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흑림-임업과 생태관광의 공존
독일 흑림-임업과 생태관광의 공존
  • 이종호 기자
  • 승인 2018.07.04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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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베이비부머, 숲경영에서 미래를 찾다(2)

기획취재: 베이비부머, 숲경영에서 미래를 찾다
1. 울주 한독산림 ‘큰숲’을 아시나요
2. 독일 흑림-임업과 생태관광의 공존
3. 주민참여로 일군 바이오에너지마을
4. 헤센주 임업 경영, 독일 임업의 미래
5. 한국과 독일을 오간 나무 사랑
6. 숲과 함께 인생2막을 꿈꾸다


검은숲 슈바르츠발트

검은숲의 70퍼센트가 가문비나무와 전나무다. 100년 넘게 가꿔온 나무들은 사람 키를 훌쩍 넘어 하늘로 뻗어 있다.
검은숲의 70퍼센트가 가문비나무와 전나무다. 100년 넘게 가꿔온 나무들은 사람 키를 훌쩍 넘어 하늘로 뻗어 있다.

독일 남서부에는 검은숲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가 있다. 나무키 족히 30미터를 웃자란 가문비나무와 전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찬 숲자락이다. 남북으로 길이 약 160킬로미터, 동서 폭 50킬로미터, 숲 인근 도시와 마을을 포함한 전체 넓이 1만1100평방킬로미터에 이른다.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쥐라산맥 서쪽 줄기를 뒤덮고 있다. 남쪽 검은숲은 해발 700~1500미터를 넘나드는 완만한 고산지대로 호크슈바르츠발트로 불린다. 흑림을 찾은 게 지난 5월이었지만 1493미터 최고봉 펠트베르크산은 머리에 여전히 흰 눈을 이고 있었다. 북쪽엔 검은숲국립공원이 있다. 검은숲은 프라이부르크를 비롯해 약 320곳의 크고 작은 도시와 마을들을 품고 있다.

기원전 이곳은 라인강 동쪽부터 지금의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에 이르는 거대 원시림의 일부였다. 로마인들은 이 대삼림지대를 게르마니아의 헤르키니아 숲이라 불렀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갈리아 전기>에서 그가 만난 어떤 게르만인이 그 숲을 두 달 동안 여행했지만 숲의 끝까지 가 보지 못했노라고 썼다. 헤르키니아 숲의 광활함과 신비로움에 압도된 카이사르는 이 숲에 유니콘이 산다고 상상했다.

숲 안으로 들어가면 나무가 빽빽해 하늘이 제대로 안 보일 정도로 어둡다고 해서 검은숲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로마인들은 정령들로 득시글대는 괴기한 숲,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 힘든 두려운 숲이라는 뜻으로 이 숲을 ‘실바 니그라’(검은숲)라고 불렀다. 가톨릭 기록에 따르면 304년 순교한 마르첼리노 사제와 구마자(귀신 쫓는 사람) 베드로 성인도 선교 중 체포돼 실바 니그라에서 참수됐다.

중세 들어 수도원이 세워지고 목축이 늘면서 너도밤나무와 참나무 같은 흑림의 넓은잎나무들이 대량으로 베어졌다. 특히 성당의 높고 긴 채광창에 쓰일 스테인드글라스와 유리잔 따위를 만들기 위해선 유리 제작에 들어갈 칼륨을 얻을 나무 재와 엄청난 양의 땔감이 필요했다. 검은숲 곳곳에 유리 제조장이 들어서면서 숲은 빠르게 파괴됐다. 라인강을 따라 네덜란드로 나무 수출도 늘었다. 네덜란드에서는 흑림에서 베어낸 아름드리 나무들로 풍차와 배 갑판, 돛대를 만들었다.

검은숲은 16세기 독일 농민전쟁의 발화지이기도 하다. 1524년 검은숲 자락 튀빙겐에서 토마스 뮌처와 농민들이 십일조 거부, 농노제 폐지, 산림과 목초지에 대한 공동소유권 허용 등 12개 요구 조항을 내걸고 봉기했다. 흑림에서 시작된 봉기는 빠르게 전 독일로 확산됐고 곳곳에서 무력충돌을 일으키며 농민전쟁으로 발전했다.

