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림동 모델, 광주 원 도심 전체로 퍼지나
양림동 모델, 광주 원 도심 전체로 퍼지나
  • 이채훈 기자
  • 승인 2018.08.08 13: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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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 철이 들 때’ 광주광역시 편
젠트리피케이션의 안전판을 찾아서
양림동 역사문화마을 일대.
광주역 전경.

광주광역시는 1990년대를 앞두고 도농 통합을 통해 영산강 너머로 시역을 확대했다. 그 효과는 월드컵을 전후로 한 대규모 개발로 진가를 드러낸다. ‘전방’(전남방직)으로 대표되는 방직 산업의 쇠퇴 이후에 신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산업단지 조성과 더불어 배후주거지를 상당한 규모로 개발한 것이다. 이때 월드컵경기장을 중심으로 광주 남부 지역에는 금호지구, 풍암지구 등등 수많은 택지지구가 조성됐으며 영산강 건너 첨단지구 등에는 광주과학기술원을 필두로 대규모 연구시설 입주와 함께 배후주거지 건설이 시작됐다. 

그중 연구.정부기관이 밀집한 첨단지구에 주목한다. 이곳에 상당한 상업용지 물량으로 볼 때 광주에서는 아마 이곳을 부도심 수준으로 키워내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복합영화관과 의류아울렛도 더러 있다. 그러나 광주공항 근처라는 입지 조건 때문에 5층 이상의 아파트를 짓지 못하게 되면서 기대만큼의 성과는 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산업단지의 힘으로 주거, 상업시설까지 쌍끌이 하려던 청사진은 조금씩 어긋난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름대로 첨단의 연구,산업중심단지로 성장한 첨단지구에서부터 광주전자로 출발한 백색가전의 광주삼성전자 하남사업장, 금호타이어가 있는 송정, 평동공단까지 산업벨트가 형성되면서 광산은 광주의 새로운 활력이 되고 있다. 광주송정역 고속철도 개통 이후에는 현대카드의 디자인마케팅이 돋보인 송정역시장이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지금은 자동차 100만대 생산도시 목표라는 광주형일자리 프로젝트가 8부 능선을 넘으면서 조선업 침체로 생기를 잃은 울산에 고민거리를 던지고 있다.

그 결과 광주 외곽의 작은 군이었던 광산은 광주광역시와 통합한 이후로 천지가 개벽할만한 급작스러운 변화를 보이면서 광산구 인구가 광주시 전체 인구의 4분의 1을 넘길 정도의 큰 성장을 이뤄낸다. 그 기폭제에는 최근 광주에서 가장 핫한 주거지라는 평판을 얻은 수완지구의 급성장이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광주의 집값을 잡아달라는 호소가 올라올 만큼 광주의 평균 아파트 집값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수완지구. 첨단지구에는 보기 드문 고층 아파트와 사통팔달로 이어지는 교통망, 호수공원과 함께 들어선 유통대기업의 복합 상업시설이 앵커 역할을 하면서 수완지구를 중심으로 광산구 지역 전체가 재편되고 있는 실정이다. 거대한 학원가가 형성될 만큼 학구열도 높다.

양림동이 곧 광주, 원 도심 ‘자부심’

누군가 수완지구와 남구 봉선동의 아파트 시세를 보고 ‘혹시 집값을 담합한 것은 아닐까?’라고 의구심을 품을 만큼 최근의 부동산 열기는 심상치 않았다. 이미 광주의 새로운 부촌으로 자리매김에 성공한 수완지구, 전통의 부촌으로 학구열로는 광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봉선동에서 방학이든 주말이든 아랑곳 않고 학원가를 전전하는 청소년들의 구슬땀을 뒤로 한 채 국가지정 문화예술특구 동구와 역사문화관광의 메카인 남구가 마주보고 있는 광주천 일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역사문화관광특구로 일컬어지는 양림동은 그 유명세와 달리 아직 상권의 변화를 둘러싼 갈등이 극심한 편은 아니다. 기세가 한풀 꺾였다기보다는 연일 계속되는 폭염경보에도 공사장에 쩌렁쩌렁한 망치질 소리로 판단컨대 이들은 지금 바람 선선한 가을을 예비하고 있다.

