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언제 지났는지 모르게 후다닥 지나간다. 4월은 다소 쌀쌀하고 6월은 벌써 여름이라 바깥 활동을 하려면 고려할 사항들이 많지만 5월은 그냥 나가기만 하면 되니 과연 5월이 계절의 여왕이란 말을 들을 만하다. 그래서 다른 학교와 마찬가지로 우리 학교도 5월에 행사가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5월 초 중간고사를 마치고 어린이날 연휴를 보낸 다음 1학년과 3학년은 봄 소풍을 갔고, 2학년은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며칠 간격을 두고 교내 체육대회가 시행되어 하루 마음껏 햇볕을 쬐었다. 졸업생들을 맞아 교생실습을 진행하고, 1년 중 가장 쑥스러운 스승의 날을 슬그머니 보내고, 또 올해는 부처님까지 5월에 오시어 자비를 펼치시니 이래저래 충실하게 계절을 만끽한다.


하지만 학생들의 입장은 선생님들의 입장과 같지 않다. 어른인 선생님들이 아이들처럼 아무 생각 없이 5월을 즐기는 데 비하여, 아이들인 학생들은 오히려 어른같이 절제된 행동들을 보인다. 소풍이나 체육대회를 마치고 시내를 배회하는 학생들도 물론 있지만 다수의 학생들은 서둘러 귀가를 한다. 학교에 제출해야 할 과제가 한두 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매 학년 초 교육부에서는 전국의 모든 학교에 학업성적관리에 관한 시행 지침을 전달한다. 그 내용은 통상 예년의 지침과 비교하여 달라진 곳이 거의 없는 틀에 박힌 내용들인데 최근 두드러진 변화를 보이는 부분이 있다. 수행평가에 관한 부분이다. 몇 년 전부터 이 부분이 점차 강조되고 있다는 것을 느껴왔는데 올해의 지침은 작년보다 더 강화되었다. 지침에 따르면 고등학교에서 개설되는 과목은 예외 없이 수행평가를 실시해야 하고 그 반영 비율은 전체 성적 반영 비율의 40%를 넘겨야 한다. 더욱이 음악과, 미술과, 체육과 과목은 지필평가 없이 수행평가 100%로 성적을 산출해야 한다. 학생들이 아무리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잘 치더라도 수행평가를 소홀히 하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없다.


울산시 교육청 홈페이지에 가면 로그인을 하지 않아도 관내 고등학교의 평가계획서를 모두 볼 수 있다. 그중 1학년 수행평가의 실제 사례를 몇 개 들어본다. 국어과는 말하기 쓰기 영역, 보고서 작성, 포트폴리오 등 세 가지를 실시한다. 수학과는 수학용어 및 개념 이해와 형성평가를 각 2차례 실시하며, 영어과는 구술발표, 논문쓰기, 영어듣기를 실시한다. 한국사는 글쓰기, 역사 신문 만들기, 수업 참여도를 평가한다. 1학년이 배우는 8개 과목 모두 과목당 두세 개의 수행평가를 실시하니 모두 합하면 스무 개가 넘는다. 또 2학년과 3학년은 배우는 과목 수가 1학년보다 더 많으니 과제물의 개수도 당연히 더 많아진다.


5월은 수행평가를 실시하기 딱 좋은 계절이다. 학기 초인 3월부터 수행평가를 실시하기는 좀 성급하고, 기말고사 이후는 방학이 코앞이라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하니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중간고사를 끝낸 5월 중순부터 기말고사 시즌이 다가오기 전인 6월 중순까지 수행평가를 몰아서 진행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학생들에게 이 시기는 괴롭다. 남들은 계절의 여왕이라며 들로 산으로 하다못해 동네 산책이라도 하는 여유를 찾는 데 비하여 학생들은 틈만 나면 과제를 해야 하니 심리적으로 더 힘들 것이다.


수행평가의 비중이 증가하는 취지는 이해한다. 획일화된 교육과 평가를 벗어나 학생들의 다양한 소질과 잠재력을 발굴 육성하여 21세기가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함이고 그 연장선상에서 대학 입학 전형의 다양화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아마도 미래의 학교현장에서 지필평가는 사라지고 수행평가만 남게 될지도 모른다. 축적된 수행평가의 결과를 토대로 학생들은 자신의 적성에 최적화된 대학을 찾아가는 시스템이 정착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이 그 변화의 과도기임을 고려하더라도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기대치가 다소 과하다.


엊그제 한 녀석이 수업시간에 졸아서 깨웠는데 계속 존다. “야 이 녀석아, 너 어제 뭐했어? 왜 이리 졸아?” “샘 저 오늘 새벽 5시까지 과제한다고 잠을 못 잤어요.” “짜샤, 미리미리 좀 하지.” “한두 개가 아니에요 샘. 힘들어요.” 변화의 속도가 좀 느긋하면 좋겠다.


조성철 삼일여자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