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존과 훼손 사이에서 길을 잃다
보존과 훼손 사이에서 길을 잃다
  • 원영미 기억과기록 회원
  • 승인 2018.07.1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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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기록

오늘은 옛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중구 태화동에서 있었던 이야기랍니다. 조선 영조 임금 때, 가난한 늙은 옹기장수가 옹기를 팔기 위해 구영리에서 태화동을 거쳐 울산장으로 가던 길이었다지요. 태화강을 따라 무거운 옹기를 지게에 지고 오느라 힘이 부쳤나봅니다. 동강병원에서 태화루 근처 오르막길 부근에 닿아, 땀을 식히려고 잠시 지게를 내려놓았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회오리 바람이 불어 옹기짐을 넘어트렸다는 군요. 손 쓸 틈도 없었지요. 하루 장사를 망친 옹기장수는 넋을 놓은 채 깨진 옹기 옆에 주저앉아 있었더랍니다. 


때마침 울산부사가 이곳을 지나다 옹기장수의 안타까운 사정을 들었다는군요. 잠시 생각에 잠겼던 부사는 옹기장수에게 다음 날 동헌으로 오라고 했고, 사람을 시켜 동면(현재 동구지역)에 사는 살림살이가 넉넉한 어부 둘을 함께 불렀답니다.


다음날 영문도 모른 채 두 어부가 불려왔지요. 옹기장수도 먼저 와 있었지요. 부사는 어부들에게 옹기장수가 일을 당한 그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물었답니다. 한 어부는 고기를 잡아 돌아오는 길이었고, 다른 어부는 고기잡이를 나가던 길이라 했다지요. 이에 부사는 고기잡이에서 돌아오던 어부는 동풍을 빌어 포구로 들어왔고, 다른 어부는 서풍을 빌어 바다로 나가면서, 동풍과 서풍이 만나 회오리바람을 일으킨 탓에 옹기장수가 손해를 봤으니, 옹기 값을 배상하라고 명령하였다지요. 눈치 빠른 두 어부는 부사의 속마음을 읽었겠지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두 어부는 요즈음 말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셈입니다. 소문을 들은 지역 주민들은 ‘명판결’이라며 좋아했다지요.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릅니다. 다만 자신들의 고단한 삶을 보살피는 목민관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바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야기 속 등장인물이 실존인물이라면 이야기의 신뢰성은 더욱 높아집니다. 이야기 속 울산부사는 1742년 10월부터 1744년 7월까지 울산도호부사를 지낸 윤지태입니다. 그는 부사로 재임하면서 저수지와 보를 수리하여 치수문제를 해결하였고, 학성관과 태화루를 중수했으며, 봉수대를 정비하고 울산 지역 사찰에 부과된 종이 부역을 감면해주었다지요. 윤지태가 임기를 마치고 6년이 지난 1750년, 울산 지역민들은 그의 활동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내용의 비석을 세웠습니다. 좋은 평가를 받았던 지방관이었나 봅니다. 그러니 가난한 옹기장수를 구제하는 지혜로운 지방관으로 기억되는 것이겠지요.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윤지태의 후손들이 비석의 존재를 알게 되었답니다. 2011년 후손들은 태화동의 한 병원 담장에 있던 ‘부사 윤지태 영세불망비’를 찾아왔습니다. 후손들은 태화루가 건립되면 비석을 태화루 주변으로 옮겨주길 바랐고, 이전을 미루어오던 중구청은 최근 비석을 북정동에 있는 동헌 뒷마당으로 옮겼답니다. 선정비, 공덕비, 유허비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진 조선시대 지방관들을 기리는 비석이 모여 있는 곳으로 말입니다. 외로이 홀로 떨어져 병원 담장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시민들의 관심을 받지도 못하고, 보호되지도 못하는 것이 후손들에게는 몹시 안타까웠을 겁니다.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닙니다.


‘부사 윤지태 영세불망비’가 옮겨졌다는 소식을 듣고, 비석이 있던 병원 담장을 지나다보니, 비석이 있던 자리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가더군요. 비석의 빈자리는 새로운 돌로 깨끗하게 채워져 있었지요. 언제 그곳에 비석이 있었더냐는 듯이... 그 모습을 보면서 문화유산의 보존과 관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우리는 유물의 존재를 통해 과거가 현재와 이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과거는 유형의 유물을 통해 그 존재를 드러내니까요. 과거가 실제로 어떠했는지를 알 수 없는 현재를 사는 우리는 유형의 유물을 통해 과거와 만나지요. 그런 까닭에 유물의 보존과 보호의 중요성은 두 말할 필요도 없지요.


과거가 남긴 유물은 누구의 것일까요? 유물을 처음 생산한 과거인의 것일까요? 현재 우리의 것일까요? 그도 아니면 미래인들의 것일까요? 판단이 쉽지 않습니다. 다만 적당한 크기의 돌을 골라 비석모양으로 돋을새김하고 글을 새긴 뒤 좋은 장소를 골라 비석을 세웠던 과거 울산 사람들의 마음을 읽으려는 노력은 우리가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는 것이겠지요. 천재지변이나 기타 위급한 상황에서 유물의 완전한 파괴를 막고, 일부분만이라도 보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전하거나 부분적으로 변형을 가해야하는 선택의 순간에도 우리는 진지하게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만의 것이 아니니, 보존과 관리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원형의 훼손은 무엇보다 삼가야할 일입니다. 자연석에 비석모양으로 비를 새긴 마애비 형태의 ‘부사 윤지태 영세불망비’는 동헌 뒷마당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다른 비석들과 같은 모습으로 재가공 되었다는군요. 오늘 보존과 훼손 사이에서 저는 또 길을 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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