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퍼뜩 정신을 차린다. 머리맡을 더듬어 스마트폰을 집어든다. 가느다랗게 눈을 열어 화면을 본다. 7시 45분. 지극히 평범한 하루가 시작됐다. 일어나야 한다. 마음과 달리 눈이 안 떠진다. 잠을 쫓으려고 페이스북을 열어본다. 어떤 이는 여행을 하고, 어떤 이는 맛있는 걸 먹고, 어떤 이는 사랑을 하고, 어떤 이는 시를 쓰고, 어떤 이는 정치를 논한다. 다들 빛난다. 적어도 나처럼 찌들찌들한 모습은 없다. ‘다른 사람의 하이라이트와 나의 일상을 비교하지 마’라던 아내의 말이 떠올랐다. 맞다. 다들 빛나는 순간 뒤에 어두운 궁상이 있겠지. 어떤 사람은 하이라이트를 남발한다. 하이라이트가 많으면 그림이 유치해지듯 빛나는 순간의 남발도 왠지 미숙해 보인다. 부러움 때문일까? 부러우면 지는 건데. 아무튼 일어나야 한다. 8시다!


#2


방문을 열고 나온다. 거실에서 열세살 내본이와 아홉살 새본이가 밥을 먹고 있다. 아니 씨리얼을 씹고 있다. 씨리얼은 밥짓는 것과 같은 향이 없다. 밥짓는 것과 같은 소리도 없다. 밥이 아니라 과자일 뿐이다. 아내와 눈이 마주쳤다. “좀 더 자지 않고. 내가 밥 챙겨 줄 건데”라고 하자 아내는 “오빠가 너무 피곤해 보여서”라고 말한다. “내가 애들 챙길 테니 좀 더 자”라고 얘기하지만 아내는 말을 듣지 않는다. 둘 다 일찍 일어나는 건 비효율적이라고 따지려다 참는다. 새본이는 씨리얼을 입에 물고 잔다. 씨리얼이 담긴 숟가락을 든 채 꾸벅 꾸벅 존다. 아내는 그 모습을 웃으며 바라보고 있다. “야! 김새본! 정신 차려! 빨리 먹고 양치해야지! 지금 몇 시야? 8시 20분이잖아!” 내가 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란 새본이가 허겁지겁 씨리얼을 떠 넣는다. 아내는 키득거린다. 내본이도 낄낄댄다. 나만 정색을 하고 있다.


#3


9시 30분. 몇 가지 야채를 사서 가게에 도착하는 시간이다. 활어가 도착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새 활어를 수족관에 채우고 그 중 몇 마리를 건져낸다. 팔딱거리는 우럭의 대가리를 대바칼로 내리친다. 얌전해진다. 파다닥대는 밀치는 얼른 집어 들고 모가지를 꺾는다. 얌전해진다. 원래부터 얌전한 광어를 도마에 얹고 목덜미에 대바칼을 꽂는다. 도마가 빨갛게 물든다. 비닐 앞치마도 피로 얼룩진다. 선혈이 낭자한 가운데 칼을 쳐들고 있는 사내. 영화 <악마를 보았다>의 살인마는 횟집 주방장을 보고 영감을 얻은 게 분명하다. 처음 활어를 즉살시킬 때 살 떨리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 물고기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설명하며 독려해준 덕에 겨우 첫 살어에 성공했었다. 익숙해지는 건 때로 섬뜩하다. 지금은 살어가 아무렇지도 않다. ‘살인도 그럴까?’라는 상상을 하니 더 섬뜩하다. 섬찟하다. 섬찍하다.


#4


아내가 가게로 나온다. 11시 40분쯤 되었다는 소리다. 아내는 상추와 깻잎을 씻는다. 한참을 물에 담가뒀다가 한 장, 한 장, 한 장, 한 장, 한 장, 한 장, 씻는다. 한 이 년 넘게 보아온 모습이지만 여전히 답답한 모습이다. “리뷰 봤어?” 야채를 손질하던 아내가 묻는다. “어제 배달앱에 이상한 리뷰가 하나 올라왔던데...”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든다. ‘내가 낚시도 자주 가는데 이집 회는 그 맛이 안나네염. 매운탕도 MSG 맛이 넘 강하고염. 다시 시킬 일 없을듯 하네염~’ 피가 거꾸로 솟는다. 바로 댓글을 달았다. ‘직접 낚시해서 쳐드시고 다시는 시키지 마세염~’ 얼른 지우고 다시 쓴다. ‘고객님 낚시해서 바로 드시는 회가 제일 맛있다고 생각하시는군요. 갑작스럽게 회가 드시고 싶으신데 낚시를 가실 수도 없고, 저희 가게는 그럴 때 이용하시면 되는데.. 만족을 드리지 못해 미안하네요~ 아, 생선은 원래 이노신산이 많아서 감칠맛(MSG맛?)이 많이 난다고 느끼신 것 같네요. 아무튼 좋은 하루 되세요~♡’ 또 다시 지운다. 언제나처럼 아무런 댓글을 남기지 않는다. 마치 관심도 없는 것처럼.


