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많은 불행을 겪었으면 이름마저 행운이라는 말을 넣어 행운목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을까요. 현관문을 열자마자 안에서부터 짙은 꽃향기가 복도로 뿜어져 나옵니다. 열흘 남짓 집안을 환기시키지 못한 탓에 향기는 더욱 진동합니다. 코끝을 갑자기 밀치고 들어오는 꽃향기에 마취된 듯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여태껏 수많은 꽃향기를 맡아보았지만 이렇게 진한 향기는 처음 맡아보는 것 같습니다. 내게 행운이 햇빛처럼 가득 쏟아질 기세입니다.


이 행운목과 함께한 세월이 이십 년 가까이 된 것 같습니다. 어느 해 봄, 부산 어느 화원에서 토르소같이 머리 팔 다리 잘린 그 흔한 작은 묘목을 사왔습니다. 길거리나 화원에서 그렇게 잘린 것을 흔하게 팔았기에 그 나무들이 몸통에서 잘릴 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를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내게는 특별할 것도 크게 부담스러울 것도 없이 그냥 물만 잘 주면 잘 자라는 나무였습니다. 그래서였는지 나는 나무에 대해 각별한 애착을 갖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무는 어느새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서로 관심사가 많이 달랐습니다. 친구가 별로 없었던 남편은 오로지 낚시만 즐기며 전국의 저수지와 댐, 바다까지 섭렵하였습니다. 나는 나대로 일과 문학에 빠져 허우적거렸고, 큰딸은 천문학을 배우며 별을 쫓아다녔습니다. 작은 딸 또한 만만치 않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노래를 부르겠다고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이렇듯 기호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흘렀던 가족이니만큼 갈등 또한 바람 잘 날이 드물었다는 것은 불 보듯 뻔한 노릇이었겠지요. 각기 자기 관심사에만 꽂혀 서로를 차분히 들여다보지 않고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마치 이 행운목이 작은 화분에서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지, 꽃을 피우기 위해 그동안 무단히 노력하는 모습을 따스한 눈길로 들여다보지 않았듯이.


변명하자면 부모 역할이 무엇인지 개념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시작된 결혼 생활이다 보니 각자 역할에 대한 중요성을 놓치기도 한 것 같습니다. 가족의 역할에도 사랑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 가족은 그 기술이 부족한 것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좀 더 이른 시절에 가족관계의 문제를 천착하고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했더라면 하는 후회가 행운목 꽃향기처럼 밀며옵니다. 아이들에게 많이 부족한 부모였구나 싶습니다.


때때로 사소한 일상에서 피상적으로 안다고 지나쳤던 것이 이 향기처럼 훅 본질로 다가와 뜻밖에 깨달음을 얻을 때가 있습니다. 그동안 나의 어두운 내면이나 우리 가족의 일상을 지속적으로 지켜보고 있었을 행운목 앞에서 부끄러워집니다. 내게 주어진 삶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며 살아왔는지, 우리 가족에게 주어진 행운에 진실로 감사할 줄 알며 살아왔는지 자꾸 뒤를 돌아보게 합니다.


작은 화분에서 쭉쭉 뿌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자란 행운목에서 꿀이 떨어집니다. 이제라도 벌과 나비를 불러주고 싶습니다. 마음만이어서 나무에게 많이 미안합니다. 이 나무와의 인연도 행운이었고 내게 주어진 길도 행운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우주 공간에서 가족으로 만났다는 것은 무척 아름다운 행운이었습니다. 무한한 공간에서 우리는 늘 많이 외로워하고 고독해 합니다. 나의 외로움을, 나의 고독을 포근히 감싸 줄 수 있는 것은 역시 가족이라고 행운꽃이 말을 합니다. 나는 참 행운이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한 날들이 꽃향기에 묻힙니다.


조숙향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