1713년 작센 지방 산림청장 폰 카를로비츠는 그의 책 <산림경제>에서 나무는 새로 심은 만큼만 베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카를로비츠의 이 말에서 ‘지속가능’(sustainable)이라는 개념이 나왔다. 카를로비츠의 호소에도 숲 파괴는 계속됐다. 산업화가 가속화하고 1848년 흑림을 관통하는 철도가 들어서면서 숲은 더 황폐해졌다. 카를로비츠의 제안대로 나무를 새로 심지 않으면 검은숲은 완전히 사라질 지경까지 갔다. 독일 정부는 인공조림을 시작했다. 빨리 자라고 건축재로 많이 쓰이는 가문비나무와 전나무가 주로 심겼다. 1,2차 대전의 포화에도 검은숲은 지켜졌고 전후 다시 본격화한 조림으로 숲은 더 울창해졌다. 목재 생산도 늘었다. 19세기 후반 헥타르당 50~100입방미터에 지나지 않았던 임목축적량은 130여 년만에 367입방미터로 크게 증가했다.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서 연간 생산되는 목재는 1200만 입방미터에 이른다. 나무산업에 종사하는 일자리는 20만 개가 넘는다. 카를로비츠가 얘기한 지속가능한 숲경영이 검은숲에서 현실이 됐다. 독일은 카를로비츠의 저서가 나온 해를 기점으로 지난 2013년 지속가능 임업 300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검은숲 어딜 가나 하늘로 길게 뻗은 전나무와 가문비나무의 행렬을 볼 수 있다. 가문비나무와 전나무는 흑림의 70퍼센트를 차지한다. 우리말로 “소나무야 소나무야”로 번역된 독일 전래 동요의 원가사는 “오 탄넨바움 오 탄넨바움”이다. 제대로 번역하면 “전나무야 전나무야”가 맞다. 우리에게 소나무가 흔했듯 독일에선 전나무가 그랬다. 독일 유로화 5센트, 2센트, 1센트짜리 동전 뒷면엔 참나무 잎이 새겨져 있다. 독일의 유별난 나무 사랑이 엿보인다.

숲길을 걷다 만난 벨기에인 프레드릭. 118킬로미터 슐룩텐스타익 트레킹 코스를 하루 20킬로미터식 걷고 있는 그는 작은 배낭에 막대기가 전부였다. 검은숲에서는 장거리 트레커를 위해 무거운 짐을 매일 다음 숙소로 옮겨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숲길을 걷다 만난 벨기에인 프레드릭. 118킬로미터 슐룩텐스타익 트레킹 코스를 하루 20킬로미터씩 걷고 있는 그는 작은 배낭에 막대기가 전부였다. 검은숲에서는 장거리 트레커를 위해 무거운 짐을 매일 다음 숙소로 옮겨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생태관광

검은숲에는 서부, 중앙, 동부에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230킬로미터가 넘는 세 개의 긴 트레킹 코스가 있다. 열네 개의 장거리 코스도 관광객을 기다린다. 이 가운데 2008년 개발한 슐룩텐스타익 코스는 118킬로미터로 일곱 개의 깊은 협곡을 지난다. 지난 5월 로텐바크클람(협곡) 숲길을 걷다 만난 벨기에인 프레드릭은 하루 20킬로미터씩 엿새 동안 이 슐룩텐스타익 코스를 걷는 중이었다. 검은숲에서는 장거리 트레커를 위해 무거운 짐을 날마다 다음 숙소로 옮겨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프레드릭 일행은 막대기에 작은 배낭 차림이었다.

검은숲 지역에 숙박하는 관광객은 코누스 게스트 카드를 받는다. 이 카드로 흑림을 운행하는 버스와 기차를 무료로 탈 수 있다. 전기자전거를 임대하면 검은숲 곳곳에 있는 충전소에서 배터리를 무상으로 바꿔 낄 수 있다. 이런 서비스들은 관광객이 이용하기 편리할 뿐 아니라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 이틀 넘게 투숙하는 관광객에게 지급되는 호크슈바르츠발트 레드카드로 하루 세 시간 전기자동차를 빌려 검은숲 전용도로를 드라이브할 수도 있다. 친환경 이동수단을 늘려 깨끗한 공기를 유지한다는 게 검은숲의 지속가능 생태관광 전략이다.

