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를 주제로 한 책 - 말이 칼이 될 때(2)
혐오를 주제로 한 책 - 말이 칼이 될 때(2)
  • 이동고 기자
  • 승인 2018.07.04 15: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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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지난 20일 울산 혜인학교에서 ‘말이 칼이 될 때’ 라는 책을 낸 홍성수 교수 강의가 있었고 이후 저자와의 대화가 이어졌다. 그 강의 내용 요약에 대한 두 번째 글이다.

 

 

가장 극단적인 혐오의 예가 나치즘의 홀로코스트


홀로코스트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홀로코스트가 유태인만 600만이 죽었다고 알고 있지만 유태인만 죽은 것이 아니다. 다른 인종 소수자들, 장애인, 여호와의 증인, 동성애자 등 여러 소수자들이 많이 죽은 사건이지 유태인만 죽은 사건이 아니다. 소수자 혐오에서 확장성을 가졌다는 것이다.

히틀러가 행한 방식도 독일이 처한 경제적 어려움을 소수자들에게 문제를 전가하고 반대급부로 차별도 하고 똘똘 뭉쳐 전쟁도 한 것이다. 소수자를 혐오했던 대표적인 것으로 ‘나치즘’과 ‘홀로코스트’를 드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일베들이 첫 오프 나들이, 단호한 대처 못해


일베들이 온라인에서 놀다가 오프로 나온 첫 사건이 ‘북콘서트’에 대한 테러였는데 무척 충격을 받았다. 물론 개인 차원에서 나온 것이지만 한 번 나오면 또 나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이런 일이 터지면 전 국민이 똘똘 뭉쳐서 ‘온라인에 있을 땐 봐주는데 오프라인으로 나오면 끝장난다’는 것을 보여줬어야 했는데 놀랍게도 지지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어버이연합 등 오세훈군 변호인단이 꾸려지고 모금활동도 이뤄지면서 ‘오세훈군은 영웅이다.’식으로 나왔다. 이것은 테러를 계속 하라는 말이다. 정치지도자들이 나와서 이건 아니다 선을 그어야 하는데 박근혜도 일주일 정도 지난 국무회의에서 ‘종북이 문제는 문제다’ 식으로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트럼프도 혐오문제가 터졌을 때 ‘양쪽 다 문제다’ 하는 식으로 입장표명을 해서 자문위원 몇몇이 사표를 내고 그랬다. 그런 일이 터졌을 때 여야가 뭉쳐서 ‘테러는 안 된다’ 식으로 나와야 하는데, 정치권이 역할을 못하니까 더 많은 이들이 나와 두둔시위를 하게 되었다.  

 

혐오세력을 통제하는 것은 사회분위기 


세월호 유가족은 일베들이 SNS상에서 노는 것도 마음이 아팠겠지만, 세월호 단식장에 얼굴도 가리지 않고 몰려나온 일베처럼, 인간이 물리적으로 나올 때 더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일본 반한활동 ‘한국인들 죽여라’는 시위도 코리아타운 앞에서 이뤄지는데 온라인상으로 보다가 실제 물리적으로 보면 더 큰 충격을 받는 것이다. 왜 여기까지 오게 되었냐 묻는다면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정치권에서 이런 문제에 대해서 선을 긋거나 제대로 문제 삼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책임이 있다 본다. 그러면 혐오세력들은 언제 사그라들었을까? 혐오세력을 어떻게 나? 법적 처벌 가능하나? 하는데 실제 법적 처벌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촛불 이후로 많이 사그라들었다. 사회분위기가 이들을 발붙이게 할 수 없게 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된 날 일베 게시판에는 난리가 났다. ‘저 탈퇴하게 해 주세요’ ‘제 게시물 좀 지워주시면 안될까요?’가 수십 개가 달렸다. 혐오집단은 무슨 사상을 가진 용기 있는 집단이라기보다는 사회분위기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한없이 무너질 수도 있는 집단이다. 
혐오문제에 사회분위기나 시민사회가 이들을 어떻게 대하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혐오’라는 말로 차별의식이 담론화


혐오는 센 말이다. 혐오시설, 혐오식품 같이 많이 싫어하고 미워한다는 것도 담고 있지만 특정 소수자를 부정적으로 향할 때 문제가 된다.