#5


대충 재료 준비가 끝났다. 3시 30분. 배가 고프다. 아내를 본다. 아내는 어깨를 으쓱한다. 계속 본다. “난 이것저것 집어먹어서 별 생각이 없네. 혼자 먹으면 안 돼?” 아내의 얘기가 끝나기도 전에 나는 대꾸 없이 밖으로 나간다. 담배를 피우고 돌아오니 작업 선반 위에 상이 차려졌다. 빡빡한 강된장과 야채를 넣고 비빈 밥이다. 얼음 몇 알이 뜬 오이 냉채도 있다. “내가 챙겨 먹으면 되는데 뭐하러 차렸어?” 고맙다는 말을 그렇게 대신했다. 아내는 고마운 사람이다. 아내라는 사실만으로도 고맙다. 못난 남편 만나 고생하는 게 더 고맙다. 나는 성실하지만 무능력하다. 성실이 곧 능력이던 시대가 있었다. 불과 한 세대 전 이야긴데 마치 선사시대처럼 아득하다. 성실은 능력 없는 사람들의 처절한 몸부림이다. 성실은 절대 능력을 담보하지 않는다. 성실은 자랑꺼리가 못 된다. 나는 성실하다. 젠장.


#6


선거철이다. 배달용 전화로 지지도 여론조사가 잦다. 꼬박 꼬박 조사에 응한다. 그게 영세자영업자가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정치참여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5시쯤 한 사내가 가게로 들어선다. “어서오세요~!” 인사를 하고 보니 지역구 예비후보다. 빨간색 점퍼를 입었다. 몇 해 전부터 좋아하지 않는 색이다. 내색하지 않고 명함을 받아든다. “와~ 고기가 많네요~ 이 빨간 거 도미죠? 저도 낚시 좋아하는데~” 익숙한 접근이다. 넉살좋은 웃음에 넌저리가 났다. 하지만 내색 않고 “네”라고 단답한다. 수족관을 훑던 사내의 시선이 멈춘다. 그곳엔 애들 손바닥만한 노란 리본이 붙어있다. 사내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상황을 정확히 파악했다는 듯 “수고 하세요~”라는 짧은 인사와 함께 사내도 사라졌다. 4주기를 넘기며 떼려고 했던 노란 리본이었는데 한동안 더 붙여 놓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7


오후 6시부터 9시까지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주문전화를 받고 조리를 하고 배달 기사를 부르고 배달을 완료하고. 간혹 배달이 늦어 독촉 전화를 받고, 간혹 주소가 틀려 배달 기사 애를 먹이기도 하고. 9시가 넘으면 띄엄띄엄 주문이 생긴다. 9시 30분. 한 손님이 가게에 들어선다. 주문한 음식을 내어주며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하자 “제가 더 감사합니다. 늘 정말 고맙게 잘 먹고 있습니다. 꼭 오래오래 장사해 주세요~”라며 웃는다. 얼굴까지 빨개졌다. 진심이 들어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간혹 이렇게 얘기하는 손님이 있다. 고맙다. 장사하는 보람을 느낀다. 오래오래 하라는 말은 하루가 멀다하고 문을 닫는 가게들을 보아왔기 때문에 나오는 인사였으리라. 나는 오래할 수 있을까? 직업을 오직 먹고 살기 위해서, 경력을 키우기 위해서, 소명에 따르기 위해서라고 나눈다면 나는 오직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먹고 살만해져도 내가 이 일을 계속할까? 글쎄.


#8


11시가 되면 마감을 한다. 청소를 하고 마지막으로 도마를 소독한다. 아내는 위생에 철저하다. 때로 지나치다 싶을 정도다. 손이 부르트도록 닦고 닦는다. 그 부르튼 손이 날 얼마나 초라하게 만드는지도 모르고. 아내가 정리를 끝낼 때쯤 나는 근처 치킨집에 반반치킨을 하나 시켜둔다. 집에 있는 애들을 위한 것이라고 위장하지만 사실은 내가 먹고 싶기도 하다. 아내 몰래 슬쩍 냉장고에서 맥주 한 병 소주 한 병도 챙긴다. 병 부딪히는 소리 덕에 아내와 눈이 마주친다.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왜 나한테 술 마시지 말라는 소리를 안 해? 혹시 내 앞으로 보험 들어놨냐?” 머쓱해진 내가 농담을 하자 아내는 진지하게 “그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서 그래. 나도 커피 못 끊잖아.” 문득 아내가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여주인공 엘리자베스 슈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니콜라스 케이지가 되는 건 죽어도 싫다.