검은숲에는 상트 페터 마을을 비롯해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서 인증한 여섯 개의 바이오에너지마을이 있다. 주민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열병합발전소를 세우고 근처 숲 나무로 만든 우드칩과 펠릿을 연료로 전기를 생산하고 난방을 한다. 등유 보일러가 사라진 마을의 공기는 놀랄 만큼 깨끗해졌다. 울창한 숲과 더불어 맑은 공기는 검은숲의 가장 큰 장점이다. 한해 8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이 매력에 끌려 흑림을 찾는다.

검은숲은 임도가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연결돼 있다. 숲속 임도를 걷다 벗어나면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길들이 이어진다. 트레킹 도중 들어선 마을 식당에서는 그 지역 전통 맥주를 마실 수 있다. 흑림에는 로트하우스 맥주를 비롯해 크고 작은 개인 양조장과 가족 양조장들이 있다. 와인 산지인 바덴 지역에선 와인 루트를 따라 다양한 와인을 맛볼 수 있다. 마을마다 맛이 다른 소시지와 치즈, 전통 음식들이 관광객을 유혹한다. 무엇보다 검은숲에는 이야기가 살아있는 마을공동체들이 즐비하다. 다양한 농가 체험 프로그램이 있고 마을축제와 이벤트가 이어진다. 전통음식과 이야기를 간직한 작은 마을공동체들은 흑림 생태관광의 또 다른 축이다.

검은숲에서 숙박하면 코누스 게스트 카드가 나온다. 이 카드로 기차와 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검은숲에서 숙박하면 코누스 게스트 카드가 나온다. 이 카드로 기차와 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검은숲국립공원

호크슈바르츠발트의 중심은 티티제(제see는 독일어로 호수를 뜻한다)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기점으로 검은숲 관광에 나선다. 티티제에서 검은숲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호프굿슈테르넨 호텔이 있다. 흑림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철길 아래 들어선 오래된 호텔이다. 이곳은 뻐꾸기시계와 유리공예품이 유명해 관광객들로 붐빈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지나치지만 이 호텔은 펠릿 열병합발전기를 갖추고 있다. 호텔에서 쓰는 전기와 난방 대부분을 자체 보일러에서 생산하는 전기와 열로 해결한다.

검은숲 곳곳엔 어린이들을 위한 숲유치원과 생태 놀이터가 있다. 티티제 노이슈타트시 펠젤레 숲체험장은 최대한 자연지형을 살려 만들었다. 숲에는 다양한 놀이시설과 체험시설, 가족이 함께 즐기는 바비큐장이 갖춰져 있다.

검은숲 곳곳엔 어린이 생태 놀이터가 있다. 티티제 노이슈타트시 펠젤레 숲체험장.
검은숲 곳곳엔 어린이 생태 놀이터가 있다. 티티제 노이슈타트시 펠젤레 숲체험장.

해발 800미터 고지에 펼쳐진 검은숲 자동차 전용도로를 달려 르훼스타인 검은숲국립공원 관리사무소에 들렀다. 이곳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건 지난 2014년이다. 오랫동안 나무를 이용해 살아온 지역주민과 나무 사업자들의 반대가 심해 이들을 설득하고 협의하느라 국립공원 지정까지 십수년이 넘게 걸렸다. 검은숲에도 자연생태를 있는 그대로 보호하고 관찰해 숲의 미래를 제시하는 국립공원이 필요하다는 얘기는 1990년대부터 나왔지만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1999년 흑림을 휩쓴 폭풍 피해 때문이었다.

1999년 12월 시속 300킬로미터의 폭풍 로타가 검은숲을 강타했다. 약 20만 그루의 가문비나무가 바람에 뿌리째 뽑히거나 피해를 입었다. 여러 대에 걸친 가문비나무 일색의 인공조림은 토양을 산성화시켰고 이 때문에 나무가 깊게 뿌리박지 못해(천근성) 피해를 키웠다.

흑림국립공원 관리사무소 직원 마리안느 라이스메사 씨는 “숲의 생태를 보호하려면 나무뿐 아니라 버섯도 살아야 하고 재선충도 살아야 한다”며 “숲이 죽어야 다른 생물들이 살아난다”고 말했다. 그는 “태풍이 불어서 나무가 쓰러지면 그것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한다”면서 “그동안 검은숲에는 이런 곳이 없었다”고 했다. 검은숲국립공원은 폭풍 로타 피해지역 일부를 인위적으로 복원하지 않고 그대로 보전하고 있다. 19년이 지난 지금 그곳엔 어린 가문비나무와 전나무, 미송, 자작나무 들이 사람 키를 훌쩍 넘겨 자라 있다.

