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자부심이 관광 도시 이끄는 힘”
“시민의 자부심이 관광 도시 이끄는 힘”
  • 이채훈 기자
  • 승인 2018.08.08 13: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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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시 담당과장에게 듣는 관광도시 비결
통영 루지와 케이블카 모습.
통영 루지와 케이블카 모습.

한 눈에 보는 관광 통영

*통영 르네상스
김순철 과장은 ‘통영 르네상스’는 6.13 지방선거 당시 출마자들의 구호이기도 했지만 문화예술인들이 통영으로 결집하고 교류한 1945년 해방 전후가 통영의 제1르네상스였다는 견해를 내비쳤다. 그리고 민선 지방자치 이후 200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가 관광산업으로 부흥한 통영의 제2르네상스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통영의 문화 예술 관광이 처한 현실
- 케이블카 10년 동안 누적 1조 3000억 원 매출, 1000만 명 탑승.
- 최근 관광객 감소, 사천.여수 등지로 분산...확연한 감소 추세.
- 통영 루지 1년, 최근 들어 양산.수도권으로 분산
- 지난 2016년에 하향곡선을 그리던 것을 2017년 루지로 다시 끌어올렸으나 2018년 다시 사천과 양산에 경쟁 시설물이 생기면서 내리막길을 걷고 있음.
- 관광패턴의 변화: 단체여행에서 가족.연인 단위로 줄고, 관광버스에서 승용차 아니면 기차나 대중교통 이용으로 변화.
- 통영지역의 수산.조선업 몰락으로 관광산업 의존도 높여야 살길. 최근 언론인, 관광산업 관계자 직접 통영에 초청 관광설명회 개최.

*통제영 300년 문화(통영 약사)
1592 임진왜란 발발
1593~1896 삼도수군통제영(통제영 300년 문화 형성)
1604 통제영, 두룡포 이전
1955 통영.충무
1995 통영(통영.충무 도농 통합)


“통영이 먹고 사는 방법이 하나 있는데 ‘이순신’을 팔아야 한다. 세계 모든 이가 이순신이 알고 싶다면 충무로 오게 하라.”

최근 한국언론진흥재단 부산지사가 진행한 지역신문발전위원회 도시재생 연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지역 언론인들에게 관광도시 통영의 비결을 소개한 김순철 통영시 관광마케팅과장은 간담회 서두에 고 박경리 선생이 생전에 통영 사람들에게 한 말을 소개했다. 선조 37년, 1604년에 한산에서 두룡포로 삼도수군통제영을 옮기고 세병관을 지은 것은 통영이라는 지명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김 과장은 한 평생 이 말을 그대로 실천한 공직자다. 통영에서 나고 자라 공직생활의 대부분을 문화예술관광 분야에서 일하며 보냈다.

소설가 박경리 선생은 <생명의 아픔>이라는 글을 통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고향은 내 인생의 모든 자산이며 30여년간 내 문학의 지주요, 원천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 30년, 원주에서 5년 간 뜨내기 생활을 하며 나는 고향을 찾지 않았다.”

박 선생이 고향에 돌아온 것은 언제일까. 지난 2008년 4월에 통영 케이블카가 완공됐고, 공교롭게도 그해 5월 5일 박경리 선생이 타계했다.

통영에서도 박경리 선생이 쌓은 문화적 업적의 토대를 재조명할 필요가 있었다. 원주 등이 거론됐던 장지가 최종적으로 통영으로 정해졌다.

김순철 과장은 당시 시 문화예술계장으로 박경리 선생의 장례식을 시 차원에서 기획한 담당자였다. 그는 문학인들이 남긴 추모의 글로 채운 500여개의 만장 사진을 보여주며 “앞으로 대통령이 돌아가셔도 이런 장례식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경리와 통영, 그리고 케이블카

“강원도 원주는 박경리 선생이 <토지>를 완간한 곳이라는 이유만으로 문학도시가 됐습니다. 통영은 박 선생이 나고 자란 문학적 터전입니다. 혹자는 케이블카가 통영을 일으켰다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박경리 선생이 통영을 먹여 살린 것입니다.”

최근에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문학가로 푸쉬킨의 동상이 서울에 세워지고 이에 응답해 한국을 대표하는 문학가로 박경리 선생의 동상이 러시아에 건립되기도 했다. 박경리와 윤이상, 그리고 유치환까지. 통영은 문화도시라고 해도 부끄럽지 않다. 널리 알리고 불러들이라는 것이 통영시의 문화관광 정책 기조라고도 볼 수 있겠다.

