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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87년 투쟁 기록


『잃을 것은 사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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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모 지음 / 20,000원 / 412쪽 / 2017.06.29. 출간 / 신국판(152*225) /
도서출판 광장 / ISBN 979-11-960921-0-8 03910


[개요]
1987년 여름 전국을 뜨겁게 달궜던 노동자대투쟁의 진원지 울산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생생한 투쟁 기록. 샌딩머신을 앞세우고 남목고개를 넘어 공설운동장으로, 시청으로 진군했던 노동자들의 가슴벅찬 인간선언. 11인 현중 민주노조 대책위원으로 현대중공업 민주노조 건설을 이끌었던 정병모 현대중공업노조 전 위원장이 비상한 기억력으로 두근거리던 심장 박동 소리까지 세밀하게 되살려냈다.


[책 속으로]
정둘 곳도 마땅히 갈 곳 없던 노동자들은 퇴근하면 술집 순회공연에 빠져들었다. 늦은 저녁 시간이 되면 길거리에 널브러져있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출근 시간에도 전봇대 옆이나 쓰레기 통 옆에는 조선소 잠바를 입은 채 쓰러져 있는 노동자를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하루하루 힘든 일에 대한 보상을 술로 풀거나 유흥가를 전전하는 것으로 풀어갔다. 힘든 노동의 대가로 받은 월급봉투는 조선소 정문을 나서는 순간 이슬처럼 사라졌다. -14쪽


연말이 되면 늘 현장은 뒤숭숭했다. 모든 사람들의 신경이 고과점수와 상여금과 진급에 쏠려있었고 확인되지 않는 얘기는 더크게 부풀려진 채로 떠돌아 다녔다. 하지만 막상 연말이 되어 뚜껑을 열어보니‘ 신발끈’ 소리가 절로 나왔다. 상여금이 더 나올 것이라던 얘기는 당연히 빗나갔고 차등지급도 여전했다. -21쪽


그냥 좋았다. 목 아프게 고함을 질러도 찡그리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과 어깨동무를 하며 걷다가 실수로 발을 밟아도 화내는 사람이 없었다. 어깨 걸은 옆자리 노동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생면부지의 노동자가 아니라 수십 년 몸 부대끼며 살아온 한 식구처럼 느껴졌다. 매일매일 같은 공장에 다니면서 한 번도 얘기한 적 없었던 무표정한 노동자들이었지만 사선을 같이 넘는 동지로 다시 태어났다. 기름때 절은 작업복이 몸에 닿아도 피하지 않았고 시금털털한 땀 냄새가 풀풀 나는 동료의 어깨가 정겨웠다. 용접가스에 시커멓게 찌들은 찢어진 작업복도, 페인트에 범벅이 된 안전모와 땀 냄새 밴 목에 두른 수건도 낯설지 않았다. 서로서로 얼굴을쳐다보면서 격려하고 마주보는 얼굴에는 웃음이 묻어나왔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깨와 어깨를 걸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노동자들의 발걸음에는 희망이 가득 차 있었다. 두려울 까닭이 없었다. 어딘 간들 이보다 못할 리 없고 이만큼 열심히 일다면 돈은 모으지 못해도 지금처럼 처자식 밥 굶기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아리랑 목동이란 노래가 터져 나왔다. -134~135쪽


얼마 만에 느끼는 해방감인가? 살아오면서 이렇게 마음 편하게 모여서 웃으며 얘기해 본 적이 있었던가? 한 반, 한 팀에서 몇 년을 같이 일했어도 마음을 터놓고 애기를 나눌 동료는 고사하고 서로가 서로를 경쟁 상대로 생각하고 살았던 지난날은 까마득한 옛날이 되었다. 기름때 절은 작업복, 페인트에 얼룩지고 뙤약볕에 흘린 땀 냄새가 풀풀 나는 앞뒤 옆자리 동료가 이제는 한 곳을 향해 함께 가는 동지로 태어나고 있었다. -166쪽