1999년 폭풍 로타에 쓰러진 피해지역. 인위적 복원을 하지 않고 그대로 복원한 이곳엔 19년이 지난 지금 어린 가문비나무와 전나무, 미송들이 사람 키를 넘어 자라 있다.
1999년 폭풍 로타에 쓰러진 피해지역. 인위적 복원을 하지 않고 그대로 복원한 이곳엔 19년이 지난 지금 어린 가문비나무와 전나무, 미송들이 사람 키를 넘어 자라 있다.

어렵사리 출발한 만큼 국립공원 운영은 주민단체와 환경단체, 임업사단체가 참여하는 국립공원의회에서 논의해 집행한다. 마리안느 씨는 제대로 된 국립공원이 되려면 30년은 더 걸릴 것이라며 주 소유 국유림과 중간 사유림은 아직 사들이지 않았다고 했다. 국립공원은 연구와 트레킹 외에 나머지 활동이 금지되는 핵심 보호구역과 고유동물 서식지 등으로 조성하는 개발구역, 주변 사유림과 맞닿아 있어 재선충 같은 병충해 예방을 위해 500미터 이상 격리구간을 둔 관리구역으로 나뉜다. 관리구역에서는 벌채도 할 수 있다.

흑림국립공원 관리사무소 직원 마리안느 라이스메사 씨는 “숲이 죽어야 다른 생물들이 살아난다”며 “태풍이 불어서 나무가 쓰러지면 그것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한다” 말했다.
흑림국립공원 관리사무소 직원 마리안느 라이스메사 씨는 “숲이 죽어야 다른 생물들이 살아난다”며 “태풍이 불어서 나무가 쓰러지면 그것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한다” 말했다.

1911년부터 임업 경영을 못하도록 자연 그대로 놔둔 보호구역 반발트(숲) 안에는 화산호수 빌터제가 있다. 해발 1000미터 고산지대에 가문비나무, 물푸레나무, 전나무, 소나무, 너도밤나무, 자작나무 들에 둘러싸인 빌터제는 ‘검은숲의 진주’로 불릴 만큼 아름답다.

검은숲국립공원 반발트 숲에 있는 화산호수 빌터제. 검은숲의 진주라 불린다.
검은숲국립공원 반발트 숲에 있는 화산호수 빌터제. 검은숲의 진주라 불린다.

국립공원을 나와 가문비나무가 도열한 도로를 달려 바트빌트바트로 향했다. 바움뷔펠파트에는 나무 위로 걷는 산책로가 있다. 숲속 하늘길이다. 나무 꼭대기를 내려다보며 걷다 보면 40미터 높이의 전망대가 나타난다. 나선형 길을 따라 올라가면 광활하게 펼쳐진 검은숲을 360도 파노라마로 조망할 수 있다. 전망대 곳곳에 검은숲을 가꿔온 독일 임업의 역사와 생태 정보를 알림판에 새겨뒀다. 2유로를 내면 미끄럼틀을 타고 아래로 순식간에 내려갈 수 있다. 전망대 아래 테마별로 조성된 숲길엔 시민들이 공원에 기증한 나무 의자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의자엔 기증자의 이름을 하트 문양 안에 새겨놓았다.

가문비나무가 도열한 차도.
가문비나무가 도열한 차도.
바트빌트바트 바움뷔펠파트에 있는 전망대. 나선형 길을 따라 올라가면 광활하게 펼쳐진 검은숲을 360도 파노라마로 조망할 수 있다.
바트빌트바트 바움뷔펠파트에 있는 전망대. 나선형 길을 따라 올라가면 광활하게 펼쳐진 검은숲을 360도 파노라마로 조망할 수 있다.
바움뷔펠파트 테마 숲길엔 시민들이 기증한 나무 의자가 간간이 보인다. 기증자의 이름이 하트 문양 안에 새겨져 있다.
바움뷔펠파트 테마 숲길엔 시민들이 기증한 나무 의자가 간간이 보인다. 기증자의 이름이 하트 문양 안에 새겨져 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통역=이승재 나무와에너지 대표
도움=이강오 전 서울어린이대공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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