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현장, 옛 광주 상무대숲
역사의 현장, 옛 광주 상무대숲
  • 이동고 기자
  • 승인 2018.07.11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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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쓰는 자연 이야기
수백년은 되어 보이는 상수리나무, 갈참나무로 풍성한 상무대 숲은 옛 상무대터였다.
수백년은 되어 보이는 상수리나무, 갈참나무로 풍성한 상무대 숲은 옛 상무대터였다.

연수를 받으러 정말 20년 만에 다시 찾은 광주다. 진행자에 물으니 숙소와 가까운 공원이 있다 해서 아침에 둘러보았다. 5.18기념공원이다. 장마라 아주 찌푸린 날씨인데도 아침운동을 하는 사람이 많이 보였다. 중국단풍, 튤립나무, 독일가문비나무처럼 외래수종도 있었지만 수백 년 된 갈참나무, 상수리나무 등도 있어 숲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공원 정상에는 전망대 역할을 하는 3층 누각인 오월대가 있다. 3층에 올라보니 나무들이 워낙 높이 자라 전망을 가릴 정도다. 숲과 숲 사이 가장 높은 산을 찾으니 운무에 갇혀 있는 산정상이 보인다. 저 곳이 국립공원 무등산이리라.


광주항쟁에 등장하는 ‘상무대’, 역사적 현장이 바로 이 자리였다. 가끔 경기를 하는 ‘상무팀’ 때문에 ‘국군체육부대’와 혼동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와는 다르다. 상무대(尙武臺)는 대한민국 육군의 군사 교육 및 훈련시설로 출발했다. 상무대는 이승만 대통령이 이름지었는데, “무용(武勇)을 숭상하는 배움의 터전”이란 뜻이다. 일본육군사관학교 부대별칭도 ‘항상 무예를 연마하자’는 상무대(相武台)였다니 기분이 좀 그렇다. 보병, 포병 통신병과 학교가 광주광역시 서구 바로 여기 치평동에서 설치되면서 설립되었다.


광주항쟁 당시 주역이었던, 김상집씨가 상무대에서 겪었던 증언이다.

80년 7월 초순, 푹푹 찌는 무더운 여름 어느 날, 그 날도 입에 단내가 나도록 기합을 받고 600여명 전원이 영창 마루바닥에 부동자세로 앉아 있었다...(중간 생략)
상무대 영창은 일제시대 일본식 유치장을 그대로 본 딴 직사각형 단층 슬라브다. 5월 27일 밤 처음 상무대 영창에 끌려왔을 때에는 헌병대 연병장에서 온갖 기합과 몽둥이 개머리판으로 두들겨 맞느라 정신이 없어 군대 영창이 어떻게 생긴 지도 몰랐다. 연병장에서 두들겨 맞은 다음 하나씩 불러 신원을 확인하면서 또 두들겨 맞았다. 신원확인이 끝난 다음 다시 연병장으로 끌려나와 작신작신 두들겨 맞았다. 연병장에서는 아예 작심하고 두들겨 패는 것 같았다. 엉덩이와 허벅지를 번갈아 패는데 천천히 몽둥이를 하늘높이 치켜 올린 다음 힘껏 내리쳤다. 그렇게 끝도 없이 내리쳤다. 엎드리지 않으면 머리고 팔다리고 무자비하게 난타하였다. 세워 놓고 몸무게를 실어 가슴과 배를 뻥뻥 차면 그대로 뒤로 나뒹굴어졌다. 그러다 다른 시민군을 패기 시작하면서 잠시 ‘엎드려 뻗쳐’를 하며 쉬려나 싶었는데, 웬 공수 녀석이 나타나 일으켜 세우더니 가슴과 배를 샌드백 치듯 신나게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자기 전우가 진압 중 죽었다면서 두들겨 패는 놈의 눈엔 살기가 서려 있었다. 쓰러지면 일으켜 세우고 두들겨 패고 또 쓰러지면 발목과 손목을 짓이겼다. 아파서 몸을 웅크리면 머리끄댕이를 잡아채며 다시 일으켜 세우고, 이렇게 몇 번이고 계속 두들겨 팼다.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또다시 밀려왔다.

이후 광주시민에게 정치적 부담으로 남았는지, 상무대는 1994년 12월 전라남도 장성군 삼서면으로 옮겼는데, 예전 터에는 아파트 단지와 5.18기념공원이 조성되어 정문이었던 자리에는 표지석만 남아있다.


이 5.18기념공원 안에는 여의산(如意山)이라는 야트막한 산이 있고 그 아래 ‘무각사(無覺寺)’라는 절이 자리 잡고 있다. ‘일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여의산에는 본래 극락암이라는 작은 암자가 있었다. 이곳에 상무대(전투병과 교육사령부)가 들어서면서 장병들의 훈련공간이 되자, 1971년, 당시 송광사 방장 구산 큰스님과 지역 불자들의 원력으로 민, 관, 군, 정신교육 장으로 부처님 도량 ‘무각사’를 창건했다. 무각사는 군 장병들의 신행도량으로 출발했지만 군 역사의 치욕을 비켜가진 못한 모양이다. 현재 300여 명이 한꺼번에 법회를 볼 수 있는 광주 최대의 불당이라는데 그 위에 더 큰 대웅전을 중창불사 중이었다.   


5.18기념공원에서 오른 편에는 2007년에 ‘5.18사적지’로 지정된 옛 기무부대 터가 있다. 80년 당시 505보안대로 광주진압군의 실질적인 지휘부로 추정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과정에서도 민주인사와 학생운동지도부, 시민군 등을 체포해 고문수사를 진행하는 등 직접적인 관련성을 가진 역사적 현장이다.


최근 기무사가 촛불항쟁에 계엄선포, 군 병력을 투입하려는 진압계획이 들통 나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운명이다. 치욕스런 군 역사 속에서도 참회하고 변하지 못한 결과다. 아직도 상무대터 주변에는 암매장으로 의심되는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고 한다. 이제 광주를 겨우 네 번 정도 찾았지만 난 아직 광주라는 도시를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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