유치환의 출생지와 관련해서는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이 있었지만 대법은 거제시가 제기한 소송을 “이유 없다”고 기각하며 통영시의 손을 들어줬다. 유명인의 출생지를 놓고 대법원까지 간 소송은 그만큼 관광마케팅에 있어 뜻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우리나라는 문화로 부강해져야 한다고 말한 김구 선생의 뜻이 21세기에 더욱 뼈저리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박경리 선생 기념사업 추진 초기에도 예산상의 이유를 들어 묘소나 기념관 등에 부정적이었던 일각의 여론을 오히려 교차로 곳곳, 벼룩시장 등에까지 박경리 작가의 이야기가 스며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하며 무마했다.

그는 시비 또는 화비, 동상 등을 세우는 것처럼 특별하게 뭘 짓는 것만이 도시재생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시민의식과 문화적 구상이 도시재생에 기초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비나 동상을 짓더라도 이 모든 것들이 포괄적인 도시재생의 테두리 안에서 주민, 관광객과 문화예술인 사이의 자연스러운 만남과 작품과의 대화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한때 이런 기념조형물들이 제각기 퍼져있으면 어떻게 관리할 거냐는 시의회 질의가 있어서 그는 이렇게 반박하기도 했다.

“아파트형 시설로 한 곳에 모아 관리하자니, 공동묘지를 만들자는 거냐? 골목마다 예술인의 숨결, 창작혼이 있어야 문화도시지.”

때문에 통영시는 기념조형물들을 시민의 모금으로 설립하고 시민 스스로 관리하도록 해 자녀에게도 전승하는 시민 스스로 통영의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데에도 정책적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인구수 대비 문화재가 많다는 자부심을 유지하기 위해 개인 미술관에는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아 성업하도록 하는 데에도 역점을 두고 있다. 김 과장은 무엇보다 관광도시로의 도약을 위해서는 시민들의 생각과 마인드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손님들에게 친절하고 문화예술에 박식한 시민이 관광산업을 살리는 첩경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관광자원은 휴먼.소프트웨어

통영은 문화 예술 역사에서 관광산업의 활로를 찾았다. 시 마케팅과장은 관광 자원은 휴먼(사람) 그리고 소프트웨어라고 단언했다.

“일반자원은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빼앗아 갈 수 있어요. 루지도 마찬가지였죠. 시설은 빼앗길 수밖에 없습니다.”

흔히 통영을 ‘동양의 나폴리’라고 하지만 과장은 일반적인 관광자원, 풍광 역시 한국보다 더 좋은 데가 많다고 냉정하게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남은 경쟁력은 문화예술이라는 것이다.

그는 문화예술과 인적자원은 어느 누구도 가져갈 수 없다면서, 박경리와 윤이상은 어떤 지역에서도 못 가져가는 통영 고유의 자산이라고 천명했다.

승전구국의 도시에서 해양수산으로 도약했고 관광문화로 날개를 펴고 있는 통영이다. 통제영 300년 문화의 자랑스러운 공예 유산도 많다. 손재주의 맥이 있는 도시다.

그 옛날 흥선대원군은 ‘통영 갓’만 쓴다고 했다. 부채, 소반 등에서 ‘통영 산’이라는 것은 지금의 인증제도와 같은 가치를 지녔다. “통영 소반이요!” 외치는 소리에 버선발로 달려 나갔다. 값을 더 쳐줬다는 뜻이다.

‘화첩기행’으로 유명한 서울대 김병종 교수는 “통영처럼 문예 자산과 문화예술인이 공존하는 곳은 오로지 통영 뿐”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사라지는 지자체 되지 않으려면

그런 통영도 인구수가 줄고 있다. 없어질 지자체라는 두려움이 있다. 14만 명이라고 하지만 13만 명대로 떨어졌으며 실제로는 10만 명에서 왔다갔다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케이티엑스 시대의 관광정책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통영까지 고속도로가 놓이면서 찾는 사람들도 늘어났지만 금방 왔다가 금방 되돌아가는 사람도 많아졌다는 얘기다. 그래서 어떻게든 머물고 가게 하는 체류형 관광의 여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교통편의에만 매달리다 보면 닭 좇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라고도 지적했다.

“얼마 전에 국도로 이동할 일이 있었는데 사천공항까지 가는 동안 차를 10대 밖에 못 봤어요. 이미 폐업한 주유소도 많았지요. 과거 고성 율대리 같은 경우에는 갓길에 옥수수 장사로 월에 천만 원을 벌었던 곳이란 말입니다. 창원 진동면 역시도 중간에 한 번 거쳐서 감자사고 하던 곳인데 지금은 폐업한 데가 많죠.”

어느덧 퇴임을 앞두고 있는 김 과장은 문화시대에는 문화예술정책으로 대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영도 한때 조선소에서 나오는 분진으로 고민했던 적이 있을 만큼 조선업이 흥했다. 하지만 이미 그때 통영시는 앞으로 중소조선소에 닥칠 어려움을 내다보고 관광산업을 준비했다. 당시에 이름을 날리던 조선소들은 현재 전부 문을 닫았다. 지난 2010년을 전후해 민선 통영시는 조선소, 조선산업 포기를 결정했다. 이는 그보다 앞서 한일어업협정 이후에 고깃배 수를 줄이는 등 수산어업 감축을 겪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선제적 결정이었다. 