말하는 쪽에서는 어떤 집단이 불쌍하고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맞는데 싫어하지는 않는다고 했다고 해서, 듣는 쪽 입장은 다르지는 않다. 열등하게 보는 것하고 싫어하는 것하고 피해자 입장에서는 별 차이는 없다. 가해자는 구분하고 싶어 하지만 피해자 입장에서는 두 가지가 비슷하다. 차별과 혐오문제는 소수자 입장에서 받아들일 용어를 써야 오해의 소지가 없다. ‘차별 표현’으로는 약한데 ‘혐오’라는 말 덕분에 담론화 되고 하나의 거점이 되었던 측면이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혐오라는 표현은 유의미하다.

 

혐오대상은 연대성과 집합성을 가진 소수자


혐오는 소수자를 차별하고 배제하는 말이다. 소수자는 신체적 문화적 특성 때문에 구분되어지는 불평등한 처우를 받는 사람이고, 스스로 집합적으로 차별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세력이라는 것. 혐오라는 것은 집단 전체가 해악을 느낀다는 측면이 있다. 특정인을 비난한다 하더라도 똑같은 특징을 가진 사람들도 이건 내 이야기다 하고 느끼는 경우라 혐오의 해악이 커진다. 차별받는 사람들이 연대성으로 집합적으로 느껴야 ‘소수자’라는 말이 성립할 수 있다. 오랫동안 차별을 받아왔고 지금도 차별을 받고 있고 앞으로도 차별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야 소수자라 하는 것이고 이들에게 욕설을 하거나 열등감을 혹은 차별하는 말을 하거나 할 때 ‘혐오표현’이라 하게 된다.

 

부적절한 말과 혐오는 구분된다


차별과 혐오는 연결될 수밖에 없는데 파란 색을 입은 사람에게 ‘너 참 구리다’하고 히잡을 쓴 사람에게 히잡 참 구리다 할 때 같은 것으로 볼 것이냐를 보면, 파란 옷을 입은 사람은 어떤 특성이 있을 수는 있다. 그 다음날 다른 색을 입고 나오거나 가능한 일이고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히잡을 쓴 사람에게 단순한 옷차림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그 옷을 입을 수밖에 없는 종교적인 사람들에게 차별하는 말이 될 수 있다. 파란 옷처럼 다음 날 다른 옷을 입고 와야지 그런 것이 안 되는 것이다. 파란색을 입은 사람은 연대의식이 없다. 하지만 이 말을 들은 히잡을 입은 사람들은 집합적 차별의식과 연대의식을 느낀다. 단순한 옷차림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더 횡행하게 되면 히잡 쓴 사람 출입금지 등 더 차별적인 조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생각하기에 이 말을 더 폭력적이고 위협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무슬림이 소수자가 아닌 무슬림의 나라에서는 히잡의 예도 신성모독은 될 수 있어도 혐오표현은 아닐 수 있기에 이 예는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 맥락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한다.

 

혐오표현은 현실문제 맥락과 연결


‘개독’같은 표현은 혐오표현이 될 수 없다고 했는데 그건 상대적인데 만일 구한말에 개독이라 할 때는 ‘죽여라’는 소리와 같을 수 있다. 다수 종교일 때는 혐오표현은 아닌 것이다.


혹 일베 혐오표현 중에 ‘삼일한’이라는 것이 있는데, 여자와 북어는 삼일에 한 대 씩 때려야 한다는 뜻이다. ‘숨쉴한’도 있는데 한국 남자는 숨 쉴 때마다 한 대씩 맞아야 한다는 뜻이다. 반응을 보면 ‘삼일한’에는 아무도 웃지 않지만 ‘숨쉴한’에 크게 웃는다. 여성들은 데이트 폭력, 성폭력, 가정폭력 등이 노출되어 있기에 웃을 수가 없는 것이다. ‘숨쉴한’은 더 폭력적이지만 현실과 연관성이 떨어지므로 그냥 유머로 받아들인다.


상대가 말을 들었을 때 공격이라 받아들이는 것은 말이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현실과 연결되기 때문에 그렇다. 드물지만 여성들이 완전 장악하는 조직에서 신입남성이 들어갔다면 숨쉴한이 폭력적 혐오표현이 될 수도 있다.