더군다나 현재도 대형 상업 문화복합시설 공사가 막바지에 이르러 향후 양림동의 변화에 대해 기대와 우려가 섞인 목소리가 공존하나 최근 큰 도시문제인 젠트리피케이션의 증상이 심각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여느 문화관광특구와 달리 대기업의 브랜드 가게가 들어온다거나 하는 문제는 찾기 어렵고 주민들도 이를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있다. 오히려 적당한 아이템을 찾지 못해 장사가 안 됐으면 안 됐지 임대료 부담 때문에 떠나는 소상공인을 찾아보기는 드문 실정이다.

성공적인 도시재생에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는, 상권 내 건물 임대료의 급격한 상승으로 인해 해당지역 상권을 일궈내는데 일조한 장인들이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상대적으로 광주 양림동에서만큼은 조금이나마 덜한 이유는 무엇일까.

양림동의 역사성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이곳이 푸른 눈의 선교사들이 일궈낸 호남 기독교의 중심지라는 점을 떠올리면 된다. 광주 최초의 교회라는 양림교회 신도이며 지역문화해설사로 활약하고 있는 주민 한 분은 교회 앞을 ‘호남의 예루살렘’이라고 표현한다고 귀띔했다. 한때 길모퉁이 모든 건물들이 전부 교회 자산이었기 때문이다. 양림동 주민들, 이곳에서 나고 자라며 교회가 삶의 일부였던 이곳 사람들은 양림동의 골목, 건물, 신작로 하나하나 교회와 주민들이 직접 만든 것이라는 자부심이 어마어마했다.

말하자면 광주가 곧 양림동이고 양림동이 곧 광주라는 것이다. 조선에 그리스도의 빛을 전파하기 위한 사명으로 온 사람들이 머문 교회의, 기독교의 성지다. 대동정신의 본령이 기독교 정신이라고 말하는 양림동에서 애당초 누굴 쫓아내려한다거나 밀어내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공공성과 나눔을 핵심가치로 내건 교회의 자산을 돈 때문에 민간에 매각할 수 있겠냐는 것. 이런 교회의 시설 자체가 역사성과 예술성으로 인해 양림동으로 사람들의 눈길과 발길을 모으는 앵커시설 노릇을 하면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마을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졌다. 양림동이 광주천 건너 충장로 시내와 구 시청 앞 먹자골목과 직결되는 점 역시 젠트리피케이션의 완충작용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양림동과 도청 앞, 두 지명이 모든 것을 대변하는 광주 원 도심이 안정적인 역사문화관광벨트로 조성된 데에는 공공(중앙정부)과 종교라는 거대한 배후가 있다. 이명박근혜 보수정권 9년 동안 ‘창조경제’라는 미명 아래 참여정부의 대표 정책인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을 압살하려고 했던 과거가 있었지만 촛불대선 이후에는 이를 만회라도 하듯 문화전당에 대한 집중적인 지원이 전망되고 있다. 아울러 문재인 대통령이 5.18 기념식에서 언급했듯 ‘유가족들이 원하는 대로’의 구 도청 복원이 또 다른 과제로 떠오르면서 아시아문화전당의 운명은 바야흐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뒤따라 사람들의 관심도 더욱 높아지고 있다. 조선대학교 앞과 아시아문화전당 주차장을 잇는 카페골목은 이미 전국적으로 유명해져서 주말만 되면 교통체증에 예약 없이는 줄서기 바쁘다.

알에서 깨지 못한 수많은 양림동들
이렇듯 옛 전남도청 앞을 핵심으로 주변부에 남광주시장(남광주역 야시장)과 지역민들이 폐철도부지 활용 및 관리를 주도한 우수사례인 ‘광주 푸른길’ 안내소가 관광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고, 해돋이 명소이면서 광주 원 도심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사직공원 전망대와 광주의 포크음악 1세대를 추억하는 통기타거리를 비롯해 호남의 예루살렘이라는 양림동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광주 원 도심은 자유여행을 좋아하는 젊은 세대들에게도 통하는 ‘핫 플레이스’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이 중에서 기존에 있던 것을 허물어뜨린 경우는 하나도 없고 모두 원래 있던 것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살려내는데 성공한 관광형 도시재생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림동 주변에는 아직 더욱 적극적인 도시재생 정책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 남광주야시장 역시도 야시장이 열리는 시간대에만 반짝할 뿐 그 주변부는 시민들이 늦은 시간에는 다니기를 꺼려할 만큼 스산한 거리가 되었다.