#9


자정이 넘어 집에 돌아온다. 애들은 여즉 안 자고 있다. 새본이는 벌써 치킨 봉투를 열고 있다. 씻고 나오면 이미 치킨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언제부턴가 아내는 아빠가 다 씻고 나오면 같이 먹으라고 일렀고, 나는 그냥 먼저 먹으라고 했다. 그 뒤로 내가 씻고 나오는 동안 아주 천천히 먹는 걸로 암묵적인 합의를 봤다. 소맥 두어 잔을 마신 나는 “내본아, 새본아, 잘 들어. 엄마랑 아빠랑 상황이 안 좋아 따로 살기로 결정했어. 너희들한테는 정말 미안해. 하지만 이해해주길 바래.” 내본이는 놈도 안 타는데 새본이는 표정이 약간 굳어졌다. “내본이는 엄마랑 같이 살고 새본이는 아빠랑 같이 살기로 결정했어. 너희들도 그렇게 따라줄 수 있지?”라고 얘기하는데 슬쩍 눈물이 났다. 연기에 너무 몰입했기 때문이다. 내본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네~”하고 계속 치킨을 뜯었고 새본이는 먹던 치킨을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엉엉 울었다. 아내는 “으이그 왜 그런 농담을 해서 애를 울려”라며 방으로 쫓아 들어갔다. 한참 뒤에 훌쩍거리며 나온 새본이가 내게 “그런 장난하지 마세요~ 슬프단 말이예요”라며 안긴다. 나는 “응. 미안해~ 근데 너 아빠랑 같이 살아야 한다는 게 슬퍼서 운 거지?”라고 슬쩍 물으니 새본이는 또 울먹거리며 “아니예요!”라고 소리를 지른다. “알았다. 알았다. 미안. 미안. 그만할게. 근데 내본이 새본이 이제 그만 자야지. 내일 학교 가는 날이잖아. 빨리 양치하고 들어가 자.” 아이들이 간다. 마주 앉아있던 아내가 어깨를 들썩한다. 나는 같이 들어가라고 눈짓을 한다. 아내도 들어간다. 나만 남는다.


#10


새벽 한시가 다 되었는데 방에서는 아직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에게 촥 달라붙어 끊임없이 재잘거린다. 낄낄댄다. “김내본! 김새본! 빨리 안 자. 한 번만 더 소리 들리면 둘 다 밖에 나와야 되는 줄 알아!” 하루종일 떨어져 있다 만나는 잠깐의 시간, 나누는 잠깐의 교감. 얼마나 절실한지 잘 알지만 나는 또 버럭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다. 불 꺼진 거실에서 혼자 소맥 두어 잔을 더 털어넣고 있다. 마음의 불도 끈 채로.


#11


비상계단에 나와 담배 한 개비를 문다. 불을 붙인다. 깊게 빨아 당긴다. 어둑한 화면에 빨간 점이 선명해진다. 몽롱하다. 13층에서 내려다보는 거리는 스산하다. 새벽공기마냥 싸늘하다. 허공을 향해 담배꽁초를 날린다. 빨간 점 하나가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진다. 별똥별처럼. 소원을 빈다. 떨어지는 유성을 보며 소원을 빌듯.


#12


방으로 들어온다. 침대에 셋이 나란히 누워있다. 제일 구석에 있는 내본이를 덮친다. 내본이는 제법 어른스럽게 코를 곤다. 머리를 한 줌 쓸어 넘기고 얼굴을 한참 들여다본다. 양 눈썹 사이에 네살 때 꼬맨 상처가 없어졌다는 걸 이제사 알았다. 다행이다. 툭 튀어나온 입술에 내 입술을 가져다 댄다. 제법 어른스러운 냄새가 났다. 가볍게 뽀뽀를 두어 번 한다. 이번엔 새본이를 덮친다. 아직 애기같이 쌕쌕거린다. 입술도 보들보들하다. 아직 애기 냄새가 남았다. 뽀뽀를 여러 번 한다. 수염이 따가운지 몇 번 몸서리를 치고는 다시 쌕쌕거린다. 그리고 옆에 누운 아내를 본다. 질끈 묶은 머리에 안경을 쓴 채 자고 있다. 지친 기색이 만연한 얼굴이다. 머리를 살짝 쓰다듬는다. 움찔하다 눈을 뜬다. 아직 잠들지 않았다. 눈을 마주치자마자 다시 눈을 감아버린다. 나는 “피곤하지?”라고 물었다. 아내는 “응. 고단해”라고 대답했다. 나는 “미안해”라고 말했고 아내는 “알아”라고 답했다. ‘알아’였다. ‘아니’도 아닌 ‘괜찮아’도 아닌 ‘알아’였다. 나는 더 부끄러워지기 전에 방에서 나왔다.


#12


작은방 침대에 몸을 눕힌다. 머리맡에 스마트폰을 놓고 충전기를 꼽는다. 새벽 2시다. 지독히 평범한 하루가 끝났다. 눈을 감는다. 곧 다시 눈을 떠야 하고 또다시 지극히 평범한 하루가 시작되리란 걸 안다. 너무 고단한 어떤 날은 하루가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음날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어김없이 내일은 온다. 그나마 다행인 일이다.


#이거다소설인거아시죠


김동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