 

인종 혐오표현, 흑마, 눈 찢어진 사람


흑인을 흑마라고 표현하고 백인남자를 백곰이라 표현하는 것은 다르다. 흑마라고 하면 100여년 전까지 할아버지가 노예로 살았고 지금도 흑인에 대한 차별이 완전 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현실과 연결되므로 농담이 되기 어렵다. 백곰이라고 하면 그런 경험이 없기에 ‘나를 듬직한 사람으로 생각하는구나’ 정도로 여기는 것이다.   


얼마 전에 마라도나가 ‘눈 찢어진 사람’이라고 했다. 서양인이 동양인에 하는 전형적인 비하표현인데, 농담으로 여겨지진 않는다. 서양에서 동양인이 서양인과 동등하게 대우 받고 있다면 그냥 재미로 놀리는구나 넘어갈 수 있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으니 인종차별 의식을 느끼는 것이다. 박지성이나 기성용처럼 유명한 선수조차도 그런 표현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박지성 앞에서 그걸 표현한 관중은 평생 축구장 출입금지 받았고, 벌금형도 받았다. 사소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런 행위로 징계, 처벌을 받은 것은 인종에 대한 구체적인 공격과 차별로 보았기에 혐오로 본 것이다.

 

혐오의 피라미드


마지막으로 일반적으로는 인과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고 아래에서 위로 발전해 나가는 경향이 있다. 홀로코스트의 경우에도 처음에는 편견을 조장했다. ‘유대인은 열등한 집단이다’라고 말로만 했다. 차차 유대인의 직장을 박탈했고, 상점에 못 들어가게 하고 고사를 시키고 차별했다. 그 다음에는 게토지역에 몰아넣거나, 외국에 추방하는 식의 배제 분리정책이 나왔다. 그러다가 집단학살로까지 나가게 되었다. 독일 나치즘이 혐오의 피라미드처럼 홀로코스트까지 가게 된 전형적 통로였다. 누구나 익숙하지 않으면 인종에 대한 편견은 있을 수 있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대개는 억제하거나 바람직하지 않다고 억제하거나 한다. 나 자신도 지금 너무 부끄러운 것이 있는데 유학을 갔는데 흑인을 가까이서 보는데 너무 놀랐다. 실물을 가까이서 보니까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익숙하게 되니까 별게 아닌 것이 되고 난 공부하는 사람이니까 윤리적으로도 편견을 가지면 안 돼 하면서 극복이 됐는데, 약간의 불편함이나 익숙지 않음이 다음 단계로 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편견 극복하는 노력이 증오범죄를 막는다


편견문제를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면 음주운전 대처하듯이 한 번 불어보세요 할 수는 없다. 우리가 쉽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의식개선프로그램이나 사회전반적인 분위기도 중요하고 편견을 극복하는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 다문화가정도 한국을 배우는 프로그램도 많지만 우리도 다문화에 익숙해지기 위한 프로그램을 별로 없지 않느냐?


차차 익숙해지듯이 그렇게 갈 수밖에 없다. 중요하기에 중장기적으로 편견을 해소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듣는 수밖에 없다. 편견을 말로 드러낸 것이 혐오표현이고 ‘흑인들은 아프리카로 가라’하면 혐오표현이고 고용에 있어 흑인들은 승진을 시키지 않거나 교육을 받지 않게 하면 차별이 되고 흑인이라는 이유로 때리면 증오범죄가 되는 것이다. 증오범죄가 뭐냐 하면 기존 범죄에 편견을 더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증오범죄법이 있는 나라에서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때리면 1.5배 정도의 가중처벌을 받게 된다.

 

증오범죄는 사회적 해악이 더 커


증오범죄는 왜 더 나쁠까? 단지 윤리적 비난 가능성 문제인가? 피해자의 관점에서 보면 대개 잔혹한 범죄인 경우도 많다. 그 집단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느낄까? 우리들이 묻지마 범죄는 다들 무서워한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였다면 자기 문제가 된다. 그래서 미국에서 흑인증오범죄가 일어나면 흑인전체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혐오범죄는 그 집단 전체를 공포로 몰아넣기에, 그냥 사람을 때린 것보다 소수자 폭력을 행사하면 사회적 해악이 더 크므로 가중처벌을 받는다.

 

미국과 유럽, 혐오표현 제재방식이 달라 


차별 같은 경우에는 차별금지법이 있는 나라라면 손해배상을 한다거나 하고 형사처벌하는 나라는 별로 없다. 미국, 유럽에서 비슷하게 징벌적 차별배상으로 차별문제에 대처한다.