양림동 초입에서 바로 길 건너 언덕에 있는 광주방송 사옥마저 금호 유스퀘어(옛 광천터미널) 맞은편에 짓고 있는 주상복합 건물로 이전하고 나면 지역의 생기가 더욱 없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향교 주변에는 예전만 하더라도 낡고 손 봐야하는 곳이 많아 외면했을 건물이지만 지금은 근대건축유산으로 지정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공간이 숱하다. 못 쓰는 물건들로 주민들이 훌륭한 예술작품 야외전시관을 만들어낸 펭귄마을이 지난해 <한끼줍쇼> 등에 나오면서 쉬이 끊이지 않는 유명세를 치른 양림동이지만 주변에는 아직도 인적 드물고 폐가가 많은 마을이 상당수다.

심지어 호남 최대 전통시장이라는 양동시장 같은 경우에도 과거의 유명세를 뒤로 한 채 슬럼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개발이냐 재생이냐를 놓고 각 주체 간의 갈등 양상이 첨예하다. 같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한쪽에는 도시재생 관련 청년 참여 단위를 모집하는 현수막이 걸려있고 다른 한쪽에는 재개발 촉구와 반대를 서로 독려하는 홍보물이 유세하듯 붙어있었다.

공익적 가치와 공공의 주체가 결과적으로 도심 난개발을 저지하는 안전판 노릇을 하고 있는 양림동 모델이 광주 원 도심 전체에 뿌리내리지 않으면 더 이상의 원도심 활성화와 문화관광벨트 형성은 불가능할 수 있다는 견해가 일리 없지는 않다.

‘예향’ 타이틀 놓고 지독한 싸움

지금이야 호남 대표도시로 광주를 떠올리지만 과거에만 해도 전라도의 ‘전’ 자가 전주를 지칭하는 만큼 전주의 위상이 대단했다. 그래서일까. 광역권 내부 주도권 싸움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광주와 전주는 상징적으로나마 호남권의 맹주가 되고자 하는 자존심 싸움이 치열하다. 엄밀하게는 전주의 위상 회복 시도라 할 수 있는데 주로 문화 분야에서 그러하다.

서로가 아시아 문화예술의 허브를 자임하며 아시아문화중심(광주)과 문화심장(전주)이라는 각자 다른 이름으로 세 대결을 하고 있는 양상도 비슷한 맥락. 

최근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는 서병수, 박근혜정권의 부산영화제 탄압과 전주국제영화제의 <노무현입니다> 대성공으로 한층 기세가 등등한 전주의 심기를 긁을 수 있는 작은 사건이 발생했다. 문화전당 내에 독립예술영화관이 개관한 것이다. 아시아문화원이 운영하는 아시아문화전당 내에는 최근 도서관과 문화예술 아카이브를 겸한 공간인 라이브러리파크에 영화관 시설이 들어섰다. 문화전당 관계자는 기존의 시청각시설이 영화관으로 용도변경을 한 것이 아니라 독립, 예술영화도 틀 수 있는 공간으로 개선을 했다고 보는 것이 알맞은 표현이라는 뜻을 전했다. 논란을 의식한 조심스러운 입장일 수 있겠다.

어쨌든 광주비엔날레의 대성공으로 열매를 맺은 시 문화정책이 10여년의 과도기 혹은 침체기를 지나 중앙정부의 적극적이고 집중적인 지원이 되살아나면서 영화나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현대 예술장르에 전 방위로 손을 대고 있는 모양새다. 광주가 현대 예술 분야로 가지를 뻗고 있다면 전주는 국립무형유산원 유치, 전주대사습놀이 개혁 이후 전라감영 복원에 박차를 가하는 등 전통문화 쪽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상황이다.