이때 대치하고 있던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친 노동자 하나가 화단에 있는 흙 한 주먹을 쥐고 바로 앞에 있던 정 회장을 향해 뿌렸다. 연일 계속되는 뜨거운 8월의 태양 아래 바짝 말라 있던 황토를 한 움큼 뿌렸는데 물기 하나 없이 말라 있는 황토라서 흙먼지를 날리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현대그룹을 상징하는 진청색 모자를 쓰고 나무를 붙잡고 있던 정 회장이 잠시 눈살을 찌푸리며 흙이 날아온 곳을 힐끗 쳐다보고서는 그대로 서 있다. 정 회장 눈에 흙이 들어갔는지 들어가지 않았는지는 모른다. 아니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노조는 안 된다’고 공언해온 정 회장에게 흙을 뿌렸다는 사실 하나가 갖는 의미가 중요했다. 현대그룹, 정주영, 눈, 흙,노조가 갖는 의미를 깨어버리는 상징 의식을 통해서 노동자들은 조금씩 각성하고 있었다. -196쪽


기다리고 있던 노동자들에게 11시 30분 출발 신호가 떨어졌다. 거리 진출 대오의 맨 앞에는 각종 중장비를 세웠다. 노동자들은 지게차와 포크레인, 덤프트럭, 카고트럭, 하이드로우크레인, 심지어 소방차까지 몰고 맨 선두를 이끌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회심의 일격으로 준비한 샌딩머신을 실은 트랜스포터는 도로를 가득 메우며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샌딩머신’. 경찰은 이 샌딩머신이 갖고 있는 가공할만한 위력을 회사측을 통해 들었기에 속수무책이었고 겁을 먹고 있었다. -267쪽


노동자들로 이루어진 시위대가 지나가는 길에는 주민들이 양동이로 떠 놓은 물과 음료수 등이 놓여 있었고, 목마르면 서슴없이 마셨지만 옆자리 동료와 함께 나누어 먹었다. 이제 시위대는 단순한 시위대가 아닌 거대한 물결이 되어 넘실거리며 뜨거운 아스팔트를 삼키며 휩쓸고 있었다. 이젠 그 누구도 우리 앞을 가로 막을 수 없었다. -268쪽


[출판사 서평]
1987년 7,8,9월 노동자대투쟁 30주년을 맞아 11인 현중 민주노조 대책위원으로 당시 투쟁을 이끌었던 현대중공업노동조합 정병모 전 위원장의 글이 책으로 나왔다.


현대중공업 87년 투쟁 기록 <잃을 것은 사슬 뿐이었다>는 샌딩머신을 앞세우고 남목고개를 넘어 울산공설운동장과 울산시청으로 진군했던 노동자들의 가슴벅찬 인간 선언을 생생하게 되살려내고 있다. 지은이는 남다른 기억력으로 30년 전 노동조합을 만들고 첫 파업을 벌였던 순간 순간들을 412쪽에 이르는 분량에 세밀하게 기록했다.


