皇[開皇當作大業](수개황개황당작대업중): () 개황(開皇)[개황은 마땅히 대업(大業)으로 써야 한다] 연간에

煬帝下詔征高句麗(양제하조정고구려)하자 : 양제(煬帝)가 조서를 내려 고구려(高句麗)를 공격하게 하자,

於是(어시): 이때

左翊衛大將軍宇文述(좌익위대장군우문술): 좌익위대장군(左翊衛大將軍) 우문술(宇文述)

出扶餘道(출부여도)하고 : 부여도(扶餘道)로 나오고

右翊衛大將軍于仲文(우익위대장군우중문): 우익위대장군(右翊衛大將軍) 우중문(于仲文)

出樂浪道(출악랑도)하여 : 낙랑도(樂浪道)로 나와서

與九軍至鴨淥水(여구군지압록수): 9군과 함께 압록강(鴨淥江)에 이르렀다.

文德受王命(문덕수왕명)하고 : 문덕이 왕의 명을 받들고

詣其營詐降(예기영사항)하나 : 적진으로 가서 거짓 항복하였으나, (갈 예)

實欲觀其虛實(실욕관기허실)이라 : 사실은 그들의 허실을 보려는 것이었다.

述與仲文(술여중문): 우문술과 우중문은

先奉密旨(선봉밀지)한데 : 이보다 앞서, 밀지를 받았는데

若遇王及文德來(약우왕급문덕래)하면 : 만약 고구려의 왕이나 문덕을 만나거든

則執之(즉집지)하라 하니라 : 붙잡아두라는 것이었다.

仲文等將留之(중문등장류지)하나 : 이에 따라 우중문 등은 문덕을 억류하려 하였는데,

尙書右丞劉士龍(상서우승유사룡): 상서우승(尙書右丞) 유사룡(劉士龍)

爲慰撫使(위위무사)라가 : 위무사(慰撫使)로 왔다가

固止之(고지지): 굳이 말리는 바람에

遂聽文德歸(수청문덕귀): 결국 문덕이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였다.

深悔之(심회지)하여 : 그 뒤에 이를 깊이 후회하여

遣人紿文德曰(견인태문덕왈) : 사람을 보내 문덕을 꾀며 말했다. (紿속일태)

更欲有議可復來(경욕유의가부래)하라 하니 : “재차 의논할 일이 있으니 다시 오라.”

文德不顧(문덕불고)하고 : 문덕은 뒤도 돌아보지도 않은 채

遂濟鴨淥而歸(수제압록이귀)하니라 : 드디어 압록강을 건너 돌아갔다.

 

백태명 울산학음모임 성독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