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황강 하구 처용마을 성일룡 할아버지
외황강 하구 처용마을 성일룡 할아버지
  • 이동고 기자
  • 승인 2018.08.08 16: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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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방네 사람들
일주일 전 떠내려 오던 문짝을 챙겨두었는데 장대 하나로 조종하는 걸 보여줬다. 그냥 심심해 하는 물놀이다. ⓒ이동고 기자
일주일 전 떠내려 오던 문짝을 챙겨두었는데 장대 하나로 조종하는 걸 보여줬다. 그냥 심심해 하는 물놀이다. ⓒ이동고 기자

울산 과거 역사는 곳곳이 깊고 풍성한 곳인데 공장과 공단에, 항만에, 도로에 묻고 산다. 문화유적을 자랑은 하지만 실제 그 유적을 찾아보면 실망스러운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이제 끝나가는 그 풍요로움도 찬란했던 과거 역사에 비하면 얕고 짧고 빈약하다.


처용암 사진을 담으러 갔다가 외황강 하구에서 만난 마을 어르신. 수천 년, 수백 년 풍요로웠던 자연환경을 겨우 60년 만에 삼켜버리는 과정을 다 겪은 촌로 한 분을 만났다. 날이 너무 더워 강가는 조금 시원하려나 싶어 내려왔다며 강을 바라보며 같이 앉았다. 자신은 어업을 한 적이 없고 농사만 지었단다. ‘온산항발전주민협의회’ 간판이 콘테이너 박스 앞에 붙어 있고 더위에 지친 개 한 마리가 짖지도 않고 쭈그려 누워 있다. 바람은 있었지만 푹푹 찌기는 마찬가지, 그래도 그늘막이니 참을 만했다.


처용암을 배경으로 배들이 5~6 척 떠있다. 고기 잡는 배는 아니고 작업장이라고 했다. 멀리 나가 어로작업을 하고 돌아오면 저 뜬 작업선에서 그물도 정리하고 작업을 한다. 건너편이 선수마을, 세죽마을, 성외마을, 황성동, 용연, 용잠마을 등 다 대현동(예전에는 면)인 울산광역시고 여기는 울주군이다.


어르신 말로는 예전에는 덕하 화창마을이 바다 끝자락이었다. 예전 염밭이 있던 곳은 선수마을과 황성동 쪽이었다. 주로 염밭을 하던 사람들은 오천오대마을 사람이었다고 한다. 예전에 덕하역으로 소금을 이고 다녔던 아주머니들은 나이가 들어 다 돌아가셨단다. 
“예전에는 살기 좋았지.”


큰 민물장어를 강 하구 곳곳에서 많이 잡았단다. 강가로 시커먼 장어가 실실 나올 정도로 많았다.
“여기서 이쪽으로는 바닷물이 많이 짜고 저 위로는 민물이었지. 저기 다리 근처는 매립을 많이 해서 저 모양이지만 예전에는 하구가 아주 넓었지.”


지금 앉은 자리가 바로 할아버지 예전 집터라고 하는데 초가집이었단다. 지금은 이 집을 팔고 저 위로 올라갔다고 한다. “강가 갈대도 많았을 텐데 지붕은 갈대로 이으셨어요?” 그 당시 갈대밭은 따로 주인이 있었고 아무나 베어 쓰는 것이 아니어서 짚으로 이었다고 한다. 돈이 좀 있는 사람은 그 갈대를 사서 지붕을 이기도 했다. 강가는 국가 땅이지만 어로 관리권은 개인이 갖고 있었다.


“여기 멸치도 많이 들어왔지. 저 큰 탱크로리 있는 온산 앞에도 멸치 어장이고 여기 앞에도 어장이 있었고.” 아직 눈에 선한 듯 손으로 가리켰다. 시시한 물고기는 고기 축에도 안 들었고, 밖에 나가 잡는 것은 주로 아나고(바다장어)였다. 그물망으로는 납작하게 생긴 놀래기를 잡았고, 꼬시래기는 바로 여기서도 잡았다고 한다.  


“석유화학공단이 들어서면서 폐수를 내려 보내니, 여기 숭어가 죽어서 새하얗게 강가로 많이 밀려 나왔어. 막 주워 구워먹고 했지. 그 때는 모르고 먹었는데 먹으면 곱사병 된다고 해서 안 먹었지.”


그 후 오염이 심해지고 사람들이 데모를 했다. 어장 주인들은 보상을 받았지만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다. 
“우리 동네 아래는 ‘신기마을’인데 완전 바다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이야. 그 사람들은 바다로 나가면 돈이라. 여기 처용마을 사람들은 돈이 생기면 꼬깃꼬깃 모아 두었다가 긴요한 일에 썼지만 신기마을 사람들은 씀씀이가 달랐지. 막걸리 집에서 술도 간간히 먹을 정도로 여유가 있었지.”


여기 처용마을 사람들이 조금 양반이지만 사는 것은 신기마을 사람이 훨씬 좋았단다. 신기마을은 읍내 분위기가 낫고 장은 저기 ‘방도리’ 춘도(목도) 앞에 섰다고 한다. 어르신은 농사를 주로 짓고, 심심하면 간혹 강가로 고기 낚으러 나온다고 했다.


“여기 강가는 울산시가 다 매입해서 지금은 시 땅이야. 공단이 들어설 때 신기 방도 사람들이 덕신으로 이주를 갔지.” 덕신에 사는 사람들이 심심하니까 낮에는 여기서 살고, 밤에는 집으로 가고 한단다. 예전에 하던 것이 이 일이니까 여기 나와 하는 거라고 했다. 


물고기가 좀 잡히느냐는 질문에 “물고기야 철이 따로 있나? 계속 철인 거지.” 어장은 황폐화 되었지만 황어, 숭어도 아직 간혹 올라오고, 연어, 은어는 안 올라오는 거 같은데 어로 일을 하지 않으니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전화가 울렸다. 밖에 나갔다가 돌아온 할머니가 찾는 전화였다. “너무 더워 바람이나 불까 하고 여기 강가에 나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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