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벽두, 군대를 제대하고 복직하여 경남 산청의 작은 산골 마을 중학교에서 근무하던 때의 일이다. 5월 15일 오전, 담임을 맡고 있던 3학년 2반 교실에 수업을 하러 들어섰더니 학생들이 모두 일어서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부반장 여학생의 지휘에 따라 사뭇 엄숙한 분위기를 지어 스승의 날 노래 합창을 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아, 그 날의 그 황당함이란...


노래 한 곡의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나는 그 동안 얼굴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몰라 벽을 보고 섰다가 창밖을 내다봤다가 안절부절못하고 허둥대기만 했다. 스물여섯 나이의 젊은 교사는 느닷없이 들이닥친 ‘하늘같은 스승의 은혜’라는 노랫말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었던 것일까? 노래가 끝난 뒤에도 나는 한동안 어찌할 바를 모르고 엉거주춤 서 있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미안합니다. 고마우면서도 왜 이리 마음이 힘든지 모르겠네. 미안해요.” 학생들은 자신들이 무슨 실수라도 한 것인가 당황해하는 눈치였다. 그 해맑은 눈빛들에 두고두고 미안한 마음이다.


그 후로도 나는 오랜 세월 해마다 ‘스승의 날’을 맞이하였다. 이제 나는 그날처럼 당황해하거나 허둥대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직도 그 날의 그 거북스러움의 한 조각이 가슴에 남아 쉽게 극복되지 않는다. 언젠가 이런 심경을 늘어놓았더니 한 선배 교사가 ‘스승’이라 부르는 말이 그렇게 부담스러우냐고 물어 왔다. 그 분의 물음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스승’이 되기에 턱없이 부족한 자신이 스승이라는 말을 듣기에 부끄러운 것인가? 아니면 ‘스승’이라는 이름 자체에 어떤 문제가 있어서 이를 받아들이기가 거북스럽다는 의미인가? 짐작건대 선배는 앞의 의미로 물었겠지만, 내 불편함은 뒤의 의미에 가까운 것이었다. 즉 나는 스승이 되기엔 턱없이 부족한 내 인품의 자격지심 이전에 ‘스승’이라는 이름 자체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스승’이란 결코 객관적 지칭이 될 수 없다. ‘스승’이란 누군가를 자신의 스승으로 여길 때 비로소 성립되는 개념이다. 그래서 “내 스승은 우리 동네 쌀가게 주인아저씨”라는 말이 성립되듯이, “나는 고등학교 삼년 동안 그 선생님의 국어 수업을 들었지만 한 번도 그 분을 스승으로 생각해 본 적 없다”라는 말도 성립되는 것이다. 즉 ‘스승’이란 누군가를 나의 스승으로 삼을 때 생기는 주관적 관계 인식의 개념이지 객관적 존재를 가리키는 개념이 아니다. 따라서 “나는 교사다.”라는 서술은 자연스럽지만, “나는 스승이다.”라는 서술은 과대망상이나 정신분열을 의심케 하는 말일 수 있다. 내가 누구의 스승을 자임한단 말인가.


만약 5월 15일이 ‘교사의 날’이라면 교사들은 마음 놓고 그 날을 자축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가 노동절을 즐거워하고 경찰들이 ‘경찰의 날’을 자축하듯이... 그러나 5월 15일이 분명 ‘스승의 날’이라면, 그리고 그 날의 이름에 동의한다면 교사들은 자중해야 한다. 조용히 마음 속 스승을 찾아보고, 그 가르침을 되새기며 문안 편지라도 쓸 일이다. 혹 누군가가 자신을 마음 속 스승으로 여기고 찾아온다면 그것은 조심스러우면서도 가슴 설레는 일이며, 그래서 박주 한 잔의 소박한 정이라도 함께 나눌 일이다.


한편 나는 우리 사회가 교사들을 싸잡아 ‘스승’이라 부르며, ‘스승의 날’을 정해 형식적 존경을 표해 오는 것에 대해 마음이 편치 않다. 이것은 교사가 한 인간으로서 성숙한 자의식을 형성하는 데에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군가로부터 형식적으로나마 존경의 표현을 받게 되면 상대의 기대를 저버리기 어려워지는 법이다. 그 기대를 저버릴 때는 지난날 존경 표현의 곱절만큼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사회의 스승 존경 캠페인은 마치 교사를 높이는 일처럼 보이지만, 실은 교사들의 말과 행동을 사회의 기대와 요구에 붙잡아두기 위한 하나의 굴레일 수 있다.


그런데, 이 인습적 요구의 굴레에 갇힌 교사는 자칫 마네킹처럼 경직된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우상에 대해 바치는 존경과 헌사가 무슨 의미가 있으랴. 우리는 번민 속에 끊임없이 자기 확립을 해 나가는 주체적 인간이 아니면 안 된다. 사회의 기성관념에 꼭 들어맞는 태도와 말을 강요당하는 자는 하나의 도구일 뿐 결코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아니 자유로운 개인조차 되기 어려울 것이다. ‘스승’이라는 지칭이 한 사람의 속 깊은 고백이라면... 어쩌랴, 그 민망함조차 교사의 숙명으로 받아 안아야지. 그러나 사회가 그저 관습적으로 ‘스승’이라는 찬사를 바치며 통속적 역할을 요구해 온다면 나는 내 영혼의 자유를 위해서 그 민망한 이름을 정중히 거절하려 한다. 다만 ‘스승의 날’ 교사를 주시하는 사회의 눈까지는 어찌할 수 없으니, 차라리 나는 이 날을 교사로서의 내 존재 의미를 반추해 보는 날로나 삼고자 한다.


서상호 효정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