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고대죄는 홈그라운드에서 하는 게 아니다

“사과는 이미 했습니다. 선거운동 때문에 바쁘셔서 못봤나보네...”

저 발언을 사과를 했다는 사람이 할 말인지 태도 문제를 지적하기 이전에 유권자 입장에서 억하심정으로 상기된 마음을 조금 가라앉히고 차분히 생각해봤다.

화가 난다. 적어도 시장 후보 첫 토론회에서 현직 시장의 입으로 ‘가난 구제는 나랏님도 못한다.’ 류 따위의 말을 들을 줄은 상상이나 어디 했겠는가.

“제가 재임하고 있는 동안 울산 경제가 많이 어려워졌습니다. 현직 시장으로 시민 여러분께 죄송한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이 말을 하기가 그렇게 어렵단 말인가. 황당한 상황은 며칠 후에 또 일어난다. 현충탑 참배를 마치고 자유한국당 주요 정치인들이 석고대죄한 모습이다. 그나마 그럭저럭 봐줄만하다. 서병수 당시 부산시장 후보 등의 석고대죄, 박근혜 구하기 읍소 전략의 재편이랄까. 이미 면역력 생긴 유권자들은 두 번 다시 속지 않겠다는 각오를 했을지도 모를 일.

문제는 울산시장이 현충일 당일 오후에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서 했다는 참회의 기도회다. 기독교 신앙이 투철한 시장이 그가 다니는 교회에서 참회 기도를 할 줄이야. 그래도 뭐 어쨌든 교회 신도니 할 수 있다고는 치자.

그래도 생각해보자. 모름지기 사과라고 하면 상식적으로 사과를 받아야 할 사람 앞에서 하는 게 도리다. 셀프 사과, 밀폐 사과라는 건 소속당 대표가 얼마 전까지 줄창 상대편을 향해 떠들어 댔던 ‘쇼’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자신의 홈그라운드에서 하는 사과라니 도대체 누구를 향해서 누구를 위해 하는 사과인가. 자신을 향해서 자신의 당선을 위해 하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현충일 석고대죄 때도 호국영령과 순국선열을 듣는 대상으로 정해 온전히 울산시민에 대한 사과가 아니었고 호국영령과 순국선열을 선거에 팔아먹었다는 지탄을 받아도 할 말 없는 일이었다. 다행히 2차 토론회와 후보자 연설에서는 이 같은 기류가 많이 누그러들었다.

허나 개인적으로 나는 재임 시절에 경제가 많이 어려워져서 죄송하다는 이야기를 꼭 듣고 싶었다. 역대 시장들의 케이티엑스 역세권 개발 정책 때문에 아버지가 일자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 일만 아니었어도 5년은 더 일하실 수 있었던 가장이 실직한 우리 가족은 대대로 오랫동안 정을 붙이고 살았던 울산을 떠나야 했다. 아버지는 다른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 상당한 기간 동안 재교육을 받고 구직을 위해 갖은 고생을 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울산시의 도움을 단 한 번도 못 얻었음은 물론이다. 어차피 퇴사 이후 울산을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실직자에게 울산의 물가나 집값은 말할 나위도 없이 비쌀 따름이다. 

당신이 말하는 더 라이징 시티라던가 길 위의 시장이라는 말은 하나도 와닿지 않는다. 오히려 공허하게 들릴 따름이다.

이채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