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장 속의 쪽지 하나
신발장 속의 쪽지 하나
  • 서상호 효정고 교사
  • 승인 2018.07.11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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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톺아보기

교사는 학교생활이 즐거우면 삶의 질이 높아지고, 학교생활이 피곤하면 하루하루가 괴롭고 지루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교사의 학교생활을 즐겁게도 하고 또 피곤하게도 하는 것일까?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나는 학생들과의 관계가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즉, 학생들과의 관계가 좋으면 학교생활이 즐겁고 학생들과의 관계가 나쁘면 피곤하고 괴로울 수밖에 없는 게 교사의 삶이다. 교사에게 있어서 학생들과의 관계란 삶의 질을 결정짓는 중요한 문제다.

나는 예전에 명예퇴직을 해 나가는 동료들에게 정년을 기다리지 않고 굳이 몇 년 앞당겨 퇴직하는 사유를 물어본 적이 있다. 학교장 등 관리직으로 명예퇴직을 하는 이들은 대개 건강 때문이거나 재임용 시기가 어긋나서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교사로서 명예퇴직을 선택한 이들은 대부분 두 가지 사유였다. 하나는 나날이 힘들어지는 업무의 부담이었고, 다른 하나는 학생들과의 소통이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점이었다. 사십 년 세대차가 나는 학생들과의 공감대 형성은 쉽지 않았고, 따라서 수업도 힘들어지더라는 것이다.

나 또한 다르지 않았다. 나날이 서먹해져 가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퇴직을 심각하게 되질한 적도 있다. 살아온 세상이 나와 다른 아이들과 호흡을 맞추기란 쉽지 않았고, 심지어는 교실에서도 교무실에서도 외로울 때가 있었다. 아, 이래서 다들 그만두는구나 싶었다. 그러나 요 몇 년 사이에 내 삶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었다. 퇴직을 앞둔 시점에서 이런 고백은 좀 쑥스럽지만, 교사 생활 사십년에 이른 지금에 와서 나는 학생들과 가장 좋은 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요 몇 년간은 수업 속에서 내 웃음이 전에 없이 많아졌다. 학생들의 농이나 웃음도 많아진 걸 보면 이게 자기최면에 의한 자아도취만은 아닌 듯하다. 늦게나마 찾아온 소중한 행운일까? 아니면 만시지탄(晩時之歎)을 늘어놓아야 할 일일까?

행운을 자랑하면 곧 날아가 버린다는데…… 걱정을 하면서도 나는 근래에 이 행운과 관련한 내 삶의 한 부분을 여기 고백하려 한다. 어쩌면 이제 곧 이 의자를 비워 주어야 할 사람으로서 뒷사람들에게 은근히 귀띔해 주고자 하는 의도가 없지 않다. 아무리 부지런하고 유능한 교사라도 학교생활이 즐겁지 않고 학생들에게 호의를 가질 수 없다면 의미 있는 교육활동은 어렵지 않겠는가? 그리고 복권 당첨이 아닌 한 행운도 꼼꼼히 살펴보면 그 이유가 있고, 또 보편화의 길도 찾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지난날 나는 교사의 존재 이유가 교화(敎化)에 있다고 믿어 왔다. 그래서 늘 학생을 변화시키고자 애를 써 온 것이다. 학생의 자율적 판단과 자기 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늘 학생의 행동과 사고에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는 신념을 고수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학생의 행동 변화는 교사의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때로는 고집스런 줄다리기에 매달리기도 했고, 그 연장선에서 갈등을 겪기도 했다. 때로는 논리적 사고의 중요성을 앞세워 대결하듯이 학생 설득에 고집을 부렸던 적도 있다.

그런데 요 몇 년 사이 나는 나 스스로가 달라진 것을 느낀다. 나는 이제 학생들과 각을 세우고 논리 다툼을 할 때가 드물다. 간혹 토론 속에 논리를 펼칠 때도 한결 여유 있고 부드러워진 자신을 느끼곤 한다. 처음엔 내가 늙어 버린 건가 싶기도 했지만, 학생들과의 관계가 더 가까워진 걸 느낄 때면 오히려 젊어진 느낌을 받곤 한다. 보다 유연해진 자신을 느끼는 것이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달라지게 만들었을까? 나는 내 삶을 역추적해 가기 시작했는데, 긴 추적 끝에 나는 하나의 단서를 찾을 수 있었다. 나의 이 변화는 몇 년 전 내 신발장 안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한다.

서너 해 전 어느 날, 중앙현관 내 신발장 안에 작은 쪽지 하나가 붙었다. ‘○○○쌤’부르는 다정한 음성, 기쁜 웃음 ‘ㅎㅎ’, 빨간 하트 문양 하나……. 이게 그 쪽지 내용 전부다. 그런데, 무슨 까닭일까? 쪽지를 처음 본 순간 나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그 소박하고 단순한 메시지가 세상 가득 환한 웃음 함께 기쁨으로 밀려온 것이다. 그 후로 나는 신발장을 열 때마다 그 환한 웃음을 아침저녁으로 보면서 기쁨 속에 출근하고 또 퇴근을 했다. 누가 붙인 걸까? 나는 몹시 궁금했다. 지나가는 학생들을 볼 때면, ‘저 학생이 붙인 걸까? 어쩌면 저 학생이……? 아니, 어쩌면 남학생인지도 몰라.’ 생각을 뒤적이곤 했는데, 그러는 동안 학생들을 바라보는 내 눈빛과 태도가 점점 달라져 간 것이 아닌가 한다.

학생을 바꾸겠다는 교사의 신념을 마냥 나무랄 순 없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세상에서 위계의식이 가장 강한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 학생을 바꾸겠다는 교사의 강한 신념은 자칫 맹목의 고압적 태도가 될 수도 있다. 입만 열면 이 사회의 위계 문화를 비판해 온 나는, 은연중 이 위계 문화의 습관에 젖어 나도 몰래 고압적 자세를 취해 온 것은 아닐까?

지난 몇 년 이래 나는 사십 년 교직생활 중 학생들과 가장 좋은 관계를 맺어 왔다. 나는 이 놀라운 변화가 학생을 바꾸겠다는 내 신념과 달리 실은 내가 바뀜으로써 일어난 변화임을 고백한다. 그리고 나의 그 변화는 지금도 붙어 있는 내 신발장 안의 작은 쪽지 한 장에서 비롯되었다고 믿고 있다. 내가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는 것을 가르쳐 준 소중한 쪽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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