노동조합 결성을 준비하면서 속이 바짝바짝 타는 느낌, 선각식당 첫 거사를 무산시킨 자책감과 책임감, 조급함, 종합운동장에서 봇물처럼 쏟아지던 노동자들의 요구, 땀에 젖은 작업복에 어깨를 걸고 목이 터져라 신명나게 불렀던 아리랑목동, 첫 협상과 미숙한 합의, 기계의 부속품처럼 임금노예로 서로 경쟁하며 살아온 노동자들이 한곳을 향해 함께 가는 동지로 태어나던 해방감, 성난 파도처럼 남목고개를 넘던 가슴 터질듯한 자신감, 지도부 내부의 분열과 혼란... 30년 전 격동의 현장에 있는것처럼 지은이는 두근거리는 심장 박동과 땀 냄새, 천지를 울리던 노래와 구호 소리까지 생생하게 전해준다.
87년 7,8,9월 노동자대투쟁은 6월 항쟁과 더불어 87년 체제를 열었던 동력이었다. 30년 전 노동자들이 사슬을 끊고 기계에서 인간으로, 노예에서 주인으로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듯이 노동자들은 또 어떤 사슬로부터 벗어나 87년 체제의 한계와 오류를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야 할지 이 책을 보면서 돌이켜 묻게 된다. 이는 지난 겨울 촛불 시민들이 지금의 노동운동에 던진 뼈아픈 질문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지은이 말]
올해로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든 지 30년이 되었다. 십여 년 전 우연한 기회에 쓰다가 만, 현중노조 창립 과정에 있었던 격동의 시간과 알려지지 않은 얘기를 기록하고 싶었다. 현장 일을 핑계로 미뤘던 숙제였던 노조 설립 과정에 있었던 야사를 마무리한다는 것은 내게 엄청난 부담이었다. 하지만 평생 마음의 짐으로 안고 가는 것보다 힘들더라도 마무리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 다시 시작했다. 이 책에 나오는 사람 이름은 모두 실명이다. 기억력에 의지해 썼다고는 하나, 울산사회선교협의회가 발행한『 울산지역 7월 노동자 대중투쟁 자료집』과 도서출판 석탑에서 발행한『 새벽』지에 실렸던 권용목의「 현대그룹 노동운동사」, 녹취문『 87년 울산 노동자대투쟁 Ⅰ, Ⅱ』와, 나와 현중 노동자‘ 참글패’가 십여 년 전 만든 자료집『 골리앗은 말한다』를 참조하고 인용해완성했다. 아무쪼록 이 책이 벼랑 끝에 몰려 있는 현중 노동자와 이 땅의 모든 노동자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정병모


[추천사]
’87년 현대중공업 노동자 투쟁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해석되지 않은 부분이 남아 있다. 노동운동사에서 한국전쟁 이후 가장 큰 획을 그은 투쟁으로 기록되고, 당시 국내 최대 규모의 사업장에서 사전 준비도 없이 어떻게 단기간에 민주노조의 기초를 세웠는가 하는 점이다. 개별적 지원 외에 어떤 운동단체나 정치세력의 조직적 지원도 없이 대규모 투쟁 대오를 형성하고 민주적 통일성을 갖추고 이를 지속할 수 있었던 힘과 지혜는 어디에서 연유했는가? 투쟁지도부조차 민주주의를 경험하거나 훈련받지 못한 노동자들이었고, 오히려 독재 권력과 권위주의적 사회 질서에 억눌리고 순응하는 삶을 살아왔기에 급격한 자생적 복원력은 무엇보다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은 어떤 이익을 위한 정치적 동기가 아니라, 진실을 갈급하는 삶에 내재된 활력이 만들어낸 집단의지라고 할 수 있지만, 여전히 그 힘은 삶의 비밀이다. 물론 자생력만으로 운동을 완성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생력에 기초하지 않는 어떠한 이념적 실천도 생명력을 가질 수 없다는 교훈을 얻기에 충분하다. 이 책은 바로 당시 노동자들이 자생적 투쟁을 통해 성장하고 스스로 조직되고 단련되는 과정에 대한 정밀한 기록이다. 또한 이 기록은 그 사실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이다. 모든 기록이 그러하듯 기록은 재현이나 복원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행위에 가깝다. 이것은 사실에 대한 왜곡이 아니라, 역사는 살아있는 실체이기에 생성 가능성의 공간이 역사 그 자체에 내재해 있어 새롭게 태어날 힘을 가진다. 따라서 이 책이 말하고 있는 것은 그 시기에 노동자들이 어떻게 족쇄를 끊고 일어났는가가 아니라, ’87년 체제가 이미 우리 발목을 채운 족쇄가 되고 있기에 이를 어떻게 끊고 일어날 것인가를 말하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백무산 (시인)