문화로 살아 숨쉬는 5월 광장

5.18 민중의 희생을 통해 역사성을 부여 받은 구 도청 앞 광장은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광주의 중심으로, 생동과 열정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폭염을 식히는 시원한 분수 물줄기처럼 열정과 패기의 버스킹 세례가 쏟아지고 있는 광주의 토요일 밤. 도청 앞 광장에서 벌써 수년째 열리고 있는 광주프린지페스티벌은 날이 갈수록 그 세를 더해가는 듯하다.

행사 직전까지만 해도 흐린 하늘에 자칫 공연이 열리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던 관계자들의 우려가 기우였던 양 날은 금방 개였다. 열대야 무더위에도 아랑곳 않고 광장을 떠나지 않은 수천의 사람들 덕에 메인무대에서 열린 공연은 예정된 시간을 넘겨서 계속됐다. 광주가 괜히 예향이 아니다 싶다. 광주전남의 협력 예술사업도 다양하다. 가령 전남 담양 가사문학관에서 하는 전통음악 공연을 광주의 기초지자체에서 후원하는 식이다.

광주전남, 혁신도시도 공동으로

광주전남 협력의 결정체로 꼽히는 나주혁신도시를 찾았다. 영산강 물줄기 따라 ‘빛가람’이라고 불리는 이곳에는 한국전력을 비롯한 전력 관련 공기업과 문화예술위원회 같은 문화예술 관련 공공기관이 모여 있다. 빛가람의 특징은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라는 것. 광주전남 행정의 밀접한 교류와 협력이 잘 드러나는 지역으로 혁신도시 임시터미널 건물 3층에는 광주광역시 혁신도시사무소도 입주해있다.

혁신도시 추진 당시 한국토지주택공사와 함께 한국전력 본사를 어느 지역이 가져갈 것이냐가 지자체의 가장 큰 관심사였던 만큼 한전을 얻어낸 전남 나주는 초반 정착이 중요했던 혁신도시에서 기대 이상의 동력을 확보했다. 혁신도시 자체가 광주와 가까우면서도 도심과 멀찍이 교외 생활을 하고 싶은 이들의 욕구를 충족했다. 다만 공공기관이 쉬는 날에는 도시가 텅 비는 공동화 현상은 이곳 역시 마찬가지라 상업시설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무등산 모노레일과 케이블카

끝으로 어느 시인이 대한민국의 십자가를 짊어졌다고 말하길 주저 않은 광주 무등산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무등산에는 모노레일과 케이블카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노레일의 종착지가 국립공원 무등산의 정상은 아니고 그 아래 작은 산기슭, 말하자면 동네 뒷산이라 할 수 있는데 오랫동안 가동을 중단했던 것을 불과 몇 년 전에 안전진단과 수리를 마치고 다시 관광형 도시재생의 목적으로 운영하게 된다.

이것이 유튜브 등에서 관리자의 7080 음악취향이 돋보이는 케이블카 선곡과 아슬아슬 아찔한 느낌을 주는 모노레일 탑승 영상으로 인기를 끌며 주말에는 가족 단위 방문객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는 게 관계자의 전언이다.

탑승감과 경치는 영상에서 표현되는 만큼의 박진감 그 이상이다. 덕분에 최근 들어 무등산 지산유원지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다시금 늘어나며 얼마 전에는 이 근처에 스타벅스 카페가 입점하기도 했다는 소식이다.

이처럼 어느 도시에든 그 지역을 대표하는 산이 있다. 꼭 진산이 아니더라도 그 산에 오르면 도시의 이모저모를 조망할 수 있으며 그 숲 속에, 흙 속에는 근현대사의 숨은 이야기도 있다. 광주에는 무등산이 있고, 대전에는 보문산이 있다.

그래서일까. 대전의 한 유명한 빵집에는 ‘보문산의 메아리’라는 빵을 판매하고 있다. 다음주에는 그 보문산의 메아리를 들어본다. 세종시 탄생 이후 대전광역시의 변화를 짚어본다.

광주=이채훈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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