작가 이중섭이 통영에서 그린 ‘소’

통영은 현재의 관광 통영을 만든 문화, 관광 자산의 다음을 고민하고 있다. 통영시 4대 축제의 역량을 더욱 끌어올리는 것이 과제다. 한산대첩축제는 문화관광부 선정 우수축제지만 최우수축제로 질적 수준을 향상시켜야 한다. 박경리 선생의 고향이자 해방 전후 문예 교류가 활발했던 지역답게 문학제도 꾸리고 있다. 윤이상 국제음악제는 해마다 70~80퍼센트의 티켓 예매율을 보이고 있다. 수도권에서 많은 관객이 음악제를 찾는다. 개막공연은 항상 매진이다. 예매창이 열리고 얼마 만에 매진되느냐가 관건이다. 윤이상 선생의 묘소도 음악당이 있는 언덕으로 옮겼다.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로 통영시가 지정됐기 때문에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동랑 유치진 선생의 친일 행적 논란으로 명칭이 수정된 지금의 연극예술축제도 활성화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통영시의 지금 관심사는 그림이라고 했다. 동피랑 벽화마을이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면서 벽화마을 모델이 전국각지에 퍼졌고 이에 동피랑에서도 격년마다 공모전을 통해 벽화를 교체하고 있지만 지금의 동피랑을 만든 ‘천사의 날개’ 그림만큼은 그대로 영구보존하고 있다. 천사의 날개를 그린 화가 부부가 2년마다 찾아와 그림을 되살리는 것이 전부다. 올 가을에도 벽화 수정 작업이 예정돼 있다.

통영시는 작가들을 초청해 2박3일 통영 스케치 여행을 기획하기도 했다. 전국의 예술가들을 초청해 통영의 이모저모를 보여주고 통영을 그린 작품을 만들도록 지원해 서울과 통영에서 전시회를 여는 프로젝트다. 서울 인사동에서 10월 17일부터 1주일 동안 전시가 진행되고 이후에는 통영에서도 전시회를 연다.
“이중섭 화가가 통영에 머물면서 그린 작품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소’입니다. 그림의 소재가 통영이면 통영에 오고 싶은 마음의 동요가 일어나지 않겠어요.”

통영시의 예술장르별 관광문화마케팅 도전이 미술 테마로 이어진 까닭은 무엇일까.

크레인 멈춘, 다시 통영항에서

통영 산업의 중심인 통영항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 까닭은 그림 한 점 때문이다. 전혁림 화백이 그린 <통영항>은 원래 삼성 리움박물관 소장품이었으나 청와대가 2006년 1월에 사들였다. 보수정권 하에서 사라진 이 그림을 다시 청와대 내부에 걸은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다. 코발트(진한 남색) 빛으로 가득 채워진 그림을 보고 해외 인사들은 꼭 대통령에게 이곳이 어디냐고 궁금증을 표한다고 한다.

“통영항 그림이 뉴스에 계속 나오니 기쁜 일이죠. 청와대 소식이 나올 때마다 청와대가 통영을 홍보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통영은 지금 가동을 멈춘 신아조선소 자리에 신아조선, 한국토지주택공사, 통영시.중앙정부가 손을 잡고 도시재생뉴딜사업에 돌입했다. 주민들도 이 신아조선소 자리가 어떻게 바뀔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걱정 반 기대 반에 최근에는 제대로 된 신아조선소 터 리모델링을 바라고 고민하는 주민 모임까지 결성됐다. 문재인정부에서도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총 예산 800억 원이 넘는 규모로 단일 프로젝트 중에는 도시재생뉴딜 최대 규모의 사업이다.

한 끼 굶고서라도 빈 공간을 문화로 채우는 시대, 그는 앞으로 통영의 미래 관광 키워드는 섬과 휴식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신임 강석주 시장의 시정 방향 중에 하나가 섬이기도 하고 시에서도 사량도 등을 눈여겨보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 은퇴자들을 위한 실버 정주 정책 또한 통영시에서 역점을 두고 있는 분야라고 밝혔다.

김순철 과장은 섬과 육지를 잇는 다리를 놓는 연도교 추진도 중요하지만 차가 섬으로 들어가는 다리가 놓여서는 안 된다는 개인적인 견해를 피력하기도 했다. 지방선거 당시 논란이 된 한산도강연륙교 역시 보도교 형태로 추진돼야 하지 않을까 하는 입장을 내비쳤다.

그는 끝으로 통영에서의 공직생활을 이렇게 정리했다.

“통영에서 38년간 공직생활을, 그리고 관광예술을 맡은 건 내 인생의 특혜요, 영광이었다.”

해양관광도시 통영은 허투루 생긴 것이 아니었다.

통영=이채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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