혐오표현에 대해서는 미국, 유럽이 대처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 유럽에서는 거리에 나가 불특정 다수를 향해 혐오표현을 하면 처벌한다. 유럽에서는 소수자를 향해 어떻다하면 거리에서 잡혀간다. 근데 미국에서는 거리에 나가 하는 표현은 규제하지 않는다. 인터넷에 올린다거나 표현하는 것에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미국은 ‘혐오표현의 자유가 있다’라고 알려져 있다고 본다. 사실 정확한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경우나 허용되는 것은 아니고 어떤 장소, 어떤 관계에서는 혐오표현을 규제한다. 혐오표현을 고용이나 서비스나 교육영역에서 하면 제재를 받는다. 미국이 거리에서 하는 것은 용인하지만 고용관계에서 한다면 엄벌에 처한다. 교실에서 했다면 가중처벌을 당한다. 예를 들면 거리에서 ‘흑인은 아프리카로 가라’ 말했다면 처벌받지 않지만 직장 내 상하관계에서 그런 말을 했다면 큰일 나는 것이다. 


현실과 관련되었을 때는 규제한다. 거리에서 할 때는 변수가 많다.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할 수도 있다. 시민사회가 튼튼하다면 대처할 수 있다. 고용관계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면 말과 행동이 분리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불특정 다수일 때는 말에 그치게 할 수 있지만 고용영역에 있어서는 말로만 받아들이기 힘든 행동의 영역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고용관계에서는 말과 행위가 분리되기 힘들기에 원 오브 뎀(one of them)으로 보는 것이다.

 

미국식, 유럽식이냐보다 더 중요한 것


그렇게 본다면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하나? 한국은 미국식을 할 거냐 유럽식으로 할 거냐 두 개를 가지고 논쟁을 벌인다. 한국에서는 싸울 필요가 없다. 어느 것이라도 좋다. 편견에 대처를 아예 안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주 잘 되고 있다고 보기엔 어렵다. 편견에 대해 사회가 똘똘 뭉쳐 대응을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금 난민문제를 잘 대처한다면 초중고에서 난민편견에 대한 교육을 바로 하는 것이 맞다. 난민이라는 이유로 해코지를 당할 위험이 어디에 있을까 하는 작업을 바로 해야 한다. 성희롱을 규제하고 있기 때문에 대처는 하지만 강하게 대처하지는 않는다. 미국은 혐오표현 자체를 규제하진 않지만 혐오표현이 차별이 되었을 때는 유럽보다 더 강하게 대처한다. 미국식을 선호한다면, 다른 대책을 열심히 한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이해한다. 다 안하겠다고 하면서 미국식으로 하겠다는 것은 아무 식도 아니다. 미국이 거리에서 혐오표현을 내버려두는 것은 나름 대처법이 잘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차별은 금지하지만 ‘차별금지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충분치 않고 증오범죄에 아무런 대책을 가지고 있지 않다.


 
차별과 혐오 대책은 동일, 빨리 서둘러야  


미국은 ‘증오범죄통계법’이라는 것이 있어서 증오범죄에 대한 통계를 낸다. 대책을 세우려면 먼저 통계를 내는 일이다. 다음 단계는 가중처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나라 범죄백서에는 증오범죄를 분류하고 있지도 않다.


강남역 살해사건이 났을 때 경찰청장이 일주일 만에 ‘이건 증오범죄가 아니다’라고 발표했다. 사회적인 증오범죄는 맞지만 법적인 증오범죄인가는 논란이 될 수 있다. 증오범죄인가 아닌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경찰이 증오범죄에 대한 기준도 없는데 증오범죄가 아니라고 발표한 점이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아무 것도 안 한다고 하기엔 야박하지만 구체적인 대책을 가지고 있지는 않고, 일단 더 심각해지기 전, 문제의식 초기에 예방주사를 맞아주지 않으면 난민혐오가 확산되는 문제에서 보듯이 무서운 속도로 번질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책에서 다룬 부분은 혐오표현 문제지만 그 표현만 다룬다고 대책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차별에 관한 보고서를 써봤고 혐오에 대한 보고서도 써봤지만 대책에 있어서는 똑같다. 원인이 같으니까 대응하는 것이 똑 같다. 둘 다 연결되어 있기에 차별과 혐오에 동시에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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