정병모 동지는 현대중공업노동조합을 만든 산 증인이다. 그가 1987년 당시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책을 냈다. 그는 현대중공업노동조합이 생긴 지 30년이 되는 올해 정년퇴직을 한다. 1987년 처음 만난 인간 정병모는 지금처럼 몸집이 크지도 않았고, 성격도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60kg 정도의 깡마른 몸으로 악을 쓰며 노동자를 인솔하던 30년 전의 정병모가 글을 썼다면, 지금의 노동운동을 비판하는 이야기만 가득했을 것이다. 세월에 장사 없다고, 어느새 흰머리를 날리며 노동운동 속 자신의 역할과 함께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며 기록을 남기는 정병모 동지를 응원한다. 30년 동안 한자리를 지키기도 힘든 세상에서, 지금까지 함께 남아 투쟁하는 정병모 동지이기에 언제나 믿고 존중한다. 함께 해온 지금처럼 남은 뒷날도 동지로, 친구로 살아가기를 바라며 응원한다. -이갑용 (노동당 대표, 전 민주노총 위원장)


[차례]
제1장
내 고향 강원도 태백 / 논산보다 더 힘든 직업훈련소 / 결혼과 생활 / 학자금에도 고과가 영향 미쳐 / 떠나고 싶던 도시 울산
/ 조선소 잠바 / 산 하고 바다 하고


제2장
폭풍 전야 / M·T / 6월 항쟁 / 작은 거인 권용목 / 6·10 범국민대회 / 덩달이와 6·29 선언 / 외할머님


제3장
‘속보’ 울산노동소식 / 뿔테 안경 권용목 / 보고대회 / 울산사회선교실천협의회 / 노동문제상담소 / 첫 모임 / 풀잎주산학원
/ 노조설립신고서 / 현대미포조선 노동조합 설립 / 디데이 7월 24일 / 조직부장 이진우


제4장
현대중공업노동조합 결성 / 초대 위원장 권오성 / 뒤집기 / 조선사업부 선각식당 / 바보 / 석탑 장명국 선생 / 어용노조 퇴진
서명운동


제5장
11인 현중 민주노조 대책위원회 / 사무실에 뿌려진 첫 번째 유인물 / 애국가냐? 현대 사가냐? / 대조립공장 / 종합운동장 /
노동자들의 요구 봇물처럼 쏟아지다 / 지도부와 현장 노동자들의 생각 차이 / 여사원들의 대거 참여 / 33인 대책위와 36인
대책위 / 다시 만난 어용 임원들 / 창업주 정주영 명예회장 / 흙, 그리고 노동조합 / 첫 조합장 직접선거 공고


제6장
현대그룹노조협의회 결성 / 300번지와 송원장 여관 / 대책위의 불출마 선언 / 현대그룹노조협의회의 공동교섭 / 현대그룹노조협의회 그리고 연대 총파업 / 노동자와 최루탄 / 회사의 단전·단수, 식당 폐쇄, 노동자들의 분노 / 현대중공업노조의 독자행동 / 정주영 화형식 / 샌딩머신 / 울산 공설운동장 / 노동부 차관 한진희 제7장
정주영과 이형건, 정몽준, 그리고 샴페인 / 8·26 조합원총회와 대의원대회 / 첫 임금협상


제8장
울산시청과 윤세달 시장 / 의문의 시청 방화사건 / 채태창 열사 / 본관
신관 5층 임시 사무실 / 구속 / 노동자들의 끈질긴 17일간의 감동의 투쟁 / 채태창 열사 장례식
제9장
노조 해산 명령과 임원 개선 명령 / 이상남 열사와 김형권 총무부장 / 협의회 의장 권용목의 구속 / 협의회 탈퇴를 요구하는 엔진노조 대의원 / 석방 그리고 해고


[지은이 소개]
1957년 강원도 태백에서 태어났다.
1982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1987년‘ 현대중공업노동조합 11인 대책위원’으로 활동했다.
2007년 현중노조 20년사『 골리앗은 말한다』를 정리하고
2013년 현중노조 20대 위원장에 당선됐다.
2017년 노동당 울산시 동구당협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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